구광모 LG 대표(오른쪽)가 지난 24일 LG인화원에서 열린 사장단 워크숍에 참석해 권영수 (주)LG 부회장(왼쪽), 조준호 LG인화원 사장(가운데) 등 최고경영진과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 사진=LG 제공
그룹의 변신에 대해 LG 관계자는 “글로벌 선두 기업 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확립하기 위해 각 계열사가 개별적으로 취한 조치”라며 “LG화학의 소송 제기는 막대한 투자와 연구를 통해 축적한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LG전자는 고객들에게 올바른 제품 정보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LG그룹 변화의 중심엔 물론 젊은 총수 구광모 (주)LG 대표가 있다. 구광모 회장은 마침 지난 24일 사장단 워크숍에서 “L자형 경기침체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의 위기에 앞으로의 몇 년이 우리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사업방식과 체질을 철저하게 변화시켜나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 대표는 “LG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사장단께서 몸소 ‘주체’가 되어 실행 속도를 한 차원 높여줄 것”과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실행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를 가속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구광모 회장의 이러한 변화 가속화 주문에 재계에서는 권영수 (주)LG 부회장에게 주목한다. LG그룹 내 2인자로 평가받는 권영수 부회장이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도와 그룹의 변신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 LG그룹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권영수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공격적이긴 하지만 구광모 회장의 의중 없이 이렇게까지 바뀌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권영수 부회장은 2007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재임 시절부터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과감한 투자와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턴어라운드(흑자전환)를 이뤄냈다. LG디스플레이는 2008년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LG화학 전지사업부문 사장으로 재임하던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배터리 초기 투자를 주도하며 매년 영업이익 1조 원을 달성, 업계 1위 입지를 공고히 하기도 했다.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시절에는 한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10년간 1등만 해왔기 때문에 ‘1등 DNA’를 갖고 있고, 통신에서도 1등을 하고자하는 열정이 크다”고 직접 말할 정도로 꼴찌 탈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타 통신사들과 인수합병 등 여러 이슈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권 부회장이 LG유플러스 대표이사로 재임하던 시기 LG유플러스는 3위 사업자로서 다른 사업자들에 대한 차별규제 강화를 외치는 ‘짱돌 던지기’ 전략에 집중했다”며 “통신사에서 격하게 싸웠던 경험이 현재 LG그룹의 공세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LG유플러스 재임 시절 권 부회장은 3위 사업자를 벗어나기 위해 5G 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는 승부수를 뒀다. 화웨이 장비가 기존 장비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이유에서다. LG유플러스는 화웨이 장비를 도입으로 타 통신사들보다 신속하게 기지국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초 불거진 미중 무역갈등 과정에서 미국이 화웨이 장비에 대해 안보문제를 지적하면서 화웨이 5G 장비도입을 주도한 권 부회장이 책임론에 휘말리기도 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해 타 통신사에서 발생하는 5G 끊김 문제 등을 겪지 않았지만, 과거부터 지적되어왔던 보안 문제가 미중갈등으로 심화되면서 미군 기지 부근에서 화웨이 장비를 철수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최근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소송전을 권 부회장이 진두지휘 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유사한 분쟁을 주도한 것으로도 알려진 까닭에서다. LG화학은 2011년에도 배터리 분리막(LiBS)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에 기술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은 2014년까지 소송전을 이어가다 대법원 파기환송 후 전격 합의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소송과 관련한 보도자료에서 “2011년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배터리 분리막 소송 건은 왜 합의를 제안했는지 묻고 싶다. 당시 소송을 진행한 곳은 LG화학 전지사업본부. 당시 본부장은 K 사장, 현 부회장”이라며 권영수 부회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화학 관계자는 “2011년 소송 당시 권영수 부회장이 사업본부장으로 LG화학에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도 “SK이노베이션 측의 주장에 대해 답변할 만한 내용은 없다”고만 밝혔다.
현재 LG화학을 이끄는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박진수 전 LG화학 부회장이 물러나며 3M에서 외부인사로 영입된 인물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외부에서 온 전문가가 경영적인 판단이 필요한 소송전을 이끌기에는 무리라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비슷한 시기 LG전자 또한 삼성전자와 이슈가 있는 만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소송전을 단순히 계열사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 그룹 전체의 문제인데, 외부에서 영입된 사람이 그룹의 성격을 바꾸는 소송전을 벌이기는 어렵다”며 “현재 소송전은 경영적인 측면이 큰 만큼 구 회장의 의중에 따라 그룹 내 넘버2인 권 부회장이 주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신학철 부회장이 글로벌 기업인 3M에서 영입된 만큼, 지적재산권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 부회장이 주도하는 분쟁을 그룹 차원에서 지지해줬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 7월 9일 취임 이후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에 대해 “LG화학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은 지적재산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