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0일,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인천국제공항에 첫 발을 내딛은 파울루 벤투 감독(왼쪽에서 세번째).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파울루 벤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취임 1년이 흘렀다. 지난 1년 대표팀은 많은 일을 겪었다. 벤투 감독의 첫 시험무대 아시안컵에선 충격적인 8강 탈락을 경험했다. 신임 감독과 ‘허니문 기간’을 마친 후 대표팀은 새로운 시험장인 월드컵 지역예선으로 향했다. 첫 시험에서 실패를 맛본 벤투 감독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가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 1년 전 우리나라 축구계를 뜨겁게 달군 국가대표 감독 영입전의 후보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대한축구협회는 감독 영입에 기술위원장 등이 나섰던 과거와 달리 조직 개편을 통해 김판곤 부회장에게 감독선임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기고 작업을 진행케 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벤투 감독은 역대 대표팀이 가장 복잡한 영입전을 벌인 결과 감독직에 오른 인물이다. 취임 당시 축구협회 측에서 원했던 1순위 감독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팬들 사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이후 축구 뉴스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인물은 김판곤 감독선임위원장이었다. 그가 초미의 관심사인 A대표팀의 감독 영입을 책임지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이름이 나왔고 이에 대한 팬들의 평가가 즉각 이어졌다. 한 감독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의 이력과 전술적 성향들이 줄줄이 따라 나오며 여론이 요동쳤다. 과거와 달리 유럽 축구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고 정보가 풍부해진 환경 변화도 한몫했다.
#그때 그 후보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당시 1순위 후보로 거론된 인물은 오랫동안 이란을 이끈 카를로스 케이로스(포르투갈)였다. 한국과 협상이 결렬된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에 머물다 아시안컵 이후 남미 강호 콜롬비아 지휘봉을 잡았으며 곧장 자신의 특색을 팀에 입히며 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특유의 단단한 축구를 선보이며 아르헨티나에 승리했으며, 브라질과 무승부를 거두었다.
흥미로운 점은 케이로스 감독을 제외하면 당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감독들이 지난 1년간 대부분 좋지 못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의 유력 감독 후보에서 평가전 상대로 만난 벤투 감독(왼쪽)과 케이로스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멕시코를 맡아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했던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콜럼비아) 감독은 한국과 협상이 결렬된 이후 파라과이 감독을 맡았다. 하지만 인연이 오래 가지 못했다. 공식경기 단 1경기만 치른 이후 가족 문제를 이유로 갑작스레 팀을 떠났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본을 이끌었던 바히드 할리호지치(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감독은 한국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프랑스의 FC 낭트를 맡았다. 한 시즌 가까이 팀을 이끌었지만 12위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알제리팀을 이끌며 보여준 놀라운 모습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한 시즌 만에 낭트와 결별, 현재 모로코 대표팀으로 적을 옮겼다.
레스터시티를 이끌고 2015-2016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이탈리아) 감독도 김판곤 위원장의 구상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라니에리 감독 역시 현재는 레스터에서의 영광이 흐려지고 있다. 2018년 말 프리미어리그에서 허덕이던 풀럼 지휘봉을 잡았지만 팀을 반등시키지 못한 채 3개월 만에 팀에서 경질됐다. 이후 흔들리던 AS 로마에 소방수로 긴급 투입됐고 시즌 종료 이후 팀에서 물러나며 새 직장을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아시아에서 쓴맛 본 감독들
대표팀이 벤투 감독과 손을 잡은 시기는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을 마치고 세계적으로 ‘감독 구직 시장’이 열리는 때였다. 좋은 직장을 원하는 감독과 인재를 원하는 각 팀들 간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감독마다 원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일부 감독은 명망 있는 팀에 오르지 못한다면 많은 보수를 적극적으로 원하기도 한다. 특히 축구 변방으로 인식되는 아시아권 팀이라면 유럽의 유명 감독들을 ‘모셔오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 거주가 부담스럽다며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 감독직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진 키케 감독은 뜻밖에도 중국 상하이 선화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그 생활이 오래 가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 거주를 거부했던 키케는 그러나 우리와 협상 결렬 이후 중국으로 날아갔다. 그의 중국행에 상당한 금액이 걸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의 중국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2019시즌 그가 상하이 선화를 이끌고 치른 슈퍼리그 15경기에서 거둔 승리는 3번에 불과했다.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감독직에서 잘려 나갔다.
무직으로 세월을 보내던 그의 손을 잡은 팀은 잉글랜드의 왓포드 FC다. 키케가 2015-2016시즌을 함께 한 인연이 있는 ‘친정팀’이다. 중국서 철저한 실패를 맛본 감독과 재회에 일부에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슬라벤 빌리치(크로아티아) 감독도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우리나라의 제의를 거절한 빌리치 감독은 2018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이티하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연봉 약 70억 원의 거액을 받는 대형 계약으로 알려졌다.
그의 첫 아시아 생활 또한 긍정적이지 못했다. 사우디리그 역대 8회 우승을 차지한 명문팀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내며 부임 약 4개월 만에 경질됐다. 쉬고 있던 그에게 손을 내민 구단은 잉글랜드의 웨스트브롬위치 알비온이었다. 2년 만에 잉글랜드 무대로 복귀했지만 그 사이 위상은 달라져 있었다. 2년 전 웨스트햄에서 화려한 시절을 보냈던 것과 달리 그가 맡은 웨스트 브롬은 2017-2018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 2부리그에 소속돼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