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총선 단골 소재는 이합집산이다. 공천 신호탄과 함께 물갈이와 판갈이의 서막은 오른다. 이른바 여의도발 정당 인수·합병(M&A)이다. 현재 정당 지지도 1위인 여권도 예외는 아니다. 조국 사태 후폭풍에 직격탄은 맞은 당·청 지지도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더구나 87년 체제 이후 정치권 이합집산의 흥망성쇠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끌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추석을 앞둔 11일 오전 서울역 플랫폼에서 귀성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민주당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같은 당명으로 국회의원 총선거(총선)를 치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여권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 그랬다. 더불어민주당은 87년 체제 이후 평화민주당(1988년 13대 총선), 민주당(14대), 새정치국민회의(15대), 새천년민주당(16대), 열린우리당(17대), 통합민주당(18대), 민주통합당(19대), 더불어민주당(20대) 등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조국 정국을 거치면서 문 대통령 레임덕(권력누수) 경고등이 켜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21대 총선에서도 정당 M&A를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초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만든 평화민주당이다. DJ가 1987년 대선 때 ‘4자 필승론’을 앞세워 만든 당이다.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YS), 김종필 전 국무총리(JP)가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 충청에서 각각 분할 구도를 만들면 호남과 수도권 지지가 높은 자신이 대권 고지에 오를 수 있다는 논리다. 평화민주당의 1988년 4·26 총선 결과는 민주정의당(125석)보다 55석이 적은 70석의 제2당. 앞서 13대 대선에서 DJ(27%)는 노태우 전 대통령(36.6%)은 물론, YS(28%)에게도 졌다.
1992년 3·24 총선(14대)은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 이후 처음 치른 국회의원 선거였다. 거대 여당(민주자유당) 출범으로 ‘민주 당명’이 무주공산이 되자, DJ는 평화민주당을 민주당으로 탈바꿈했다. 보수와 진보, 비호남과 호남의 대결이었던 14대 총선은 민주자유당(116석) 압승으로 끝났다. 민주당은 75석으로, 또다시 세 자릿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현대그룹 총수였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은 24석을 획득했다. 그해 연말 14대 대선에서도 DJ(33%)는 YS(42%)에게 패했다. DJ는 대선 패배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DJ는 1995년 첫 민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돌연 귀국,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조순 전 서울시장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1996년 4·11 총선(15대)을 1년 앞둔 시점이었다. 조 전 시장(42%)은 선거 초반 열세를 딛고 무소속 박찬종 변호사(33%)를 꺾었다. DJ는 이후 동교동계를 모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결과는 79석으로 참패. 여당인 신한국당이 139석으로 1위를 기록했고, JP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50석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DJ에 합류하지 않은 꼬마 민주당도 15석으로 선전했다.
이듬해 15대 대선에서 DJ는 40.3%를 득표해 대선 3수 끝에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전 총재(38.7%)를 꺾었다. DJP 연합이 승부를 갈랐다. DJ는 JP와 공동정부 구성을 위해 새천년민주당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갈등으로 JP는 2000년 4·13 총선(16대)을 앞두고 탈당했다. 총선 결과는 한나라당 133석, 새천년민주당 115석. 여당의 참패였다.
‘노무현 열풍’이 불어 닥친 2002년 16대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은 정권 연장에 성공했지만 참여정부 출범 직후 친노(친노무현)계가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 분당 사태를 맞았다. ‘빽바지(친노 개혁파) vs 난닝구(구민주계 실용파)’ 갈등의 시초였다.
다만 열린우리당은 분당 악재에도 불구하고 ‘탄핵 역풍’이란 메가톤급 변수로 과반(152석) 확보에 성공했다. 한나라당은 121석에 그쳤다. 100년 전국정당을 표방했던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레임덕이 본격화하자,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갈아탔다. 결과는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던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압승(48.7%).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였던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26.1%를 얻는 데 그쳤다. 두 후보의 격차인 560만 표는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컸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가운데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은 DJ 정신 계승을 앞세워 통합민주당으로 변경, 손학규 체제로 2008년 4·9 총선(18대)을 치렀지만, 81석에 그치면서 한나라당(153석)에 과반을 내줬다. 이듬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폐족으로 전락했던 친노계는 다시 세 규합을 시도, 2011년 혁신과통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통합해 민주통합당을 만들었다. 총선 결과는 127석으로, 새누리당(152석)에 또 다시 패배했다. 친노계는 그해 연말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를 내세웠지만 48.0% 득표에 그치며 박근혜 전 대통령(51.6%)에게 3.8%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2012년 총·대선을 모두 패배한 친노계는 2선으로 후퇴했다. 김한길 전 대표가 당시 신당 창당을 추진하던 안철수 전 대표와 손을 잡고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을 깜짝 발표했다. 20대 총선을 1년여 앞둔 이듬해 ‘문재인 vs 박지원’이 2·28 전당대회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문 대통령의 3.5%포인트(45.3% vs 41.8%) 차 승리. 친문(친문재인)계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시기다.
그러나 비노(비문재인)·비문(비문재인)계의 조직적인 흔들기로 문 대통령은 2016년 4·13 총선(20대) 직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에 전권을 넘기고 총선 불출마를 택했다. 당명도 새정치연합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탈바꿈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60년 역사를 강조하지만, 정당 정치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정당 지지도 1위인 민주당이 21대 총선 전 당명을 변경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위기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한국갤럽의 9월 3주 차(17∼19일 조사·20일 공표·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지난 대선 득표율(41%)보다 낮은 40%를 기록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관계자는 “문 대통령 지지율은 한 번 떨어지면 반등이 어렵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친문 특유의 강경 행보로 중도·무당파의 흡수가 어렵다는 얘기다.
9월 24일 국회에서 150분간 연 민주당 정책 의원총회도 여권 위기론의 단면을 보여줬다. 발언자 14명 중 9명이 조국 법무부 장관을 수사하는 검찰을 향해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민심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터져 나왔다. 피의사실 공표를 하는 검찰에 대한 고발을 검토하자는 의견도 표출됐다. 하지만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인 송영길 의원은 정책 의원총회 직후 “집권여당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당 내부에선 “검찰을 검찰에 고발하느냐”라는 반론도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민심이 옐로카드를 준 상황”이라고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야당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유한국당은 민주당보다는 정당 명칭의 연속성을 갖췄지만,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14대). 신한국당(15대), 한나라당(16·17·18대), 새누리당(19·20대)으로 변화했다.
한국당이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변경한 시기는 1997년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메가톤급 변수인 외환위기와 이회창 전 총재 아들 병역 비리 등으로 한 자릿수 지지도를 벗어나지 못하자, 꼬마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조순 전 서울시장과 당을 합쳤다. 한동안 당명을 유지한 한나라당은 MB 정부가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에 휘말리면서 레임덕을 걷자 새누리당으로 탈바꿈했다. 친이(친이명박)계는 전권을 박근혜 비대위에 넘기고 2선 후퇴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겪었던 새누리당은 2017년 2월 자유한국당으로 변신했다.
제3세력은 ‘총선용 임시정당’에 지나지 않았다. 14대 총선에서 정주영 전 회장의 통일민주당과 박찬종 변호사의 신정치개혁당을 시작으로, 이회창의 난에 희생당한 YS계 인사들이 만든 민주국민당(16대 총선), 친박연대와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회장의 창조한국당(18대 총선),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국민의당(20대 총선) 등이 대표적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