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과거 이춘재 3차례 조사했지만 혐의 입증 못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화성연쇄살인사건 전담수사본부는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이춘재가 연쇄살인 6차 사건(1987년 5월 2일) 이후 세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1986년 8월, 경찰은 이춘재가 연쇄살인과 별도의 강간 사건 용의자라는 제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연쇄살인 수사에 집중하던 경찰은 6차 사건 발생 이후인 1987년 7월에서야 이 씨를 용의 선상에 올렸다. 이 씨의 직장, 집, 학교, 이웃 주민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인 반기수 경기남부청 2부장이 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본관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브리핑을 열고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이춘재를 불러 대면조사까지 한 수사팀은 지휘부에 이 씨가 연쇄살인 유력 용의자라고 보고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이 씨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경찰은 연쇄살인 7·8차 사건 이후인 1988년 말부터 1989년 4월까지 수사가 미진했다는 이유로 이 씨를 다시 용의 선상에 올렸지만 역시 이 씨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못했다. 경찰은 1990년 초 다시 한번 이 씨를 수사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연쇄살인 9차 사건(1990년 11월 15일) 발생 이후 이 씨는 더는 용의 선상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이 9차 사건 피해자의 속옷에서 나온 정액을 분석해 용의자를 B형이라고 특정했기 때문이다.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은 “기록에 의하면 9차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정액 추정 흔적이 있는 피해자 옷을 수거해 감정한 결과 혈액형이 B형으로 판명돼 당시 형사들은 용의자의 혈액형이 B형이라는 인식이 확산한 상황에서 수사를 진행했다. 이는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경찰들 진술에서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이어 반기수 수사본부장은 “6차 사건에서 245mm 족적이 나왔는데 당시 내린 비로 실제보다 축소됐을 것이라고 보고 용의자의 족적을 255mm로 추정해 수사에 활용했다. 용의자는 당시 3차례 수사를 받았는데 1, 2차 조사 때는 마땅한 증거가 없었고 3차 조사 때는 이 족적과 용의자의 것이 일치하지 않아 용의 선상에서 배제됐다”고 덧붙였다.
전담수사본부는 전문 프로파일러 9명을 투입하고, 당시 사고 목격자나 피해자들의 30년여 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법 최면 전문가’ 2명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 수사 범위를 이춘재가 군대에서 전역한 1986년부터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검거된 1994년 1월로 두고 여죄를 밝혀낼 전망이다. 우선 이춘재의 자백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5차례 조사에도 범죄 부인한 이춘재, 가석방 가능성은?
경기남부경찰청 전담수사본부는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춘재를 상대로 지난 25일 5차 조사를 진행했다. 반기수 수사본부장은 “용의자 접견을 통해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접견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기록과 자료. 사진=연합뉴스
이춘재는 여전히 화성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이 씨가 가석방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이 씨는 1급 모범수로 25년째 복역 중이다. 법적으론 가석방 요건을 갖췄다. 부산교도소 관계자는 “아직 이춘재를 가석방 심사 대상으로 고려해본 적이 없다. 이춘재의 경우 처제 강간살해 사건만 놓고 봐도 죄질이 상당히 나쁘기 때문”이라며 “이춘재는 화성 사건이 아니더라도 가석방이 쉽지 않지만, 모든 재소자는 가석방을 노리고 모범수 생활을 하는 실정”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춘재의 가석방은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가석방 심사는 여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학 교수는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선 당연히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법무부에서 가석방 비율을 늘리는 추세이긴 하지만 성폭력, 마약, 살인은 오히려 강화된 경향이 있다. 이춘재는 안 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각 교도소는 가석방을 결정하는 자체 기구를 두고 재소자를 선정한다. 상급 기관인 법무부 교정본부에 승인을 요청한다. 법무부 차관이 위원장인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재소자의 가석방을 최종 결정한다. 100%까진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심사위원회는 교도소에서 올린 가석방 신청을 대부분 승인하지만 여론이 집중되는 사건엔 예외를 두기도 한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서류상으론 가석방 가능성이 없진 않다. 서류상 이춘재는 화성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 가석방은 전적으로 교도소장과 위원들 마음이지만 그 누구도 여론의 뭇매를 감당할 순 없기 때문에 가석방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서영교 의원 “공소시효 소급적용 입법 노력할 것”
일각에선 가석방 결정이 주관적인 여론에 좌우돼선 안 된다는 지적과 함께 법 개정으로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을 다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하는 서영교 의원. 서 의원은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소급적용 할 법 제정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이춘재를 가석방하자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석방은 공식적인 레코드에 의해서 결정이 돼야 한다. 언론이 주목한 사건은 가석방 안 되고, 주목하지 않은 사건은 빠져나오는 게 정당한지 모르겠단 말”이라며 “공소시효 폐지를 소급적용해 다시 재판에 세워서 범죄가 확인되면 무기수를 사형수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지적했다.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태완이법’ 이전엔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15년에 불과했다. 태완이법이 2015년 7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2001년 8월 발생한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사라졌다. 하지만 비소급 원칙에 따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끝났다. 유력 용의자인 이춘재에 대한 공소권이 없는 이유다.
이에 ‘태완이법’을 발의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중랑구갑)은 공소시효 폐지 소급적용을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지난 2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소급적용은 시기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불가침 영역으로 생각해왔다. 옛날엔 범죄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범죄가 되면 안 된다는 인식이 법률가 사이에 강했다”며 “하지만 살인이나 성폭행, 존속살해 등 반인륜적인 범죄는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가 있는 범죄다. 독일 나치 전범도 공소시효 소급적용으로 처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 의원은 “과거엔 증거물을 영구보존할 수 없었지만 현재는 DNA 등 증거물 영구보존이 가능하다. 태완이법 이후에 과학수사로 많은 사건이 해결되고 있다”며 “대법원판결도 재심이 가능한 시점이다. 범죄가 확실한 사건은 재수사해서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