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9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여권은 검찰을 향해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다. 여기서 밀리면 문재인 대통령 레임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정권을 내준 뒤 검찰로부터 역습을 당했던 노무현 정부 학습효과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과 검찰 간 싸움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친문 진영에선 문 대통령 퇴임 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번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의원들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날을 세우는 모습이다. 검찰이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에게 수사 정보를 고의적으로 흘리고 있다고 의심한다. 법무부는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검사들이 차지해왔던 법무부 요직에 비검사들을 발탁할 것으로도 알려졌다. 청와대 역시 대검찰청 감사를 포함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당정청이 일제히 참전하는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7일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성찰해 주기 바란다. 검찰은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기관이므로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중요하다. 지금 검찰은 수사권 독립과 검찰 개혁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거센 사퇴 여론에 대해 검찰개혁 완수라는 명분을 내걸었던 조국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메시지로 읽힌다.
검찰 내부는 당혹감과 함께 비장함이 흐른다. 수사 결과를 내지 못할 경우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새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사상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에 앞날을 점치기가 어렵다. 검찰로서도 출구 전략이 없는 상태다. 나중에 누가 책임을 지건 원칙대로 수사를 할 뿐”이라면서 “다만 수사 중인 검찰을 향해 여권이 공격하고 있는 상황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팽배하다. 재경지청 한 검사는 “검찰이 정치를 하고 있다지만, 우리를 정치로 끌어들인 건 여권이다. 각자의 할일을 하면 되는데 왜 수사 자체를 적폐로 모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재경지청 검사 역시 “그동안 야당 의원들 수사할 때 피의사실 공표했던 게 누구냐”면서 “연일 공격받고 있는 윤 총장의 거취에 따라 같이 움직이겠다는 검사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강경 기류는 향후 검찰이 여권을 향해 꺼내들 반격 카드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이쯤이면 윤 총장도 물러설 순 없는 상황이다. 자리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면서 “조국 장관 외에도 검찰이 쥐고 있는 패가 있는데, 그것들 역시 ‘원칙대로’ 수사하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조국 건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정치인 자녀들 취업 특혜 의혹이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비슷한 사례가 더 있다는 얘기다. 김성태 의원은 2012년 10월 KT 계약직으로 일하던 딸의 정규직 전환을 대가로 같은 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석채 전 회장 증인 채택을 무산시켜 준 혐의로 7월 불구속 기소됐다. 그동안 검찰은 김 의원 외에도 또 다른 정치인들 자녀가 대기업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은 적은 없는지에 대해 확인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여권 실세로 꼽히는 A 의원 친인척 자녀가 2017년 8월경 대기업에 들어간 과정이 수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채용 기간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지원자가 그 자녀 한 명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실상 ‘맞춤형 취업’이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정권 출범 직후였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 대기업과 여권 의원 간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라고 전했다.
A 의원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A 의원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치인 자녀들은 취업을 하지 말라는 소리냐. 정상적인 채용을 거쳐 입사했는데, 마치 의혹이 있는 것처럼 (검찰이) 꾸며낸 이야기”라면서 “출처 불명의 범죄 첩보를 조직 사수에 악용하는 검찰이 왜 개혁 대상인지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끼게 만든 계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 검찰은 2~3개 대기업이 수년 전부터 은밀하게 정치인 자녀들 취업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2018년 여러 차례 첩보 형태로 생산된 것인데, 진위 여부를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이중 한 대기업은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인 자녀들 취업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 대기업 한 임원은 “솔직히 말하면 회사 내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회장 선에서의 민원이 많아 인사팀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정치인 취업 특혜 과정에 전문 브로커 이 아무개 씨가 끼어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이미 소환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그가 현 정부 인사들과 가깝게 지냈던 사실을 파악했다. 이 씨 수사가 여권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 씨는 “대기업이 정치권 로비용으로 취업을 활용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고 한다. 이 씨로부터 확보한 수첩 등에는 여권 전·현직 의원들 이름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검찰은 특혜 취업 리스트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이러한 움직임이 관심을 모으는 것은 사안 자체가 갖는 휘발성 때문이다. 조국 정국에서 친여 성향인 20대는 여권에 등을 돌렸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공정성 기치도 훼손됐다. 취업 문제는 입시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민감한 건이다.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그 후폭풍은 여권 전체를 덮칠 것으로 보인다. 이름이 거론되는 여권 인사들의 정치적 무게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반대로 검찰 행보엔 힘이 실리게 된다. 많은 검사들이 “수사는 결과로 말하면 된다”고 입을 모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요신문의 사실 확인 요청에 관련 의원들은 A 의원처럼 불쾌감을 피력했다. 한 친문 의원은 “지금 조국 건도 모자라 또 다른 피의 사실들을 흘리고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으면서 “확인되지도 않은 것들로 여당을 협박하려는 술책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