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준비에 임했다.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얼마 전 미국 매체 ‘COED’의 스티븐 보쉬너는 ‘2019 MLB 베스트10 선발투수’에 류현진을 6번째로 꼽았다. 그는 저스틴 벌랜더-게릿 콜(휴스턴)-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맥스 슈어저(워싱턴)-잭 그레인키(휴스턴)-류현진(LA다저스)-셰인 비버(클리블랜드)-찰리 모튼(탬파베이)-워커 뷸러(LA다저스)-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를 지목했다. 메이저리그에 활약하는 150여 명의 선발 투수 중 류현진이 6위에 오른 건 분명 눈에 띄는 일이다. 10명의 선발 투수들 대부분은 파워피처다. 강한 구위로 타자들을 압도하는 유형인데 반해 류현진은 9이닝 당 볼넷 비율이 1.28일 정도로 정교한 제구를 바탕으로 타자들을 상대하는 특징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류현진의 제구만큼은 인정받은 셈이다.
29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시즌 최종전에 오르는 류현진은 27일 현재 28경기에서 175⅔이닝을 소화하며 13승 5패 평균자책점 2.41의 성적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여전히 메이저리그 전체 1위. 그렇다면 올 시즌 류현진은 어떤 요인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낼 수 있었을까.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절박함’이었다.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갖고 겨울 동안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이어갔고, 어깨 보강 운동에 집중하면서 건강한 몸으로 스프링캠프를 시작했다. 그 절박함의 배경에는 어깨와 팔꿈치 수술을 한 이후에도 예전처럼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간절함이 존재했다.
2018시즌 후반기에 ‘몬스터’의 진가를 발휘하며 절치부심했던 류현진은 2019시즌을 앞두고 김용일 전 LG 트레이닝 코치를 개인 트레이너로 채용했다. 김 전 코치와의 동행은 류현진한테 신의 한 수였다. 어깨 수술 이후 겨울마다 김 전 코치한테서 훈련을 받았던 류현진은 때마침 LG를 나온 김 전 코치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고, 메이저리그 트레이닝 시스템을 직접 보고 싶었던 김 전 코치의 의중이 맞아 떨어지면서 다저스에서 절묘한 호흡을 보일 수 있었다.
8월 12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전에 선발 등판했을 때까지만 해도 류현진은 역대급 성적을 나타냈다. 당시 류현진은 그 경기에 7이닝 동안 5피안타 4탈삼진 1볼넷 1사구 평균자책점은 1.45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부터 4경기 연속 최악의 부진을 거듭하면서 평균자책점이 2점대로 올라섰다. 류현진은 자신의 부진 원인을 파악하고 싶어 했다. 그래야 지긋지긋한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투구폼에 변화를 주면서 밸런스를 되찾으려 노력했고, 그런 거듭된 노력으로 점차 제구가 안정됐다. 류현진은 심리적인 면도 다시 살폈다. 시즌 내내 상위권에 오른 기록 다툼과 사이 영 상 후보로 거론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이 그런 외적인 내용에 신경 쓰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류현진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야구만 보기로 했다. 기록이나 사이 영 상 등은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메이저리그 데뷔 후 하지 않았던 불펜피칭을 소화했다. 불펜피칭과 캐치볼을 통해 구위를 가다듬었고, 경기 감각을 회복해나갔다.
9월 5일 콜로라도 로키스 등판 후(6피안타 5탈삼진 4볼넷 3실점) 류현진은 10일 만에 뉴욕 메츠전 등판에 나섰다. 그 10일 동안 그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고백했다. 이만큼 온 것도 잘한 거라고, 기록 타이틀을 잃어도 충분히 괜찮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힘들었던 시간 동안 류현진은 처음으로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 것이다.
정규시즌을 마치면 류현진한테는 중요한 포스트시즌이 기다리고 있다. 포스트시즌에서의 성적은 류현진의 FA 계약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올시즌 ‘해피엔딩’을 이루려면 정규시즌은 물론 포스트시즌 성적까지 잡아야만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류현진이 어떤 형태로 엔딩 작업을 마무리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