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
세계 경제가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해 국제교역이 감소하며 침체의 공포에 빠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주력산업이 경쟁력을 잃어 수출이 감소하고 경기가 침체해 성장 동력이 꺼지고 있다.
이번 경기하강은 29개월의 기록을 깨고 역대 최장기간의 고통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1997년과 2008년의 경기하강은 각각 외환과 금융위기라는 외부충격에 의해 발생했다. 이번 경기하강은 미국과 중국이 보복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통화전쟁까지 불사하는 경제전쟁위기가 불러왔다.
한국 경제는 양대 경제국의 틈에 끼어 무역전쟁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입는 구조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은 서로 자국의 편을 들라는 압박까지 가하고 있어 진퇴양난이다. 한국 경제는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무역전쟁을 방어할 능력이 부족하다.
경제가 전쟁터로 변해 산업기반이 무너지고 기업과 가계가 동반부도 위기에 처해 실업자를 대량으로 쏟아내는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무엇보다 외국자본이 집단적으로 유출될 경우 경제자체가 부도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이상의 불안과 고통을 낳을 수 있다.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정부의 경제상황 인식과 경제정책이다. 경기가 정점을 기록하고 하강을 시작한 2017년 하반기 이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2년간 최저임금을 30% 가까이 올렸다.
동시에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정책을 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두차례 연속적으로 올려 1.75%까지 높였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함께 하강하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정책을 폈다. 당연히 경기가 곤두박질했다. 경기를 활성화해야 할 상황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동시에 경기를 냉각하는 정책을 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아직도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소득주도성장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지난 8월 신규 일자리가 45만 2000개나 늘어 고용률이 61.4%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지난해에 비해 1.0%포인트나 떨어져 3.0%를 기록했다. 최하위 계층인 1분위 소득이 지난 8월 지난해 동기 대비 0.04% 늘어 증가세로 돌아섰다.
정부정책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경기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증가한 일자리는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만든 임시 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5분위 비율은 5.3으로 사상 최고다.
올해 경제성장률 2% 달성도 어렵다. 수출과 제조업 일자리는 각각 9개월과 17개월째 연속 감소세다. 경기가 극도로 침체하고 물가가 하락해 경제가 디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아예 경제가 기력을 잃고 추락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불황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부가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올바르게 정책을 펴는 인식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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