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캐벗은 1927년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정신병을 앓다가 시설로 들어가 치료를 받게 되었고,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결국 수잔 캐벗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8개의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고아처럼 자랐고, 이러한 성장 환경은 그녀의 멘탈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1944년에 17세의 나이에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틴 새커와 결혼한 수잔 캐벗은 낮엔 동화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고 밤엔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었다. 어느 날 술집 손님 중에 컬럼비아 영화사의 캐스팅 디렉터가 있었고, 그렇게 발탁된 수잔 캐벗은 CM송 가수를 거쳐 1947년 스무 살 때 고전 누아르의 걸작 ‘키스 오브 데스’의 엑스트라로 영화계에 진입했으며, 1950년에 저예산 영화의 주연급으로 성장했다.
수잔 캐벗.
캐벗의 배우 생활이 순탄하진 않았다. 157cm에 47kg의 아담한 체구였던 그녀는 섹시한 이미지를 내세웠지만, 정작 영화에서 캐스팅되는 역할은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아랍 여자나 사모아 섬 원주민 같은 이국적 역할이었다. 서부극에도 종종 등장했으며, 어떨 땐 바이킹 여성 역할을 맡기도 했다. 주류 영화의 백인 여성 캐릭터는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은 싸구려 B급 영화로 건너갔다.
사생활도 쉽진 않았다. 이른 결혼은 7년 만에 막을 내리고, 이때부터 캐벗의 남성 편력이 시작된다. 한때는 대배우 말런 브랜도와 염문설이 나기도 했고, 요르단의 후세인 왕과는 꽤 긴 시간 관계를 맺었다. 한때 CIA가 중동 지역을 감시하기 위해 그녀를 스파이처럼 붙였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는데, 후세인 왕은 캐벗이 유태계라는 걸 알게 된 후 이별을 고했다.
1964년, 캐벗은 아들 티모시를 낳는다.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고, 후세인 왕 혹은 배우 크리스토퍼 존스가 아버지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리고 1968년 배우인 마이클 로만과 만난 지 10일 만에 결혼했다. 이때 캐벗의 나이 41세, 로만은 26세였다. 아들 티모시는 로만이라는 성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1981년, 두 사람은 이혼했고 캐벗은 아들과 함께 캘리포니아 산 페르난도 밸리에 있는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50대에 접어들면서 캐벗은 정상이 아니었다. 전남편 마이클 로만은 “캐벗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미친 상태였다”고 말할 정도였는데, 우울증과 자살 충동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녀는 비이성적으로 느껴질 만큼 강한 공포를 느꼈고, 정신 치료를 했던 의사는 “감정적 고갈 상태”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그 원인은 수많은 집을 떠돌며 성장했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이 시기 생성된 불안증은 중년이 되어서도 그녀를 놔주지 않았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
그리고 1986년 12월 10일, 수잔 캐벗은 사망한다. 당시 22세였던 아들 티모시 로만이 범인이었다. 범행 도구는 운동기구인 바벨의 쇠로 된 봉. 티모시는 그것으로 어머니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쳤고, 캐벗은 침실에 피에 젖은 나이트가운을 입은 채 발견되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범행 장소보다 집 그 자체에 더욱 놀랐다. 캐벗의 집은 몇 년 치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고, 집 여기저기에 상한 음식들이 있었다. 마치 그곳은 캐벗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공간인 듯했다.
경찰은 티모시의 증언이 오락가락하자 그를 체포했고, 보석 없이 구속해 교도소로 보냈다. 티모시는 처음엔 닌자 복장을 한 강도가 난입해 어머니를 죽인 후 7만 달러를 훔쳐 달아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증언에선 어머니의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깨었고, 어머니가 바벨 봉과 수술용 메스로 자신을 공격해 봉을 빼앗아 반격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고, 병원 응급실에 전화하려 하자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티모시 로만
그 결과 티모시는 뇌 질환을 앓게 되었는데, 캐벗이 공격적인 행동으로 자극하자 호르몬 치료와 약물로 비정상적 상태였던 로만이 그런 일탈적 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판사는 피고 쪽의 손을 들어주었고, 3년형을 선고했다. 여기엔 수잔 캐벗을 치료했던 정신과 의사의 증언도 큰 역할을 했는데, 그는 “캐벗은 매우 깊은 우울증과 극심한 자살 충동 속에서 정신적 황폐 상태를 겪고 있었다. 티모시는 그런 어머니와 함께 살아선 안 되었다”고 말했다. 이미 재판 전에 교도소에서 3년을 있었던 티모시는 그렇게 석방되었고, 엄마의 상속자가 되어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티모시는 2003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병명은 ‘크로이츠펠트 야곱병’. 이른바 ‘인간 광우병’으로도 알려진 이 병은 뇌 기능에 이상이 생겨 몸과 정신의 기능이 저하되다가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환으로, 티모시의 경우엔 어릴 적부터 받았던 호르몬 치료가 유력한 원인으로 알려진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