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적발 당시 방위사업청은 이 업체와 계약했던 한화시스템에도 책임을 물어 올 3월 수십억 원에 달하는 부당이득금환수 처분을 내렸다. 한화시스템은 회사를 속이고 피해까지 입힌 업체와 6개월 만에 다시 새 계약을 추진한 셈이다. 한 번 비리에 연루되면 ‘방산비리 업체’라는 낙인이 찍혀 진행하던 사업뿐만 아니라 업계 자체에서 퇴출되는 국내 방산업계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화빌딩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비리업체’ 낙인에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TICN은 정부가 10년 동안 5조 4000억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국방정보화 사업이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군 통신망을 디지털 방식으로 대체한다. 국방연구소 주관 아래 한화시스템을 중심으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개발을 마쳤다. 방사청이 한화시스템과 직접 계약을 맺고, 다시 한화시스템이 다수의 협력업체들과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2차 양산을 마무리하면서 3차 양산을 추진 중이다.
TICN 사업에서 발전기는 핵심 장비 가운데 하나다. 전시에 유·무선망이 파괴돼도 군 지휘통제와 전술통신 체계는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군은 군용 트럭에 발전기를 실어 전원을 공급하기로 했다. 거대한 무전기 시스템이 구축되는 셈이다.
한화시스템은 지난 8월 중순부터 3차 양산을 앞두고 발전기 공급업체 공개입찰을 진행해 왔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최종 4개 업체가 참여했고 제안서 평가 등을 거쳐 9월 11일 A 전기가 낙찰 업체로 선정됐다. 한화시스템은 방사청에 결과를 알린 뒤 9월 24일 업체에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을 통보했다. A 전기와 추가 협상을 통해 최종 납품 계약을 체결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선정된 A 전기는 2015년 1차 양산부터 한화시스템과 계약을 맺고 올해까지 진행되는 2차 양산 사업까지 발전기 공급을 맡아왔다. 다른 업체들과 경쟁하는 공개입찰을 거치더라도 초도 생산부터 사업에 참여한 업체가 이어지는 양산 사업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일은 방위산업은 물론 다른 산업군에서도 흔한 일이다. 그동안 쌓아온 납품 실적과 가격경쟁 등을 토대로 평가 과정에서 가점을 받는 등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이 업체가 그동안 각종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특히 이 비리는 모두 TICN 사업과 관계돼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A 전기의 비리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업체는 TICN 초도 생산이 시작되기 전부터 방사청 기동화력사업부장이었던 홍 아무개 준장에게 19차례에 걸쳐 3400만 원을 전달했다. 그 사이 A 전기가 납품하는 발전기는 방산물자로 지정(2015년 9월)됐다. 이듬해 A 전기도 방산업체로 지정됐다. 방산업체로 지정되면 방산물자를 독점적으로 납품할 수 있으며 원가를 보장받거나 각종 세제혜택도 받는다.
2017년 12월, 대법원은 뇌물을 받은 홍 준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그러나 A 전기는 사업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홍 준장이 돈은 받았지만 방산물자 지정 등의 대가성은 입증되지 않아서다. 방사청은 로비 사건이 불거진 이후 협력업체 전반에 청렴계약서를 쓰게 하고, 위반하면 방산물자 지정 취소 및 제재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A 전기는 여기서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 업체의 발전기는 방사청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지정된 만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A 전기는 발전기를 납품하면서 국산 부품을 수입품으로 둔갑시켜 가격을 3배 이상 부풀렸다. 방사청은 이 납품비리 책임을 한화시스템에도 물어 부당이득금 환수 조치했다.
그대로 사업이 진행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A 전기의 또 다른 비리가 드러났다. 이번엔 원가 부풀리기였다. A 전기는 1~2차 양산 과정 전반에서 발전기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을 국내 하청업체로부터 사들인 뒤, 자신들의 자회사를 거쳐 미국으로 수출하고 이를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해외 수입품으로 둔갑시켰다. 해외 운송과 국내 재반입을 거치면서 국산 제품이 수입품으로 뒤바뀐 것이다.
당초 135만 원이었던 부품 가격은 400만 원 이상으로 뛰었다. 부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 데도 납품 단가가 3배 이상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A 전기는 해외에서 수입해 오면서 작성한 수입서류(통관서류)에서 가격을 화이트로 지워 부풀린 가격을 적은 뒤, 이를 복사해 한화시스템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속였다.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자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가 수사에 착수했고, 비리에 연루된 A 전기 임원들은 올해 초 구속 기소됐다. A 업체의 발전기는 방산물자 지정이 취소됐다. 방사청은 서류 원본을 받아야 하는 데도 복사본을 받은 한화시스템에 책임을 물어 32억여 원의 부당이득금을 환수했다. 한화시스템은 납품 대금에서 상계 처리하는 방식으로 이를 납부했다.
#비싼 가격에도…한화시스템 “참여 제한할 수 없었다”
3차 양산과 관련한 발전기 공급 공개입찰에서도 석연치 않은 정황이 나타난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이번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이 한화시스템이 제출한 가격 제안서를 보면, A 전기가 556억 원으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했고 다른 업체 3곳은 각각 530억 원, 510억 원, 400억 원을 써냈다.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의 경우 일부 장비를 납품하지 않는 조건으로 가격을 낮췄다.
그러나 이를 제외해도 A 전기는 다른 업체보다 10억~20억 원 높은 가격을 써 냈다. 경쟁입찰 과정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써낸 업체가 선정되는 일은 드문 일이다. 방산물자 지정이 취소된 데다, 국내 다수의 중소·대기업들이 비슷한 기술로 수십 년 동안 생산해오는 등 여러 업체가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통상 가격이 더 낮은 쪽이 유리하다.
발전기 납품 목록(위)과 공개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이 제시한 가격(아래). A 전기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빨간선).
이를 두고 일각에선 한화시스템이 받는 ‘일반 관리비’를 주목한다. 한화시스템은 발전기 납품을 받고 이를 유지·관리하는 비용을 별도로 받는데, 납품 대금이 높을수록 한화시스템이 받는 관리비가 올라간다. 한화시스템은 앞선 사업 과정에서 납품 대금의 13%가량을 일반 관리비로 받아왔다.
이에 대해 한화시스템은 “이번 입찰 최종 결과에 따르면, A 전기가 써낸 가격이 최고액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공개입찰 과정에서 업체들과 맺은 비밀유지 조항 등에 따라 개별 가격과 세부 내용 등은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A 전기가 납품하는 발전기가 어디서 생산되고, 어떤 형태로 유통·납품되는지 여부와 이를 제안서 평가 과정 등에서 사전에 검증했는지 여부 등 역시 공개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한화시스템은 A 전기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지만 법적으로 참여를 배제할 순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지난 9월 27과 30일 일요신문에 “앞선 검찰 수사 및 법원 판결에 따르면 A 전기 임직원들의 개인비리라는 결과가 나왔으며, 이에 따라 업체 경영진이 모두 교체됐다”며 “그동안 A 전기가 납품해온 장비의 품질이나 성능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공개입찰 참여를 제한하면 공정성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업체 선정 과정에선 다른 사업들보다 더 공정한 평가에 집중했다. 업체들이 제출한 제안서와 각종 서류 등을 토대로 제출 가격뿐만 아니라 납품 기일을 제대로 맞출 수 있는지,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확인했다”며 “향후 과거의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별도로 검증하고 확인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방사청 TICN 사업 비리 대책 회의 결과.
사업을 총괄하는 방사청은 발전기 공급 계약에 대한 책임은 한화시스템에 있다고 밝혔다. 방사청 소속 장성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던 업체가 지속적으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앞서의 한화시스템의 설명과 같이 ‘개인 비리’로 결론이 내려졌다는 입장이다.
이는 올해 초 A 전기 비리가 적발된 직후 모습과 크게 다르다. 방사청은 지난 1월 25일 비리 후속 조치를 위한 ‘TICN 발전기 관련 토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투명성 입증 못한 부도덕 업체는 사업 참여 배제’ ‘발전기 국방규격 공개 및 방산물자 지정 취소 추진’ ‘업체선정 방법, 관급/사급 적용 문제 검토’ 등을 언급하며 구체적인 대안 마련에 나선 바 있다.
이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는 “A 전기는 방사청과 직접 계약하는 업체가 아니고 한화시스템과 계약하는 업체다. 개별 기업들 간의 계약이라 방사청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 때문에 방사청이 한화시스템에 계약과 관련한 내용과 자료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