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주말극 ‘배가본드’와 MBC 사극 ‘구가의 서’ 스틸컷.
9월 20일 첫 방송된 SBS 주말극 ‘배가본드’의 주인공은 가수 겸 배우로 활동 중인 이승기와 수지가 맡고 있다. 제작비 250억 원이 투입됐고, 사전 제작돼 완성도를 높였다는 이 작품은 한류스타로 유명한 두 사람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국경을 넘어 아시아 전역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승기와 수지의 첫 만남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2013년작인 MBC 사극 ‘구가의 서’에서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이승기와 수지 모두 20대 배우로서 풋풋한 모습을 보여준 반면 이제는 군대에 다녀온 후 30대가 된 이승기가 한층 남성미가 느껴지는 연기로 변신을 시도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 ‘배가본드’의 첫 방송 시청률은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10.4%였다.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이 5% 안팎에서 주춤하는 것을 고려할 때, ‘배가본드’가 이같이 성공적인 첫 단추를 끼운 것은 두 배우의 지명도 덕분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배우 김래원과 공효진은 무려 1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신인 시절인 2003년 SBS 드라마 ‘눈사람’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뽐낸 바 있다. 그리고 16년의 시간이 흐른 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마주 섰다. 연기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두 사람은 이 영화에서 능청스럽게 캐릭터를 소화하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공효진은 “나이도 비슷한 동시대 배우”라며 “신인일 때 데뷔작 드라마에서 만났던 동료인데 16년이 흐르고 진짜 많이 발전했고, ‘잘한다’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 열심히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래원·공효진이 ‘드라마→영화’로 공간을 이동했다면, 배우 현빈·손예진은 그 반대다. 지난해 영화 ‘협상’을 선보였던 두 사람은 하반기에 ‘별에서 온 그대’로 유명한 박지은 작가의 신작 ‘사랑의 불시착’의 남녀 주인공으로 나란히 발탁됐다. ‘협상’은 흥행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의 연기 호흡은 돋보였던 터라 ‘사랑의 불시착’를 통해 흥행 갈증을 풀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또한 영화 ‘결혼전야’를 함께했던 가수 겸 배우 옥택연과 이연희 역시 MBC 드라마 ‘더 게임:0시를 향하여’에서 다시 만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만기 전역한 옥택연은 이제 아이돌 그룹 2PM의 멤버보다는 연기에 전념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옥택연은 “전역하고 첫 작품인 만큼 이전보다 성장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고 이연희는 “대본이 정말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쳐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역할도 매력적이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화답했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PD는 “이미 남녀 주인공으로 만났던 배우들이 몇 년이 지난 후 다른 작품의 남녀 주인공으로 다시 만난다는 것은 그 사이 그들이 주연급 배우로서 위상을 유지해왔다는 증거”라며 “과거 출연했던 작품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향수를 줄 수도 있고, 배우들도 이미 서로에 대해 알고 있기에 좀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MBC 주말극 ‘황금정원’과 KBS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 스틸컷.
현재 방송되고 있는 MBC 주말극 ‘황금정원’의 주인공은 배우 이상우와 한지혜다. 그런데 어쩐지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두 사람은 불과 1년 전 KBS 2TV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의 남녀 주인공이었다. 채 1년도 되지 않아 다른 작품의 다른 배역으로 만나게 된 셈이다.
물론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면 큰 상관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편성 방송사만 다를 뿐, 가족을 중심으로 한 주말극 특유의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차별성을 느끼기 어렵다. ‘같이 살래요’의 최고 시청률이 36.9%였지만, ‘황금정원’은 10%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중견 외주제작사 A 대표는 “KBS 주말극 같은 경우 30% 정도의 시청률이 보장되는 시간대다. 그만큼 많은 시청자들이 본다는 것”이라며 “그런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을 굳이 1년의 시차도 두지 않고 또 다른 드라마에서 캐스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같은 남녀 배우가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제작되는 드라마와 영화 편수는 많은데 이를 책임질 만한 배우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상파 드라마 PD는 “100억 원 안팎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드라마나 영화를 이끌 만한 역량과 경제성을 갖춘 배우는 많지 않다”며 “그들 가운데 스케줄 조율이 가능한 인물을 추리다 보면 불가피하게 과거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의 조합이 다시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 자체보다는 다른 작품 속에서도 같은 연기를 반복하며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배우들이 더 문제라고 질책하는 이들도 적잖다. ‘연기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회당 수천만 원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라면, 능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완전히 다른 연기를 보여줘야 마땅하다. 하지만 비슷한 외향, 말투, 캐릭터를 고집하면서 천편일률적으로 작품을 찍어내듯 연기하는 배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앞서의 PD는 “한류를 등에 업고 인기는 높지만 정작 연기력은 갖추지 못한 반쪽짜리 배우가 많다. 연기 역량은 부족하지만 그들을 출연시키면 광고가 붙고 해외에 수출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이 되는 배우만 쓰려는 제작 마인드가 이런 ‘회전문 캐스팅’을 반복하게 만들며 드라마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