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생겼다.” 바이오 업계를 달군 뜨거운 반응은 헬릭스미스로부터 나온 단 한마디로 꺾였다. 숱한 의혹 끝에 나온 임상 실패 결과, 그리고 주가 폭락과 실패 발표 직전 회사 오너 일가의 주식매도 소식까지 이어지면서 후폭풍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헬릭스미스의 임상 3상 결과 발표 후폭풍이 거세다.
헬릭스미스는 2005년 국내 최초로 기술특례상장업체로 지정돼 상장되면서 코스닥 시장에 혜성 같이 등장했다. 15년 넘게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라는 희귀치료제를 개발해왔다. 다른 업체들과 달리 한 우물만 파왔고, 특히 올해는 임상 3상 발표가 예정돼 있어 신라젠 펙사벡, 에이치엘비 리보세리닙과 함께 ‘K바이오 3대장’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주목을 받았다.
당초 헬릭스미스는 치료제 후보물질인 ‘엔젠시스(VM202)’의 임상 3상 톱라인(임상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들) 데이터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지난 9월 23일 데이터 대신 재임상(임상 3-2) 계획을 발표했다. 임상 과정에서 일부 환자에게 위약(플라시보, 가짜약)과 신약후보물질을 섞어 썼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나서다.
헬릭스미스에 따르면, 위약을 복용한 대조군 환자 30여 명의 혈액 샘플에서 엔젠시스가 검출됐다. 반면 엔젠시스를 투약한 실험군에선 환자 30명 정도가 엔젠시스 DNA 양이 기대치보다 낮게 나와 약물을 투약 받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현지 전문가들은 “약물 혼용의 명확한 증거가 있다”며 “어떤 환자에서 뒤바뀌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약의) 유효성 해석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임상 3상은 전 세계 25개 임상시험기관을 통해 피험자 477명을 실험군과 대조군에 무작위 배정해 이뤄졌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생겨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헬릭스미스 주가는 곧바로 곤두박질 쳤다. 이후 회사가 “3상 데이터는 유의미하다”며 약물 안전성과 효과에 자신감을 보이고 ‘6개월 이내 후속 임상 진행’ 등의 구체적 계획, ‘약물 혼용’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관련한 강도 높은 법적 대응 방침 등을 밝혔음에도 주가는 최근 1년간 최고가와 비교해 3분의 1토막이 났다.
헬릭스미스 오너 일가가 임상 결과 발표 직전 회사 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기름을 부었다. 헬릭스미스가 최근 공시한 지분 변동 내역을 보면, 김선영 대표와 회사 특별관계자이자 김용수 전 헬릭스미스 대표의 부인인 이혜림 씨와 그의 자녀인 김승미 씨가 각각 임상 발표 전후로 주식을 매도했다.
일단 김선영 대표의 주식 매도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지난 9월 26일 자사 보통주 10만 주(0.47%)를 주당 7만 6428원에 장내 매도했다. 임상 3상 공시가 나오기 직전인 23일에 주식을 팔지 않고 이날 매도하면서 오히려 95억 원가량 손실을 봤다. 회사는 주식담보대출금 상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김용수 전 헬릭스미스 대표 일가의 주식 매도다. 임상 결과가 공시된 지난 9월 23일엔 김용수 전 대표의 부인 이혜림 씨가 회사 주식 2500주를 평균단가 17만 6629원에 장내 매도했다. 같은 날 김 전 대표의 자녀인 김승미 씨도 평균단가 17만 6807원에 500주를 장내 매도했다. 이들의 매도 이후 헬릭스미스 주가는 연 이틀 하한가를 포함해 26일까지 55.7% 급락했다. 대표이사 친인척이 공시 전 매도해 30% 이상 이득을 본 셈이다.
장 마감 후 임상 결과 약물혼용 관련 공시가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회사 특수관계인들이 사전에 정보를 파악하고 주식을 팔았다는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김 전 대표는 김선영 대표의 처남으로, 지난해 8월 회사를 떠난 뒤 10여 차례에 걸쳐 10만 주 이상을 처분해왔다.
만약 김 전 대표의 부인과 딸이 헬릭스미스 업무에 관여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임상 정보를 미리 얻었다면 미공개 정보 이용에 따른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한다. 의혹이 확산되면서 금융감독원이 모니터링을 진행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로선 혐의가 확인된다면 구체적인 조사 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 외에 다른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용수 전 대표 측은 “헬릭스미스의 유상증자 참여 등을 위해 실행한 주식담보 대출의 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아직까지 42만 주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그동안 바이오 업계에서 잇따라 드러난 ‘임상 실패 발표→주가폭락→결과 발표 전 회사 관계자들의 주식 매도’ 사례를 그대로 따라가는 모양새여서다. 지난 8월 ‘펙사벡’ 임상중단을 발표했던 신라젠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전무는 보유주식 전량을 임상중단 발표 한 달 전 팔아 88억 원을 현금화했다.
평균 매도단가는 5만 2469원으로, 현재 시세(10월 2일 장중 9530원)의 5배가 넘는다. 당시 신라젠 측은 주식을 매도한 회사 임원들에 대해 “세금 납부 목적” “개인 채무변제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주식을 매도한 임원들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혐의로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한 증시 관계자는 “임상 중단이라는 최악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회사 관계자들의 ‘내부거래’가 이뤄졌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회사가 더욱 가파르게 추락하게 됐다”고 말했다.
헬릭스미스와 신라젠 사례와는 다르지만 ‘K바이오 시장 추락의 신호탄’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코오롱티슈진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회사는 최근 FDA가 임상 중단 상태 해제를 위한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고 공시했다. 지난 5월 FDA가 임상 중지하면서 요청한 성분 분석 등 자료에 추가 자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정이다.
업계에선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임상 중단 상태는 그대로지만 임상3상 재개를 위한 긍정적 신호라는 해석이 나오는가 하면 그 반대도 만만치 않다. 코오롱 측은 추가 요청 자료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낼 것이라며 기대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코오롱생명과학이 식약처의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에 반발해 효력정지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진행된 소송에 대해 법원은 기각 결정을 내렸다. 당초 허가 내용과 달랐던 것과 관련해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국회에서는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바이오 시장 후폭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증권사 임원은 “그동안 기대감이 높았던 회사들이 잇따라 실패하거나 사건사고가 불거지면서 충격이 더 컸다. 특히 헬릭스미스의 경우엔 ‘마지막 기대주’로 통했던 만큼 이번 임상 이슈 여파가 거셀 것”이라며 “다만 일부 업체들은 적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어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