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프로필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는 학교로는 ‘광주 대동고’를 들 수 있다. 1975년 광주지역 고교 평준화 이후 신흥 명문 사립고로 떠오른 대동고는 소리 소문 없이 다수의 CEO와 고위관료를 배출하는 중이다.
대표적 인사로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출신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을 들 수 있다. 지난 5월 금융위원회에서 물러난 김 전 부위원장은 3개월 만에 기재부 차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김용범 차관은 금융위 퇴임 후 잠시 금융연구원에 몸담을 당시 IBK기업은행장, 수출입은행장으로 거론된 것을 비롯해 내년에나 임기가 만료되는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의 후임으로도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는 인물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사진=임준선 기자
올봄 신한캐피탈 사장 자리에 오른 허영택 사장도 광주 대동고 출신이다. 지난 1987년 신한은행에 입행한 허 사장은 미국,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에서 근무한 신한은행 내 손꼽히는 글로벌 금융 전문가로 통한다. 허 사장은 특히 여전히 신한금융그룹 내에서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고려대 출신이어서 향후 행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최동수 우리금융지주 부사장도 대동고를 나왔다. 최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미래전략단 부행장에서 경영지원본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최 부사장은 우리은행에서 미래전략단장으로 우리금융으로의 지주 전환 과정에서 중요 작업을 맡아 매끄럽게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의 창업동지인 구재상 케이클라비스자산운용 대표도 있다. 구재상 대표는 1997년 미래에셋 창업투자회사를 설립해 15년간 미래에셋의 자산운용을 책임진 바 있다. 2013년 미래에셋에서 독립해 케이클라비스자산운용을 설립했다. 이들 외에도 정규일 한국은행 부총재보, 정찬암 광주은행 부행장 등 다수의 광주 대동고 출신 인사들이 금융권에서 활약하고 있다.
고려대와 서강대가 주춤하면서 대학 학맥의 중심으로 떠오른 학교로는 성균관대를 꼽을 수 있다. 성균관대 출신 금융인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내 5대 금융지주 중 3곳의 수장을 꿰찬 뒤 몇 년째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있다.
우선 행정학과(73학번)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1981년 서울은행에서 은행원을 시작해 신한은행을 거쳐 1992년 하나은행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이후 하나금융그룹에서 한 길만 걸으며 은행권 최장수 CEO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성균관대 경영학과 75학번이다.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한 뒤 삼일회계법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을 거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이른바 ‘KB사태’ 당시 내부 균열을 봉합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KB금융그룹 회장에 오른 뒤 한동안 KB국민은행장까지 겸직하며 ‘윤종규 천하’를 열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윤종규 회장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성균관대 법대 78학번으로 우리금융지주 상무와 글로벌사업본부 집행부행장, 부문장 등을 역임한 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사임한 뒤 은행장대행을 맡았다. 이후 은행장과 지주 회장을 겸하며 ‘절대 권력’을 거머쥐었다.
제2금융권에서는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이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원 사장은 김정태 회장과 윤종규 회장 등과 함께 성균관대 금융인 모임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 고향 부산 출신 금융인들의 모임인 ‘부금회’가 이번 정부에서 주목받는 인맥이다.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 이동빈 Sh수협은행장,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등이 모두 문 대통령과 같은 부산 출신이다. 이들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부산과 경남 출신 금융인들을 중심으로 사교모임을 가지며 결속을 다지고 있다.
‘김승유 사단’도 빼놓을 수 있다. 경기고(57회)·고려대 경영학과(66년 졸업)를 졸업한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1997년 하나은행장을 맡은 뒤 2012년 퇴임 전까지 무려 15년 동안 하나금융 CEO를 맡아 ‘왕회장’으로 불린다. 그는 민간 금융사 출신임에도 하나금융그룹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하성 주중대사와 경기고·고려대 동문으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첫 민간 출신 금감원장인 최흥식 전 원장이 대표적인 김승유 사단으로 분류된다. 최흥식 전 원장은 김 전 회장의 권유로 하나금융연구소장에 취임 이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하나금융지주 사장을 역임했다.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은 2008년 하나금융 부회장 겸 하나대투증권(현 하나금융투자) 사장으로 재직 시절 김 전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김태오 DGB금융 회장도 김승유 사단으로 금융계에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2008년 하나금융 부사장 시절 김 전 회장을 보좌하며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이병철 KTB투자증권 부회장도 김승유 사단으로 분류된다. 2010년 이 부회장이 세운 다올신탁과 다올자산운용을 김 전 회장이 인수하면서 둘의 인연이 맺어졌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권은 보수적이고 파벌주의가 심한 곳”이라면서 “특정 지역이나 학교 등을 중심으로 한 인맥이 매우 중요한데, 이도저도 없으면 특정 ‘사람’에게 줄을 서야 하는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