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 화성연쇄살인사건 7차 현장. 과거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이춘재의 자백으로 화성은 살인 도시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사진=최준필 기자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춘재가 범행을 자백한 이튿날인 2일 무언가를 씻기라도 하듯 화성엔 비가 내렸다. 화성 주민 대부분은 이제 조금 안심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원에 살면서 화성시 진안동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B 씨는 “큰 영향은 없지만 아무래도 흉흉하다 보니까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뜸하다. 혹시 가석방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 불안했는데, 이제는 자백했으니 어렵지 않겠나. 좀 안심이 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춘재의 범행을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춘재를 ‘착한 아이’로 기억하는 화성 토박이 주민들은 혹시나 기대를 걸었던 듯 이춘재가 자백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이춘재의 범행을 자백 전보다 더욱 강하게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숫기 없고, 수원으로 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공부도 잘했던 아이”가 숟가락이 몇 개인 줄 알 정도로 가까웠던 동네 사람을 상대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충격인 듯했다.
화성 진안리 토박이인 B 씨는 이춘재와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B 씨는 대뜸 의심을 품었다. B 씨는 “아직 믿기지 않는다. 걔가 그럴 리가 없는데, 경찰이 때려서 자백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춘재 어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 경로당에선 한바탕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당 아파트에 이사 온 지 3년 됐다는 C 씨는 “어휴, 사람을 14명이나 죽이고 정말 악마다. TV에서 심성은 착한 아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착한 사람이 그런 짓을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진안리 토박이인 D 씨는 C 씨를 보고 “이 사람아, 내가 어릴 때부터 춘재를 봐왔는데 말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심성은 착한 애다. 처음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경찰이 빠르게 잡았더라면 더 그러지 않았을 거다. 조국 사태를 덮기 위한 정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C 씨와 D 씨가 지지 않고 계속 서로 목소리를 높이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기도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인 반기수 경기남부청 2부장이 9월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본관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브리핑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당시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했던 형사 변 아무개 씨는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희생자들의 한을 풀 수 있는 정말 좋은 일이다. 선후배들이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범행 입증을 마지막까지 잘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지난 1일 9차 경찰 대면조사에서 화성사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고 전해진다. 이 씨는 살인 외에도 30여 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자신을 대면하던 프로파일러에게 화성사건의 5·7·9차 사건 증거물에서 새롭게 검출된 DNA가 자신의 것과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이춘재가 오래전 기억을 떠올려 자백한 만큼 당시 수사 자료와 대조해 자백의 신빙성을 끝까지 확인할 계획이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