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일 대학축제 무대에 올랐던 현아가 선정적인 퍼포먼스로 논란을 빚었다. 사진=유튜브 비몽 캡처
후자를 두고 여성 팬들 사이에서는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바뀌어 가던 연예계를 다시 기존으로 되돌리고 있다”며 이른바 ‘페미니즘 백래시(Backlash, 사회 변화에 반발해 발생하는 반대 운동 및 심리)’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반면 같은 여성 팬이면서도 “여자가 하는 모든 일을 검열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며 여성 연예인의 주체적인 섹시 콘셉트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높다. 연예인들의 콘셉트가 양분되고 있는 것처럼 팬덤의 찬반도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가장 큰 논란을 낳았던 것은 데뷔 12년차 솔로 가수 현아다. 그는 지난 9월 19일 한국항공대학교 행사 무대에 블랙 티셔츠에 란제리 원피스를 매치한 패션으로 등장했다. 계획된 안무만 춰도 아슬아슬한 복장이었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레 치마를 걷어 올려 짧은 속바지를 드러내고, 엉덩이를 흔드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 파문을 일으켰다.
논란이 일자 현아는 이튿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입장문을 올려 반박했다. 그는 “제가 어제 다녀온 행사는 대학교 행사였고 바로 옆에 간단한 바 또는 알코올 주류 등이 있었다. 모두가 재밌고 즐겁게 놀 수 있는 파티였다”며 자신의 ‘팬 서비스’가 19세 이상 성인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비판한 사람들은 “대학교 축제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성인들만 그 영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영상을 접한 미성년자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생각하지 못한 행동”이라며 질타했다.
마마무. 사진=박정훈 기자
비단 이 사건뿐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선정적인 퍼포먼스를 두고 팬덤 내에서도 의견이 갈려 왔다. 현아는 지난해 10월 큐브엔터테인먼트 방출 후 피네이션으로 소속사를 바꾼 이후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거나 옷을 벗고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등 섹스어필 퍼포먼스가 더 과해졌다는 지적이 일었다. 하지만 그를 옹호하는 팬들은 “애초에 현아는 섹시 콘셉트를 강조하는 가수였다”며 콘셉트에 맞는 퍼포먼스였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급기야 그에 대한 팬덤 내부의 갑론을박은 여성 대중 전반의 논란으로 확대됐다. 현아의 과도한 섹시 퍼포먼스를 두고 “성별 고정관념과 성 상품화를 타파하는 페미니즘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여자가 뭘 하든 상관하지 않는 게 진정한 페미니즘이다”라는 반박도 만만찮다. 긴 머리와 화장으로 정의된 ‘코르셋’을 탈피하는 과정에서 “여자가 어떤 모습을 하든 상관하지 말라”고 외쳤던 말이 정반대의 의미로 쓰인 셈이다.
현아 외에 ‘페미니즘’이나 ‘걸 크러시’를 내세워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던 여성 가수들도 ‘백래시’ 비판에 맞닥뜨렸다. 걸 크러시 그룹으로 꼽히는 마마무가 대표적이다. 노브라와 민낯,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많은 여성 팬을 매료시켰던 마마무는 한편으로 선정적인 콘셉트나 퍼포먼스로 강도 높은 비판도 함께 받아야 했다.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걸그룹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섹시함을 자발적으로 셀링 포인트로 삼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선미. 사진=박정훈 기자
‘페미 가수’로 꼽힌 선미도 같은 이유로 옹호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평소 페미니즘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 많은 여성 팬의 지지를 받았던 그는 지난 8월 신곡 ‘날라리’로 컴백하면서 찬반 논란에 직면했다. 다소 선정적인 안무와 여성을 관음하는 듯한 구도의 뮤직비디오가 문제가 된 것이다.
같은 이유로 자신을 비판하는 대중을 향해 “내 몸을 내가 보여준다는데 남들이 무슨 참견이냐”며 당당하게 나선 연예인도 있다. 래퍼 제시는 지난 9월 20일 엉덩이 살이 드러날 정도로 짧은 하의를 착용하고 공항에 나타났던 그는 대중의 날선 비판과 맞닥뜨려야 했다. 며칠 뒤 본인이 직접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이건 내 몸이고 싫으면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며 노출에 대한 소신을 당당히 밝혔지만 그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숙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여성 연예인들에게만 불거지는 논란을 업계 관계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익명을 요구한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솔직히 말하면, 연예인 콘셉트만 놓고 봤을 때 페미니즘 열풍 이전보다 더 감을 잡지 못하겠다”고 귀띔했다. 그는 “여성들이 원하는 ‘페미니스트 연예인’의 기준이 너무 높다. 신체 부위도 노출하면 안 되고, 나풀나풀한 복장도 입어선 안 되고, 심지어 레드립을 발랐다거나 네일아트를 한 것만으로도 검열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불평했다. 그러면서 “남자 연예인은 ‘82년생 김지영’을 읽거나 단순하게 ‘여성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말만 해도 옹호하면서 여성 연예인에게만 오히려 여성 팬들이 더 높은 기준과 잣대를 요구하고 있다”며 “아직 변화하고 있는 과도기 단계에서 이렇게 검열한다면 차라리 남성 팬을 위한 기존 콘셉트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소속사로서는 더 이익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