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진 이 사건으로 인해 현재 태국에서는 이른바 ‘예쁜이 산업’의 비리를 둘러싼 논란이 들끓고 있다. ‘예쁜이’란 일종의 홍보 모델을 일컫는 은어로, 문제는 이들이 개인 집에서 열리는 은밀한 파티에 접대부로 고용될 경우 마약이나 성폭행 등 강력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데 있다.
아파트 로비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티티마. 이 사건으로 인해 태국에서는 ‘예쁜이 산업’을 둘러싼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진=티티마 인스타그램
8만 5000여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거느린 인기 모델이었기에 티티마의 갑작스런 죽음은 많은 태국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시체가 아파트 로비에서 발견됐다는 점, 사인이 불분명하다는 점 등 의혹이 가득하자 곧 이 사건은 태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연일 뜨거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신이 발견되고 불과 몇 시간 후, 용의자 한 명이 체포됐다. 티티마가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것을 목격한 인물로 알려진 라차데흐 웡타부트르(24)라는 동종업계의 남성 모델이었다. 그가 처음 용의선상에 올랐던 이유는 사건 당일 밤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동영상 하나 때문이었다.
충격적이게도 그는 의식을 잃은 티티마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 후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티티마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성희롱을 한 그는 동영상과 함께 “내가 술을 먹이지 않았어요. 스스로 마신 거예요. 지금 내가 입혀준 내 옷을 입고 있네요”라는 글을 적어 놓았다. 이를 본 많은 누리꾼이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물론이었다.
이튿날 새벽 아파트 로비에서 티티마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아파트 CCTV를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를 긴급 체포했다. 경찰이 확인한 아파트 CCTV 속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CCTV에는 사건 당일 밤 라차데흐가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티티마를 부축해 자신의 아파트로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과 함께 다시 몇 시간 후에는 티티마의 시신을 바닥에 질질 끌어 엘리베이터에 옮긴 후 아파트 로비 소파에 앉혀 놓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하지만 체포된 라차데흐는 자신의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지난 9월 16일, 방콕 외곽에 위치한 논타부리 방부아텅의 한 개인 집에서 열린 파티에 티티마를 비롯한 몇몇과 함께 ‘파티 엔터테이너’로 고용됐다고 말했다. 그는 파티에서 만난 티티마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으며, 티티마가 술에 너무 취했기에 그의 동의하에 자신의 아파트로 데리고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용의자로 체포된 모델 라차데흐. 그는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라차데흐는 “나는 티티마가 언제 죽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건강 문제가 있었거나 탈수증상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면서 “내 방으로 데리고 왔을 때만 해도 분명 숨소리가 들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티티마에게 마약을 먹이거나 성폭행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한 그는 “파티에서는 절대 마약이 사용되지 않았다. 나는 100% 결백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한 옷을 갈아입힌 이유에 대해서는 옷이 너무 젖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파티에서 만난 사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범행을 저지를 만한 어떤 동기도 없었다. 부검 결과로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결국 경찰은 그의 아파트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얼마 후 그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와 관련, 수티퐁 웡핀 경찰서장은 라차데흐가 티티마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단지 티티마가 술에 만취한 상태 같았을 뿐 그녀가 죽은 것은 몰랐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부검 결과가 발표됐다. 티티마의 사망 원인은 극심한 알코올 중독증이었으며, 검사 결과 그녀의 혈중알코올농도는 100밀리리터(ml)당 418밀리그램(mg)으로 치사량에 가까웠다. 또한 수티퐁 경찰서장은 티티마가 마약에 중독되어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있었지만, 부검 결과 마약이나 성폭행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부검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티티마의 부모는 곧 법무부에 추가 조사를 요청했고, 현재 2차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티티마가 소위 ‘물뽕’으로 불리는 GHB와 같은 데이트 성폭행에 악용되는 마약류를 복용했다는 추측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GHB는 체내에 흡수된 후에는 급속히 사라지기 때문에 확인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티티마의 부모는 딸의 죽음에 의문스런 점이 많다며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티티마의 시신을 옮기는 라차데흐의 모습이 CCTV에 담겼다.
한편 라차데흐가 티티마가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언제 알고 있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까닭에 이 사건의 초점은 사망 시각에 맞춰졌다. 부검을 한 검시관들에 따르면, 티티마가 사망한 시각은 9월 16일 오후 3시에서 7시 사이였다. 따라서 라차데흐가 티티마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왔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경찰은 다시 라차데흐를 체포했고, 결국 그는 불법 감금, 납치, 성추행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또한 경찰 수사는 그날 밤 파티에 참석했던 ‘농 디어’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또 한 명의 파티 엔터테이너의 증언을 바탕으로 급물살을 탔다. 경찰에 출석한 농 디어는 자신이 그날 밤 기절할 때까지 억지로 술을 마신 끝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알몸인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이에 자신이 성폭행당한 것이 분명하다면서 파티에 자신을 보낸 에이전트 크리티야 리트망콘(24)을 고소했다.
이에 수사 범위를 확대한 경찰은 곧이어 파티를 주최했던 인물과 함께 그날 밤 파티에 참석했던 손님 등 관련 인물들을 두루 조사하기 시작했다. 경찰 대변인인 크리사나 파타나차론은 “우리는 이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개시했다. 모델 에이전트, 매니저, 그리고 파티에 있던 고객들을 포함해서 모두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곧 경찰은 모델들이 성폭행을 당하도록 유인하거나 주선한 혐의로 크리티야를 기소했고, 파티에 참석했던 여섯 명을 범죄 관련 및 성추행 혐의로 체포했다. 하지만 이들 여섯 명은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농 디어를 절도 및 허위 신고 혐의로 맞고소하겠다고 주장하는 상태다.
이번 사건의 파장은 태국 사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불법 마약류 남용, 성매매 등의 의혹을 받는 이른바 ‘예쁜이 산업’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촉구하는 운동과 함께, 연예·홍보업계 종사 여성들이 직면한 위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티티마 고용업소. ‘예쁜이’라 불리는 여성들은 홍보모델이나 접대부로 일한다.
‘예쁜이’라고 불리는 이 여성들은 주로 나이트클럽, 술집, 파티, 제품 출시 행사장, 자동차쇼 등에 고용되는 홍보 모델들이다. 홍보 모델로 일할 경우 행사 한 건당 약 100달러(약 12만 원)를 벌 수 있으며, 이는 태국의 대학생들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더 나아가 술을 따르면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접대부로 일할 경우에는 불과 서너 시간 만에 수천 바트씩을 벌 수도 있으며, 심지어 마약이나 섹스가 동반되는 위험한 행위를 하는 것에 동의할 경우 그보다 몇 배를 더 벌기도 한다.
이처럼 ‘예쁜이 산업’은 보수가 좋은 데다 비교적 쉬운 일처럼 보이기에 태국의 젊고 매력적인 여성과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놀라운 점은 이런 여성들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비교적 부유한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 태국의 한 언론은 여성들의 경우 일반적인 직장에 다녀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업계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티티마의 경우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었으며, 세 살짜리 딸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 돈을 벌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태국의 권리 및 양성평등 운동가들은 이런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고객과 고용주들로부터 종종 학대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VIP 파티에 고용되는 여성들은 마약, 술, 섹스를 강요당한다면서 때로는 고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지나친 양의 술을 억지로 마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이번 사건에 연루된 에이전트는 24시간 근무를 위해 여러 명의 ‘예쁜이’를 고용하고 있었다.
여성의 행복과 성평등을 위한 프로그램 매니저인 바라폰 챔사니트는 “개인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파티 엔터테이너’로 일하는 것은 태국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직업이다. 많은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이 직업은 성범죄자들이나 술에 취했을 때 그저 재미를 보고 싶어 하는 남성들에게 희생당할 위험이 높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인권과 성평등을 지지하는 단체인 ‘티라나트재단’의 나이야나 수파풍은 “이 바닥에서는 성희롱과 폭력이 흔하게 벌어진다. 고용된 여성들은 종종 지나치게 많은 양의 술을 마시도록 압력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나이야나는 태국 사회가 파티 엔터테이너를 얕보는 풍조가 만연하며, 이런 이유로 그들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을 때 법적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방콕포스트’는 티티마의 죽음을 개인적인 비극이나, 혹은 한 여성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죽은 평범한 범죄로 보는 것은 그릇된 시각이라고 말했다. 티티마의 죽음을 통해 태국의 심각한 사회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며 “강경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챔사니트는 티티마 사건으로 인해 정부가 규제를 통해 이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보호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말하면서 ‘예쁜이’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 도입을 촉구했다. 또한 그보다 앞서 이 여성들을 둘러싼 부정적인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가라오케 접대부로…태국 ‘아동 성착취’의 진화 태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매매 관련 범죄는 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가령 남성들을 술집으로 유인하기 위해 어린 소녀들을 ‘접대부’로 고용하는 식이다. 불법거래방지 자선단체인 ECPAT재단의 케차니 찬트라쿨은 “태국의 아동 성매매는 최근 몇 년 동안 남성들이 매춘업소에 가 직접 소녀들을 접촉하는 방법 대신 가라오케나 술집, 또는 온라인에서 소녀들을 접촉하는 형태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가난한 어린 소녀들에게 술집 접대부로 일하는 것은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가령 치앙마이에서 약 70km 떨어진 농촌에서 자란 핌과 같은 소녀에게 이런 안정적인 벌이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1년 전쯤 집을 나온 후 가라오케 접대부로 일하다 현재 아동보호소에서 생활 중인 핌은 “집에서의 생활은 고달팠다. 나는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며 “적어도 나는 가라오케에서 일할 때만큼은 지루한 줄 몰랐다. 손님들과 술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었다. 어떤 고객들은 내 가슴을 만지곤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들의 손을 밀쳐냈다”고 말했다. 가라오케 접대부로 일할 당시 핌은 매일 밤 하루 최저임금의 두 배 이상인 700바트(약 2만 7000원)를 벌었고, 평소 술집 주인을 ‘엄마’라고 부르면서 친근하게 지내기도 했었다. 더 큰 문제는 단골손님과 술집 주인은 물론 본인조차 이 일을 학대나 불법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국 당국은 이런 업종을 가리켜 엄연히 인신매매의 한 종류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불법행위들이 주로 감시망을 피해 이뤄지기 때문에 조사나 기소 자체를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리키트 타놈추아 경찰 부서장은 “대부분의 범법자는 가라오케 술집 주인들이다. 실제로 성매매로 간주되는 이런 종류의 일을 어린 소녀들이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아동범죄대책반(TICAC) 소속이기도 한 타놈추아는 “대부분의 술집 주인들이 조사를 받을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나는 이 아이들을 매춘에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까닭에 치앙마이의 인신매매 아동자선 단체인 HUG프로젝트 위라완 모스비 소장은 이런 범죄에 대한 정의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어린 소녀들 스스로가 이런 학대를 범죄로 보지 않거나 수사를 받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스비 소장은 “(많은) 아이들이 술집 주인들을 ‘엄마’라고 부르고 있다. 가족이라는 인식도 있고, 의무감도 느끼고 있다”면서 “경찰은 아이들이 협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증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기소되지 않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말했다. 정부 산하 불법거래방지국의 랫차폰 마닐렉 국장은 “이렇게 가라오케 술집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소녀들의 경우, 아동 성매매에 비해 신원 확인이 어려워 단속하기 힘들다”며 “어린 소녀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 아동 성착취는 태국의 현대판 노예제도와 다름없다. 올해 정부가 밝힌 인신매매 사건 191건 중 절반 이상이 아동 인신매매일 정도다. 대부분은 매춘업소에서의 성매매, 포르노 제작 참여 등의 형태지만 최근에는 가라오케 접대부와 같은 새로운 업종에 종사하는 소녀들이 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