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사진=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이다. 노무현 대통령 정책특보, 18대 대선 민주통합당 ‘미래캠프’ 경제민주화위원장을 지냈다. 이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낙하산 논란이 일었던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1년 예산 8조 5000억 원을 굴리는 한국장학재단 이외에도 이 이사장 직함은 많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50주년위원회 위원이며 경북대 명예교수다.
이 이사장은 박철상 씨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박 씨는 여러 번 이 이사장을 멘토로 언급했다. 이 이사장은 박 씨가 사기를 통해 만든 돈으로 만든 장학재단인 복현장학금 설립에 영향을 끼쳤다. 이 이사장은 복현장학금 운영위원장으로서 활동했고, 박 씨가 사기꾼으로 전락한 이후 변호사를 선임해주기도 했다. 박 씨 사기 행각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이 이사장을 보고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이사장과 박 씨의 이런 관계는 국정감사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이 이사장의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지원서 및 자기기술서, 경력서 등에 따르면 박 씨와 관련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자기기술서의 업적 및 활동사항 부분에 이 이사장이 기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북대 재학생 박철상 군이 수년 전 내놓은 복현장학기금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직접 설문지 문항을 만들며 몇 년간 운영, 학생들의 호평을 받았음. 이 장학금이 경북대 재학생 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급되도록 방향을 잡는 데 기여했음. 이 장학금은 그 뒤 안타깝게 중단됨. 수년 전 많은 학생들을 면접하면서 우리 사회에 아직도 가난 때문에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절감하였음.”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의 업적 및 활동사항.
자기소개서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그 일부다.
“박(철상) 군은 마침 제 강의를 듣고 있었고 저하고는 평소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하던 학생이었다. 박 군이 저에게 교수 6명으로 구성된 복현장학기금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기에 저는 좋은 취지이므로 맡았다. 학생들의 장학금 지원서 양식 만들기부터 시작해 지원자들 면접은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당락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 의논해 이 장학기금을 3년간 운영했다. 이 장학금은 학생들로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나중에 박 군이 출연한 기금이 전액 본인 것이 아니라 일부일 뿐이고 나머지는 대구의 여러 독지가들이 출연한 돈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박 군의 미담 사례도 빛이 바래고 아쉽게도 이 장학금은 중단되고 말았다. 하여튼 복현장학기금 3년간의 경험은 참여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아주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의 자기소개서 항목 중 일부. 자료=곽상도 의원실
하지만 이 내용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출연금 대부분이 사기를 통해 만든 조달된 게 수사 결과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박 씨 사건이 사기란 건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이 지원서 등을 제출했던 2018년 6월엔 박 씨 사건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을 때였다. 이 이사장은 2017년 8월 박 씨가 400억 자산가라는 게 거짓임이 폭로됐을 때 질책보다는 위로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박 군 뉴스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음에 상처가 크겠군. 윤 아무개 씨와 셋이서 식사하며 위로모임 갖고 싶은데 시간 되려나”고 했다. 이후 이 이사장은 박 씨 집을 찾기도 하고, 검찰에 고발당한 박 씨를 위해 변호사 조력을 받도록 도와줬다.
결국 박 씨는 2019년 7월 1심에서 사기 혐의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박 씨 사기 행각으로 인한 피해 금액은 최소 30억 원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이 이사장은 “나는 전혀 모른다. 그 뒤로는 통 연락도 없었고 그냥 울산에 가서 근신하고 있는가 보다 생각했다”며 “특혜나 그런 건 없다. 그런 의혹이 있다는 걸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제자가 좋은 일 한다니까 그랬을 뿐이다”고 반박한 바 있다.
하지만 박 씨 피해자들은 “박 씨 사건으로 이득을 본 건 이 이사장밖에 없다”며 “변호사까지 선임해줄 정도 사이면 일정 부분 사기 내용을 알았을 가능성이 큰데 이를 자기 업적으로 썼다. 또 ‘안타깝게 중단됐다’는 표현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고 입을 모았다.
곽상도 의원은 “이 이사장이 복현장학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한 걸로 봐서는 박 씨의 사기 행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문제가 터지자 거기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변호사까지 소개시켜 준 게 아닌가 싶다”며 “사기행각에 연루된 인물이 청와대 인사검증을 통과한 것은 당시 조국 민정수석의 ‘불문’ 지시가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