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미니 맨’
영화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베테랑 요원 ‘헨리 브로건’(윌 스미스 분)이 자신과 완벽하게 닮은 의문의 요원 ‘주니어’(윌 스미스 분)와 목숨을 건 맹렬한 추격전을 벌이며 그들의 과거와 자아를 돌아보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20대의 윌 스미스와 50대의 윌 스미스가 서로를 마주보며 대사와 액션을 나누는 모습은, 윌 스미스의 팬이라면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씬일 것이다. 특히 후반부에 자신의 정체성을 고뇌하며 충격과 배신감, 교차하는 애증을 한 순간에 비춰 보이는 젊은 윌 스미스의 열연은 이 영화에서 단연 가장 인상적이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액션 영화에서 남는 것이 고작 몇 분에 지나지 않는 윌 스미스의 이 연기뿐이라는 점이다. 윌 스미스가 두 명이나 등장하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액션 씬은 다소 난잡하고, 눈을 호강시켜야 할 스케일은 기대를 배신한다.
‘제미니 맨’ 스크린X 화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물론 ‘제미니 맨’의 하이테크놀로지로 말미암은 시각 효과의 진일보는 다음 세대 영화를 위해 중요한 발판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발판’이 그렇듯, 시도는 좋았지만 관객들 앞에 내놓기엔 허점이 더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초당 120프레임이라는 최대치 프레임 속도와 더불어 4K 해상도의 네이티브 3D 카메라로 촬영해 시각효과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따로 노는 배경과 인물 탓에 마치 빈티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이 같은 단점은 엉성한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구축으로 더욱 강조돼 보인다. 윌 스미스가 연기하는 헨리 브로건이나 주니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1회용이거나, 등장은 계속되더라도 단순한 방식으로 소비되는 탓이다.
영화 ‘제미니 맨’ 스틸컷
이는 헨리와 함께 움직이는 동료 요원 대니(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분), 헨리의 대척점에 선 클레이(클라이브 오웬 분)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인간관계는 설명으로 시작해 설명으로 끝나며, 최소 30년 간 이어졌던 액션 영화 속 조연 캐릭터의 클리셰를 답습한다.
인간 복제라는 문제에 대한 깊은 고찰, 유사 부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애증, ‘인간다움’의 모순 등. 입체적인 캐릭터를 사용해 영화가 좀 더 깊게 파고 들 수 있는 테마를 갖추고서도 모종삽으로 대충 흙을 퍼다 만 느낌이다. 결국 영화는 윌 스미스가 두 명 나온다는 것 외에는 어떤 신선함도 갖추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윌 스미스의 ‘두 배의’ 열연은 한 번쯤 볼 가치가 있다. 방식이야 어쨌든 시도 자체는 신선하지 않은가. 2019년 상반기 ‘알라딘’의 파란 윌 스미스의 본래 얼굴을 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117분, 12세 이상 관람가. 9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