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수는 요즘 자신의 기분을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말로 표현한다. 20년 넘도록 꾸준한 연기인생을 걸어온 그 앞에 갑자기 아이돌급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 소속사에 따르면 곽철용 열풍 속 현재 그에게 30여 개의 광고모델 제안까지 밀려들고 있다.
#“묻고 더블로 가!” “나도 순정이 있다”
김응수 열풍의 진원지는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다. ‘타짜’의 3번째 시리즈인 ‘타짜:원 아이드 잭’이 이번 추석 연휴에 맞춰 개봉한 것을 계기로 돌연 폭발적인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200만 관객이 선택한 ‘타짜3’보다 오히려 곽철용이 더 인기를 얻을 만큼 ‘반전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 역할을 맡은 김응수.
‘타짜’에서 김응수가 맡은 곽철용은 도박판을 움직이는 보스다. 주인공인 조승우에게 배신당한 뒤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인물. 속고 속이는 도박 세계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곽철용은 특유의 거친 매력을 뽐내면서 숱한 명대사를 쏟아낸다.
자꾸만 밀리는 도박에서 한판 승부를 걸면서 내뱉는 “묻고 더블로 가!”, 마음에 둔 여성을 향해 넌지시 던지는 “나도 순정이 있다”, 죽음을 앞두고 무심코 던진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등 그의 입을 통해 나온 대사들은 전부 화제다. 인생 희로애락을 모두 겪어봄직한 ‘아재’ 특유의 매력이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뜨거운 인기를 증명하듯, 최근 그는 겪지 않아도 될 일까지 겪었다. 얼마 전 김응수의 이름으로 SNS 계정이 신설됐고 3일 만에 무려 10만 명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내 김응수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 계정이란 사실이 드러나 황당함을 안겼다.
물론 중년의 배우가 뒤늦게 아이돌 스타에 버금가는 전성기를 맞는 건 김응수가 처음은 아니다. 배우 김영철도 지난해 같은 상황을 누린 주역이다. 2002년 출연한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그가 연기한 김두한 캐릭터가 새삼스레 다시 화제가 되면서 이른바 “사딸라!”(4달러) 열풍을 만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시작된 인터넷 밈(Meme·인터넷상에서 재미난 말을 적어 넣거나 다시 포스팅 하는 사진과 영상) 열풍에 힘입어 스타 탄생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응수는 ‘아이언 드래곤’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전성기를 맞고 있다.
당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김영철은 유명 햄버거 브랜드 모델로도 데뷔해 매출 상승까지 이끄는 저력을 보였다. 실제로 지난 7월 해당 햄버거 브랜드는 “김영철의 ‘사딸라’를 활용한 뉴트로 마케팅 덕분에 제품 론칭 9개월 만에 누적판매 1000만 개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실력 없다면 불가능, ‘아이언 드래곤’ 전성기
서울예술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한 김응수는 대학로 유명 극단인 목화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 무대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연으로 발돋움할 만큼 실력을 갖춘 그는 이후 ‘오구’ 등 작품으로 활동을 잇다가 돌연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더 배우고, 더 익히고 싶은 마음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일본으로 향한 그는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설립한 영화학교에서 7년 동안 수학했다. 택한 전공은 연기가 아닌 연출. 일본에서 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영화를 졸업 작품으로 내놓아 주목받기도 한 그는 1996년 영화 ‘깡패수업’의 단역을 맡으면서 연기활동을 본격 시작했다. 그때 나이가 35세였다.
김응수는 이후 20년 넘도록 30여 편의 영화와 40여 편의 드라마에서 맹활약했다. 시대극과 사극, 현대극을 넘나들고 악역과 소시민 캐릭터를 자유롭게 오가는 그의 활약은 지금도 이어진다. 현재 극장서 상영 중인 영화 ‘양자물리학’과 tvN 수목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에 동시 출연하고 있다.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 실력에 힘입어 일본인 역할도 자주 맡은 그는 특히 2016년 KBS 1TV가 방송한 히트작 ‘임진왜란 1592’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할을 맡아 실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김응수가 영화 ‘양자물리학’ 제작보고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지금 맞고 있는 ‘강제 전성기’ 역시 탄탄한 실력과 바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 연극 무대와 일본에서의 연출 공부를 넘어 수십 편에 이르는 영화와 드라마 출연으로 쌓은 ‘내공’이 곽철용 열풍의 자양분이 됐다는 평가다.
그런 김응수에게 새로 붙은 닉네임은 ‘아이언 드래곤’, 철용이란 이름을 영어로 풀이한 말이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김응수는 ‘곽철용 열풍’에 대한 속내를 솔직하게 꺼내 눈길을 끌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별칭”으로 ‘아이언 드래곤’을 꼽은 그는 “젊은 친구들로부터 얻은 인기라서 더 행복하다”고 흡족해 했다.
그가 인기를 체감하기 시작한 건 1년여 전부터. “어딜 가든 젊은 친구들이 사진 찍자는 요청을 해오기 시작했다”며 “나에게 다가와서 ‘선생님 제가 타짜의 모든 대사를 외웠어요’라고 말하는 걸 보고 인기를 감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만약 ‘타짜’ 제작진이 후속편 출연을 요청해 온다면 그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그 어떤 후속편도 1편보다 못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1편을 했는데 왜 또 하겠나. 하하하!”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