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금융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네이버는 지난 9월 임시주주총회에서 사내독립기업(CIC)인 네이버페이를 금융 전문회사 ‘네이버파이낸셜’로 분사하기로 했다. 사내독립기업이란 사내 조직 형태로 있는 스타트업을 뜻한다. 네이버 측은 “신규 법인 네이버파이낸셜은 전략적 파트너인 미래에셋대우로부터 5000억 원 이상을 투자 받을 예정”이라며 “양사는 핵심 역량을 융합해 생활 금융 플랫폼으로의 변화를 시작한 테크핀(IT 업체가 주도하는 기술에 금융을 접목한 서비스) 시장에서 본격적인 흐름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네이버는 또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활발한 금융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월 30일, 네이버 계열사 라인은 대만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허가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라인은 “태국에서는 태국 카시콘은행과 ‘카시콘 라인’을 합작 설립하고, 인도네시아에서는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과 함께 디지털뱅크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일본에서는 2020년 ‘스마트폰 은행’을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라인뱅크 설립준비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등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네이버 건물. 사진=고성준 기자
네이버는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는 진출하지 않는다. 네이버는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의 직·간접적인 구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적정한 파트너만 있으면 인터넷전문은행에 참여할 의사가 있지만 자본력과 혁신성을 갖춘 ICT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며 “키움증권마저 혁신성이 없다고 떨어지는 판에 아무리 찾아봐도 네이버만한 기업이 없다”고 전했다. 네이버가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에 나서면 적지 않은 금융사들의 참여도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네이버가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하면 사업 파트너 관계인 미래에셋대우도 함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카카오만큼이나 확실한 카드인 네이버와 함께 하려는 금융사는 미래에셋대우 외에도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네이버가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하지 않는 이유는 기존 은행들과 차별화를 두기 어렵다는 내부 판단에 따른 것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현재 카카오뱅크를 비롯한 인터넷전문은행과 기존 시중은행들의 인터넷뱅킹이 잘 돼 있어서 우리가 차별화된 가치를 주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며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는 우리나라처럼 (인터넷뱅킹이) 잘 돼 있지 않아 국내 은행에서 하는 것처럼 하면 현지 은행과 차별화를 줄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네이버가 카카오에 비해 메신저 점유율이 낮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태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 국가에서 라인 메신저를 사용한 사람은 1억 6400만 명(한 달에 한 번 이상 접속한 사람 기준)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카카오톡에 밀려 큰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주로 스마트폰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카카오톡과 연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뱅크만큼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 카카오뱅크는 이미 지난 7월 고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 네이버가 인터넷전문은행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것도 난항이 예상된다.
또 카카오뱅크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는 하지만 2017년 1042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2018년에도 213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 들어서야 96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간 카카오뱅크가 1조 원 이상의 유상증자까지 단행했던 걸 생각하면 적지 않은 금액의 투자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반면 네이버페이는 이미 업계에 자리를 잡은 상태다. 모바일 메신저를 제외한 다른 서비스에서는 네이버가 카카오에 뒤지지 않아 향후 전망도 좋은 편이다. 성종화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네이버페이의 온라인 가맹점수는 29만 개로 카카오페이, 페이코, 토스 등 주요 핀테크 업체에 비해 훨씬 많다”며 “네이버검색, 네이버쇼핑과 시너지를 바탕으로 검색·쇼핑·결제를 네이버 플랫폼 내에서 한꺼번에 수행함에 따른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강력한 경쟁력 우위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국내에서 보험, 대출, 투자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네이버파이낸셜에 거액을 투자한 미래에셋대우가 보험, 투자 등에 강하기에 우리도 (은행이 아닌) 보험 등의 분야에 진출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2017년 네이버와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후 많은 일들을 같이 했다”며 “네이버파이낸셜에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협업한다는 성격으로 보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