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은 지난 9월 26일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 및 배터리사업 미국법인을 특허침해로 제소했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을 분석한 결과, 자사의 2차전지 핵심소재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관련 미국특허 3건, 양극재 미국특허 2건, 총 5건을 침해해 부당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특허들은 ‘원천특허’라 회피 설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LG화학 측 설명이다.
LG화학은 최근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특허침해로 제소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번 소송은 LG화학이 지난 4월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소송과는 별개다. 지난 8월 30일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LG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강하다. 당시 SK이노베이션은 앞서의 LG그룹 계열사들이 특허침해로 부당이득을 챙기고 있다며 미국 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했다. LG화학은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LG화학의 제소와 동시에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다. 특허침해 소송의 근거가 된 5건 가운데 1건이 지난 2014년 양측이 체결한 ‘부제소’하기로 합의했던 건이라는 주장이다. 부제소 합의란 분쟁 당사자들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SK이노베이션은 ITC 등 소장을 분석한 결과, LG화학이 침해 소송을 제기한 특허 중 SRS 원천개념특허로 제시한 특허번호 ‘US 7662517’은 한국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 ‘KR 775310’과 동일하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 특허는 LG화학이 과거 국내에서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던 특허”라며 “당시 LG화학이 특허침해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한 뒤 합의를 제안해 이를 대승적인 차원에서 받아줬는데, 이를 또다시 들고 나와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 파기환송 두고 양측 엇갈린 해석
SRS 특허를 둘러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국내 소송전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까지 무려 3년여 동안 ‘특허권침해금지’와 ‘특허무효’ 공방을 주고받았다. 당시 LG화학은 SRS 기술을 SK이노베이션이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독자 개발한 세라믹 코팅 분리막(CCS) 기술이 바탕이 됐다며 특허심판원에 LG화학의 분리막 특허에 대해 무효 심판을 청구해 맞불을 놨다.
유리한 고지에 먼저 오른 건 SK이노베이션이었다. 2011년 8월 특허심판원은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을 받아들여 LG화학의 분리막 특허 기술에 대한 무효심결을 내렸다. 2심인 특허법원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불복한 LG화학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문제는 이 대법원 상고심이다. 당시 LG화학이 원심 법원의 ‘특허청구 범위가 너무 넓다’는 판단에 따라 특허의 범위를 바꿔서 상고했는데, 대법원이 “특허가 변경됐으면 재심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명확한 결과가 내려지지 않은 탓에 양측은 당시에도, 현재까지도 서로 소송전에서 이겼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4일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던 LG화학이 시간을 끌기 위해 범위를 넓혔던 것”이라고 주장했고, 같은 날 LG화학 관계자는 “대법원이 재판을 다시 하라는 취지였던 만큼 앞선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소송전은 2014년 10월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이 ‘휴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단락된다. 양측은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SRS 특허와 관련해 향후 10년 동안 다툼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합의서 서명 당사자는 SK이노베이션은 김홍대 NBD총괄(퇴임), LG화학은 권영수 (주)LG 부회장(당시 LG화학 대표이사)이었다. 합의서에는 “대상 특허와 관련해 향후 직접 또는 계열회사를 통하여 국내/국외에서 상호간에 특허침해금지나 손해배상의 청구 또는 특허무효를 주장하는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2014년 양측이 서명한 합의서를 무효화하는 게 아니냐며 날을 세우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SK이노 “합의문 무효화시키나”vs LG화학 “별개의 특허”
SK이노베이션은 합의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했던 특허가 이번에 LG화학이 제소하면서 포함한 특허와 같다고 주장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경쟁사(LG화학)가 특허독립(속지주의) 원칙 상 미국 특허와 한국 특허는 각각 다르다고 주장한다”며 “모든 국가에서 특허청구범위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단순히 특허청구범위가 다르다고 하나의 발명을 가지고 다른 특허라고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쏘나타와 미국에 수출되는 쏘나타가 각국 등록번호는 다를지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모델인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동일한 발명에 대한 특허 여부는 발명의 상세한 설명과 도면이 같은지 등을 통해 판단된다”며 “미국 특허청과 한국 특허청에 등록된 SRS 특허 내용을 보면, 개발자와 출원인, 특허제목, 상세 설명과 도면 등이 일치한다. 결정적으로 LG화학은 미국에 PCT출원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PCT의 핵심은 기준 국가, 즉 한국 특허와 동일한 내용만을 인정해준다는 점이다. 다른 특허였다면 미국에서 출원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US517특허(미국, 왼쪽)와 KR310특허(한국, 오른쪽) 도면 비교. SK이노베이션은 두 특허가 완전히 동일한 도면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이에 대해 LG화학은 “이번에 침해를 주장한 특허는 과거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했던 특허와 권리 범위부터가 다른 별개의 특허”라며 “이를 같은 특허라고 주장하는 것은 특허 제도 취지나 법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LG화학 관계자는 “각국 특허는 서로 독립적으로 권리가 취득되고 유지된다. 이에 따라 특허 권리 범위도 서로 다를 수 있다”며 “실제로 이번에 제소한 미국 특허는 ITC에서 ATL이라는 유명 전지 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금지 소송에서도 사용돼 라이선스 계약 등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향후 소송이 진행될 예정인 만큼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까지 밝힐 수 없지만, 2014년 합의문을 미리 검토한 뒤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져 ITC 제소를 결정했다”며 “이번 특허 소송은 경쟁사 등으로부터 특허침해 소송을 당한 경우 정당한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특허로 맞대응하는 글로벌 특허소송 트렌드에 따른 것으로, 경쟁사(SK이노베이션)도 소송에 정당하게 대응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