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연합인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가 주최한 ‘문 대통령 하야‘ 범국민 투쟁대회가 10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서초동 촛불 집회를 하루 앞둔 9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장관과 관련해 첫 공식입장을 내놨다. 이날 문 대통령은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기관이므로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전 검찰력을 기울이다시피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성찰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국 장관 일가를 수사 중인 검찰의 여러 행태들에 대한 여권 불만이 누적된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됐다. 압수수색 시점과 강도, 피의사실 유출 등 검찰이 수사가 아닌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최종 결론이라고 한다. 여기엔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보고가 영향을 미쳤다. 한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검찰이 조국 장관 부인과 자녀들 혐의 입증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침묵을 지키던 문 대통령이 강경한 발언을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개혁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자칫 무리한 수사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이다. 문 대통령 메시지를 접한 검찰 내부는 ‘수사 압박’이라는 불만도 나왔지만 실적이 나지 않는 수사 상황에 대한 우려도 확산됐다.”
문 대통령 발언은 9월 28일 서초동 촛불 집회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 친문계 의원은 “조국 사태 본질은 조국이 아니라 검찰개혁이라는 걸 분명히 했다. 이는 여권은 물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면서 “서초동 집회에서 조국 수호보다 검찰개혁 목소리가 훨씬 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이 일종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라고 말했다. 친문계 다른 관계자도 “조국 장관에 대한 비토 기류 때문에 집회 참석을 고민했는데, 문 대통령 발언을 듣고 촛불을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30일 조국 장관 첫 업무보고에서도 “모든 공권력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라면서 “검찰총장에게 지시합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해 주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당시 청와대와 여권은 서초동 집회에 대규모 인파가 몰린 것을 두고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 그러자 문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직접 검찰개혁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윤석열 총장과 관련해 민감한 얘기들이 새어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윤 총장이 문 대통령에게 조국 장관 임명 반대 뜻을 전달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윤 총장이 본인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력행사’에 나섰다는 게 그 골자다. 그 진원지로는 청와대가 꼽혔다. 관망하던 청와대가 직접 윤 총장을 겨누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뒤를 이었다. 여권 인사들 사이에선 “검찰이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사실을 흘리고 있는 것에 대한 맞불”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문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의 이러한 스탠스는 조국 정국에서 나타났던 민주당 내 이상기류와 무관하지 않다. 친문 진영에 대한 내부 반발을 선제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노림수도 담겨있을 것이란 얘기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문 대통령 검찰 발언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나치게 신중해서 때론 비판도 받았던 문 대통령 어법 치곤 너무 셌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조국 정국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며 “무엇보다 집안 단속 효과가 나타났다. 조국 임명, 친문 중심 총선 물갈이 가능성 등에 대한 불만 표출이 임박했었는데 수면 아래로 다시 들어갔다”고 귀띔했다.
9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사법적폐 청산 집회에서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 등 참가자들이 검찰 개혁과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는 피켓과 촛불을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이는 친문 진영 총선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친문 전략가들은 문 대통령 남은 임기의 성패를 좌우할 내년 총선에서 ‘집토끼’를 잡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노무현 정부 후반 핵심 지지층이 등을 돌리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학습효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3년 차 때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 항명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지지층 분열로 이어졌고, 각종 선거 참패를 가져왔다. 노 전 대통령에겐 조기 레임덕이 찾아왔다. 훗날 노 전 대통령은 “소수파 대통령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비서실장,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이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한 전직 친문계 의원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우리에게 표를 던지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모두를 안고 갈 순 없다”면서 “지지층 변심이 가장 두려운 변수”라고 했다. 많은 정치평론가들 역시 “조국 장관을 놓고 진보진영 집안싸움이 벌어지자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 화두를 전면에 내세워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계산에 넣었을 것이란 반응도 나온다. 총선에서 압승하지 못하더라도 정의당 등 범진보진영과 함께 연합전선을 구축하면 자유한국당 주도의 보수당에 밀리진 않을 것이란 시나리오다. 굳이 외연을 확장하기보다는 지지층 관리에 힘을 쓸 것이란 관측과 맥이 닿는 대목이다. 그동안 정의당 내에선 민주당으로부터 뒤통수를 맞는 것 아니냐는 말이 끊이지 않았는데, 조국 정국을 거치면서 이런 우려는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어찌됐건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과의 일전에서 선봉을 맡았다. 지금으로선 출구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문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올 전망이다. 10월 3일 ‘조국 사퇴’ 광화문 집회는 그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상 밖 인파가 몰리면서 서초동 촛불 집회와 세 대결 양상으로 번질 조짐이다. 광화문 집회 참석자 중 상당수는 조국이 아닌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조국의 문제가 이제는 문재인의 문제로 치환된 것이다. 이를 두고 여권 중진 의원이 한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조국 공방, 검찰개혁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국민을 두 동강 낸 1차 책임은 대통령, 그리고 집권당에 있다고 본다. 반성한다. ‘우리만 옳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인식이 퍼져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핵심 지지층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나머지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도 민주당’에서 ‘이제는 한국당’이라는 구호가 나올 수도 있다. 지금은 총선을 내다볼 때가 아니다. 거리로 나온 국민들의 갈등을 부추기지 말고 집권당이 먼저 이 문제를 제도권 정치에서 풀어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