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KBL 현장으로 돌아온 전창진 KCC 이지스 감독. 사진=이영미 기자
[일요신문] 농구 코트로 돌아오기 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공백의 간극만큼 복귀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즌 개막을 3일 앞두고 기자와 마주한 그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개막전이라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겠지만 농구 팬들을 다시 만나는 환경도 그한테는 새로운 용기를 필요로 한다.
10월 1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전주 KCC 훈련장에서 전창진(56) 감독을 만났다. 이날은 마침 안양 KGC와의 연습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개막 직전의 마지막 연습 경기였고, 상대팀이 김승기 감독이 이끄는 안양 KGC라는 점에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전 감독은 안양 KGC 사령탑을 맡았던 2015년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 혐의로 KBL로부터 무기한 등록 자격 불허 징계를 받았고,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 감독은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에 따른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단순 도박 혐의 관련해서도 올해 6월 무죄 판결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KCC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다.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전 감독과의 인터뷰를 정리한다.
올시즌 전주 KCC의 팀 상황은 좋은 편이 아니다. 높이를 맡은 하승진이 은퇴했고 전태풍(서울 SK), 김민구(원주 DB)는 이적 수순을 밟았다. 이정현, 송교창이 팀을 이끌고 있고, 새로운 이적생들(박성진, 정창영, 이진욱, 최현민, 한정원, 박지훈)이 대거 합류했지만 전력에 다소 아쉬움이 있는 건 사실. 전창진 감독은 높이가 부족한 선수들에게 수비를 강조했고, 근성 있는 플레이를 요구하며 ‘전창진식 농구’를 주입시켰다. 비시즌 동안 치열하게 준비하고 훈련한 덕분에 KCC 선수단의 팀 컬러는 확 변했다. 농구 전문가들은 전주 KCC가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오랜만에 미디어데이에 참석했다. 소감이 어떠했나.
“다소 얼떨떨했다. 5년 전과 분위기나 환경이 많이 달라진 것 같더라. 선수들도 자연스러워 보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의 일이라 조금 낯설게 다가왔던 것 같다.”
비시즌 동안 팀의 체질 개선에 중점을 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적생들이 많아서인지 KCC가 완전히 다른 팀으로 새로 태어난 것 같다.
“지난해 기술고문으로 코트 밖에서 우리 팀을 지켜본 시간들이 큰 도움이 됐다. 장단점을 파악해둔 덕분에 선수들이 내 훈련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본다. 많은 훈련량으로 인해 체력적인 부담이 컸을 텐데 별다른 잡음 없이 훈련에 집중했고, 잘 따라왔다. 부상 선수 없이 시즌을 맞이한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
전주 KCC는 9월17일부터 23일까지 마카오에서 열렸던 터리픽12 대회에 참가하기 전 필리핀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이전까지 국내 연습 경기에서는 엇비슷한 신장의 선수들을 상대했다면 필리핀에서는 신장과 힘이 좋은 선수들과 맞붙게 되면서 경기 운영과 경기를 풀어가는 요령을 배울 수 있었다. 전창진 감독은 필리핀 전지훈련 이후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 1일 열린전주 KCC와 안양 KGC의 연습경기 중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전창진 감독. 사진=이영미 기자
이전 전주 KCC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좀 더 체계적이고 기술적인 면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눈에 띄었다. 실질적으로 선수들이 국내 선수들로만 구성된 상태에서 농구를 해보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한테 의지하거나 이정현이 중심을 이루는 투맨 게임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모든 선수들이 공을 만지고 다 같이 움직이는 플레이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우리 팀의 단점으로 꼽히는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려면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 한 경기에 20분 이상 뛰는 선수들이 없을 것이다. 12명을 골고루 출전시킬 예정이다. 자신이 뛰는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여전히 부족한 면이 눈에 띄지만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더 좋은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공백기 동안 KBL은 다양한 변화를 맞이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꼽는다면?
“외곽 위주의 공격력이 대세를 이루고 있더라. 그러나 이 또한 조화가 필요하다. 아무리 외곽슛이 중요해도 포스트에서 만들어내는 득점은 무시할 수 없다. 외곽슛이 살아나려면 포스트에서의 득점도 함께 이뤄져야 강팀이 되는 것이다. 지난 시즌 현대 모비스가 우승한 요인 중 하나가 함지훈과 라건아의 호흡이었다.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가 다 자리를 잡아야 좋은 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농구 감독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시련의 날들을 보냈다. 전주 KCC 또한 숱한 비난을 감수하고 전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KCC 팀한테 큰 빚을 졌다. 앞으로 이 팀을 이끄는 동안 어떤 형태로든 팀을 위해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 팀으로서는 잡음이 있었던 지도자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날 이 자리로 이끈 건 사람 전창진에 대한 기대보다 감독 전창진에 대한 기대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농구 잘하는 선수들로 팀을 만들어 달라는 기대치가 포함됐다고 본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선수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팬들의 시선이 아직까지도 긍정적인 편이 아니다. 이 또한 극복해 나가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내가 다가가야 한다. 특히 전주 팬들한테는 기회 되는 대로 직접 만나는 자리를 가질 계획이다. 혼내시면 혼내는 대로, 야단치시면 야단치는 대로 다 맞을 각오가 돼 있다.”
전창진 하면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 대변됐었다. 특히 경기 중 심판에게 강한 어필을 하는 모습이 팬들의 눈에는 불편하게 비춰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올 시즌 벤치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고칠 부분은 고쳐야 한다. 팬들이 원하지 않는 모습이라면 자제할 생각이다. 물론 치열하게 경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갑자기 의도치 않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경기에만 집중하면서 시합을 이끌고 싶다. 또한 너무 그런 외적인 평가에 신경 쓰는 것도 선수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김승기 감독은 “올 시즌 KCC는 완전 달라진 모습”이라고 평가하며 선배 전창진 감독의 복귀를 반겼다. 사진=이영미 기자
전주 KCC는 그동안 다섯 차례의 연습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날은 시종 앞서가다 3쿼터 넘어서면서 KGC의 거센 추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94-99로 패하고 말았다. 경기를 마친 후 김승기 감독은 승리를 거뒀음에도 “전창진 감독한테 한 수 배웠다”고 자세를 낮췄다.
“올 시즌 전주 KCC는 완전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수들 움직임이 굉장히 빠르고 멀티 플레이어의 역할을 소화해낸다. 기존 KCC의 색깔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전 감독님은 내가 모신 분이라 어떤 농구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오늘 (연습)경기를 통해 또 다시 배웠다. 역시 농구 지도는 최고이신 것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