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인파는 화학섬유로 짠 회색 차렵 이불을 두르고 있었다. 50대 이상 기독교 신자가 대부분인 이 이들에게 차렵 이불은 급작스레 찾아온 추위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종이 상자는 그들의 바람막이 됐고 은박 돗자리는 요가 됐다. 비닐을 몸에 칭칭 감은 한 사람은 눈만 내놓은 채 잠에 들었다. 두꺼운 점퍼 위에 노란 우비를 걸친 한 사람은 손에 입김을 호호 불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인파 대부분은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가는 사람들이었지만 유독 눈에 들어온 젊은이가 하나 있었다. 인파 사이로 빨간 후드를 뒤집어 쓴 이 사람은 경기도 용인에서 혼자 올라온 33살 여성 미용사 정 아무개 씨였다. 그는 10월 3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 때 모친과 함께 광화문에 왔다가 밤샘 투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10월 8일 이곳에 홀로 왔다.
정 씨는 “미용실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 미용실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답답한 마음에 혼자 이곳에 오게 됐다”고 했다. 그가 가장 분노하던 건 이번 정권 들어 갑자기 변해버린 청년의 근로 문화였다. 그는 “최저임금이 급상승해 버티기 힘들어졌다. 그건 그래도 견딜 만했다. 더 큰 문제는 실업급여 기간과 액수를 계속 늘려주겠다고 말하는 이 정부의 기조”라며 “그런 기조가 계속 되다 보니 청년들은 이제는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자’고 생각하기 보단 ‘적당히 하고 그만 두면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아예 자리 잡혀 버렸다.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만 챙기고 다들 일자리를 뜬다. 도무지 영업을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를 분노케 한 건 언론 탓도 있었다. 그는 “9월 28일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에 비해 더 많은 사람이 10월 3일 광화문 조국 사퇴 집회에 나왔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며 “10월 5일 서초동에서 각 진영이 맞불 집회를 벌였다. 근데 기사를 보니 모두가 다 조국 수호 집회 참가자처럼 분류됐다. 이건 뭔가 잘못 됐다”고 했다. 정 씨 주변 친구들 가운데에는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제기되는 의혹에 “모른다”를 남발하는 사람이 법무부 장관으로 있는 이 나라에 더 이상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했다.
41살 남성 임 아무개 씨도 친구와 함께 단둘이 밤샘 투쟁에 나온 사람이었다. 그는 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오늘 홀로 밤샘 투쟁에 나온다는 친구와 시간이 맞아 함께 왔다고 했다. 그는 “유튜브를 보다가 10월 3일부터 여기 계신 어르신들 모습을 보게 됐다. 어제 비가 많이 오는데 우비 입고 버티시는 그 분들을 보며 마음이 짠해졌다. 일종의 부채 의식이었다. 하루라도 힘이 되자는 마음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준이라는 건 늘 같아야 한다. 이전 정권에서는 칼 같이 안 된다고 하던 기준이 이번 정권 들어서는 말도 안 되게 느슨해졌다. 더욱 분노가 차오르는 건 이번 정권이 집권 과정에서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도덕적, 법적 잣대가 조국 일가에게만 다르게 적용되는 건 한참 잘못된 것”라고 했다.
찬 바닥에 앉아있는 인파 사이엔 여명 서울시의원(28•여)도 있었다. 그는 “김진수 시의원님이 젊은이들 앞날 생각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한테 ‘총알받이 역할은 나이 많은 우리가 하겠다’고 하시길래 울컥해 나오게 됐다”며 “최전선에서 우리 시민들이 연일 밤을 새고 있다. 정치인도 시민단체도 못하는 일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현실이 놀랍고 또 슬프다. 전체 숫자로 보면 아주 적은 숫자지만 청년들도 하나 둘 늘고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다.
10월 8일은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자정 무렵 기온은 11도였다. 이튿날 새벽 8도까지 떨어질 거라는 예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은행이 지는 시기에 바람까지 강하게 불기 시작하자 사방이 고약한 냄새로 진동했다. 고약한 은행 냄새가 섞인 매서운 바람에 한국리서치의 최근 여론 조사 결과가 담긴 ‘문재인 지지율 32.4%, 민주당 지지율 27.8%’ 플래카드가 효자로 한 켠에서 밤새 펄럭였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