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정감사에서 ESS 화재사고가 도마위에 오르며 SK이노베이션과 치열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LG화학에 악재가 겹쳤다.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조만간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 이슈가 재조명되고, 이는 LG화학에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난 4월경 발생한 미국 애리조나 APS 변전소 화재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화재의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으나, 국내에서 이미 수차례 ESS 배터리 화재가 발생한터라 해당 변전소에 배터리를 공급한 LG화학이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국내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ESS 화재사고로 사람이 다친 경우가 세계적으로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니만큼 업계에서 굉장히 민감한 이슈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7일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는 ESS배터리 화재가 거론되며 LG화학이 집중적으로 질타를 받았다. 국내에서 발생한 ESS 화재 26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4건이 LG화학의 배터리에서 발생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정부가 확실한 원인 규명을 하지 않은 탓에 제조사가 책임을 회피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LG화학 배터리 14건 화재 모두 특정 시기, 특정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2017년 2분기에서 4분기 동안 LG화학 중국 남경공장에서 만들어진 초기 물량”이라며 “LG화학의 배터리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는데, 정부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만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민관합동 ESS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화재원인으로 △배터리 시스템 결함 △전기적 충격요인에 대한 보호체계 미흡 △운용환경관리 미흡 및 설치 부주의 △ESS 통합관리체계 부재, 네 가지 요인이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또 안전강화 대책으로 제조기준에서는 안전확인 품목으로 관리하고 인증을 강화하는 데 그친 반면, 설치 및 운영·관리와 소방기준 강화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업계에서는 “정부의 발표로 오히려 책임이 불분명해졌다”며 “정부가 제조사 문제임을 알면서도 배터리를 해외에 수출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불똥이 튈 것을 염려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정부가 안전관리에 손 놓은 채 재생에너지 보급을 밀어붙인 결과 ESS 화재사고가 발생했다는 것.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ESS 화재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연결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성윤모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이 지난 7일 오전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관련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민관조사위원회의 원인조사 자료에 ‘다수의 사고가 동일 공장의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배터리를 사용해 화재가 발생한 것이 확인됨에 따라 셀 해체분석을 실시한 결과, 1개사 일부 셀에서 제조결함을 확인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제조사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정부가 LG화학 제조 배터리의 문제점을 인지했으나 조사결과 발표에서 이를 알리지 않았고, 비공개적으로 조치를 요구했다는 방증인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LG화학 제품의 문제를 미리 인지하고도 결과 발표에서 대외적으로 제조사를 밝히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사위원회가 현명하다. 제조사를 특정하거나 제조사명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조사결과 보고서와 첨부된 사진 자료 등을 보면 업계 관계자들은 충분히 LG화학임을 알 수 있게 해놨다”며 “조사위원회에서 다양한 주장이 나왔으나 이 논의가 모두 발표된 결과에 담기지는 않았다. 산업부는 조사위원회가 낸 결론을 발표한 것일 뿐”라고 밝혔다.
배터리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LG화학에는 악재가 겹치게 됐다.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준호 LG화학 부사장은 “문제가 제기된 (중국 남경공장 생산) 배터리가 만약 해외 사업장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배터리 교체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LG화학이 해당 제품의 국내외 판매 물량에 대해 리콜을 진행하게 될 경우 약 1500억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고, 대외적 신뢰도 또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LG화학은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업황 악화로 주력사업인 석유화학 부문의 수익성이 감소한 데다, 전지 부문에서 대규모 적자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6508억 원) 대비 57.7% 감소한 2754억 원에 그쳤고, 2분기 영업이익(2675억 원) 또한 전년 7033억 원 대비 62% 급감했다.
LG화학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ESS 충당금 이슈와 전지 부문 적자가 LG화학 실적에 타격을 주고 있다”며 “배터리 부문에서 성장을 기대했지만 이 또한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도 “LG화학은 기존 주력사업인 석유화학 부문에서 번 돈을 미래 성장 동력인 배터리에 쏟아 부었다”며 “배터리 부문 적자가 이어질 전망이라 LG화학이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전 또한 LG화학의 발목을 잡고 있다. 소송과 맞소송이 이어지며 양사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으나, 양측이 소송전에 열중하는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배터리 시장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LG화학의 앞뒤로 자리하는 중국과 일본 기업이 LG화학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는 우려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미래 먹거리인 배터리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며 “원통형 배터리인 삼성SDI와 달리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파우치형으로 형태가 비슷해 직접적인 경쟁상대”라며 “먼저 소송을 제기한 것은 LG화학이지만, 최근 ESS 화재 등의 악재가 겹치며 외려 곤란해진 상황”이라고 평했다.
반면 LG화학은 소송전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진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소송은 소모전이 아니라 권리를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
LG화학 관계자는 “국내 기업 간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경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국익을 위하는 것”이며 “글로벌 기업들은 늘 소송 속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영업비밀이나 특허를 보호받지 못한다면 해외 경쟁사들의 표적이 되고, 반대로 차별화된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고 있으면 사업에서의 확실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