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문재인 정부의 민낯이다. ‘조국 갈등’을 잠재울 해결사가 없다. 조국 정국 최전선에 선 문재인 대통령의 강경 일변도를 완충할 참모진이 전무하다는 얘기다. 참모진들은 보완재 역할은커녕 분기점마다 ‘트러블 메이커’를 자처하는 모습이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강기정 정무수석,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대표적이다. 이들 3인방이 갈등의 진원지로 전락한 셈이다. 검찰의 칼날은 정권 게이트 입구를 겨누지만, 청와대 참모진의 정무 기능은 여전히 오작동하고 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박은숙 기자
원조 친문(친문재인)인 노영민 실장의 귀환은 화려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가장 믿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문 대통령도 2015년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당시 한 라디오에 출연해 ‘주요 정치 현안을 누구와 상의하느냐’라는 질문에 노 실장을 지목했다. 지난 1월 8일 청와대에서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은 ‘노영민 임명’을 직접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신친문(임종석)과 원조 친문의 바통터치에 정치권 시선이 쏠렸다.
잡음도 적지 않았다. 노 실장이 복귀한 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베이징에서 4차 정상회담을 한 날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일 때 북·중이 공동전선을 통해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노 실장의 직전 직책은 주중대사. 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방중할 때, 노 실장은 청와대로 달려간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문 대통령이 노 실장 복귀 날 ‘가짜 뉴스 대응 지침’을 하달한 점이다. 문 대통령은 1월 8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를 지속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단호한 의지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가짜뉴스 대응 지침을 언급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청와대는 당시 부처별 홍보 전담 창구 마련도 지시했다. 최저임금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을 때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최저임금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홍보 부족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가짜 뉴스와의 전쟁은 계속됐다. 청와대는 4월 11일 노 실장 명의로 강원도 산불 당시 문 대통령 음주설 행적과 관련한 가짜 뉴스에 대해 고발을 진행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노 실장은 청와대 자체적으로 ‘허위조작정보 대응팀’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청와대 고발은 지나친 오버로, 이 역시 참으로 위선”이라며 “대통령 일정을 속 시원히 공개하고 설명하면 될 것을 고발까지 하느냐”라고 꼬집었다.
그런데 이러한 스탠스는 청와대 조직의 유연성이 떨어졌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청와대 참모진의 인사 접촉 때 보고체계를 강화했다는 말도 끊이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선 “청와대 인사들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불만도 나온다. 앞서 노 실장이 취임 당시 “부족함을 경청으로 메우려고 한다”고 몸을 낮춘 것과는 정반대다. 퇴로 없이 ‘고(GO)’만 외치는 조국 정국의 강경 일변도에도 이 같은 이분법적인 인식이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노영민의 존재감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이슈 때도 주목받은 것은 노 실장이 아닌 김현종 차장이었다. 취임 초에는 달랐다. 산업통 면모를 발휘했다. 정부의 ‘3대 중점육성 산업(비메모리 반도체·바이오·미래차)’ 추진에도 노 실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실장은 19대 국회 당시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3대 중점육성 산업을 공개한 직후인 4월 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방문하는 등 재계와의 스킨십을 늘렸다. 여권 관계자는 “노 실장 취임 이후 문 대통령의 혁신성장 행보가 가장 달라진 부분”이라고 말했지만, 그 밖의 부분에선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
강기정 정무수석(왼쪽)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5월 국회에서 열린 경찰개혁의 성과와 과제 당·정·청 협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노 실장과 같은 날 취임한 강기정 수석은 청와대 정무라인 총책임자다. 정교한 지휘를 해도 모자랄 판에 ‘검찰 외압’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강 수석은 문 대통령이 제74차 유엔총회 기간 조 장관을 수사하는 검찰에 ‘조용히 수사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는 9월 26일 전남 순천시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균형발전 정책박람회’에 참석, 기조연설 도중 “검찰도 대한민국의 구성원이고 공무원이라면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출국한 지 하루 만에 조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한 검찰을 성토한 것이다.
강 수석 발언은 즉각 ‘청와대 수사 외압’ 논란으로 번졌다. 파문이 확산되자 강 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 관계자 중 저한테 직간접적으로 연락받은 분이 있다면 손!”이라고 해명했지만 갈등을 중재할 정무수석 책임을 사실상 방기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 장관도 강 수석 발언이 전해진 그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자택 압수수색 당시 현장에 있던 검사와 통화한 사실을 실토, 검찰 수사 외압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강 수석은 조국 정국이 한창인 8월 30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피의사실 공표 사건을 수사하라”고 압박했다. 문 대통령보다 먼저 윤 총장을 콕 집어 저격한 셈이다. 이후 유엔총회를 마치고 귀국한 문 대통령은 9월 27일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중요하다”고 검찰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사흘 뒤에는 조 장관을 청와대로 부른 뒤 “검찰총장에게도 지시한다”며 “자체 개혁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옐로카드를 꺼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 수석은 지난 6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6월 11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정당 해산’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 과정에서 정무수석실이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평가가 내려졌다”고 평가, ‘청와대 vs 한국당’ 긴장 관계에 불을 댕겼다. 이후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6월 23일 “노 실장 등으로부터 한 번도 전화조차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폭로했다. 강 수석은 다음 날 국회를 전격 방문, 나 원내대표를 비공개로 만나 “소통이 부족했다면 더 노력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강 장관은 9월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지난 4월 대통령 순방 때 김 차장과 다퉜느냐’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 질문에 “부인하지 않겠다”고 시인했다. 김 차장은 당시 외교부 직원을 꾸짖다가 강 장관의 항의를 받고 “이게 내 방식(It’s my style)”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둘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해명했다. 김 차장도 “제 부덕의 소치”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런 김 차장은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기간 외교부 주 유엔대표부 소속 과장급 직원의 의전 실수를 질책하며 무릎을 꿇게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휩싸였다. 정진석 의원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 당시 아는 전직 고위 외교 관료에게 전화하니 ‘김현종이 정의용(국가안보실장)을 눌렀구먼’이라고 하더라”며 “변호사 출신의 통상전문가인 김 차장은 한마디로 리스키(위험한·risky)한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김 차장 구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9월 1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과 조찬 회동을 한 사실을 공개했다. 외교가에는 미묘한 반응이 흘러나왔다. 9월 20일은 강 장관과 에이브럼스 사령관 오찬 회동이 예정된 날이었다. 차관급인 김 차장은 강 장관보다 서열상 아래다. 차관급이 장관 외교 행보의 힘 빼기에 나섰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외교가 한 인사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김 차장은 유력한 차기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꼽힌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윤상현 한국당 의원은 “청와대 일개 참모가 상전 노릇을 하듯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청와대 트러블메이커, 이대로 그냥 두는 것이 제대로 된 정부냐”고 꼬집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