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롯데캐피탈을 일본 롯데홀딩스 계열에 편입시키기로 하면서 금융권에서 ‘고바야시 역할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재판에서 법정에 들어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최준필 기자
지난해 말, 롯데그룹은 금융계열 3사 매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롯데그룹은 2017년 10월 롯데지주를 설립하면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자회사나 손자회사로 둘 수 없다는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롯데그룹은 올해 10월 안에 금융계열사를 모두 정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들 중 롯데카드의 경우 매수희망자를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고, 롯데손해보험의 경우 롯데역사가 보유한 지분 7.1%만 정리하면 공정거래법에 저촉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반면 롯데캐피탈은 카드와 손보가 분리되면 시너지가 별로 없는 회사여서 매각작업이 흥행할지 여부가 불투명했다. 금융계열 3사 중 지분 정리가 가장 시급했던 셈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매각이 발표된 롯데카드와 롯데손보와 달리 롯데캐피탈에 대해서는 “매각 원칙은 세웠으나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내놨다.
궁금증이 커져가던 중 지난해 12월, 롯데그룹은 롯데캐피탈의 외부매각을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매각 대상이 경영권이 아닌 소수지분으로 바뀐 데다 회사를 일본으로 넘긴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제 롯데그룹은 예비입찰이 시작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돌연 롯데캐피탈 매각 보류를 선언했다. 롯데가 내놓은 표면적인 이유는 카드·손보의 매각을 마무리하고 다시 캐피탈 매각작업을 재개하겠다는 것이었다. 롯데캐피탈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얼마 뒤 롯데그룹은 결국 롯데캐피탈을 외부가 아닌 내부 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에 매각한다는 ‘묘수’를 내놨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캐피탈사는 대주주가 바뀌어도 금융위원회로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공정거래법을 지키면서도 롯데캐피탈을 그룹에 그대로 둘 수 있는 신의 한수였다.
1995년 설립된 롯데캐피탈은 대중적 지명도는 높지 않은 편이지만 그룹 내 입지나 경영진의 관심이 남다른 회사로 알려져 있다. 다른 회사를 인수해 이름을 바꾼 롯데카드나 롯데손보와 달리 롯데그룹이 직접 설립한 데다, 신격호 명예회장도 애착을 가졌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에는 신 명예회장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기도 했고,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일본 광윤사도 지분을 갖고 있었다.
서울 남대문로 소재 롯데손해보험·롯데카드 건물. 사진=박은숙 기자
눈여겨 볼 대목은 신격호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서고 신동빈 회장이 전면에 나서던 시기 롯데캐피탈에 부임한 고바야시 마사모토 전 롯데캐피탈 사장의 행보다. 우선 고바야시 전 사장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롯데홀딩스 사장과 함께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과 쓰쿠다, 고바야시가 힘을 합쳐 나를 자르고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쳐냈다”고 말했을 정도다.
고바야시 전 사장은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산와은행과 UFJ은행에서 근무하다 신동빈 롯데 회장에게 발탁돼 2003년 롯데캐피탈 상무로 한국에 왔다. 1년 뒤 2004년에는 롯데캐피탈 대표로 선임됐고 이후 12년간이나 롯데캐피탈 사장 자리를 지켰다. 그는 롯데그룹의 국내 계열사 가운데 유일한 일본인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16년 롯데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전방위 수사를 펼치자 돌연 롯데캐피탈 사장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급히 돌아갔다. 그는 일본 롯데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CFO) 지위는 여전히 유지하는 중이다.
이후 몇 년간 소식이 뜸했던 그의 움직임이 다시 포착된 것은 롯데캐피탈 매각이 본격화되면서다. 롯데그룹은 매각을 앞둔 롯데캐피탈 내부에 고바야시 전 사장의 방을 따로 만드는 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런 사실은 외부에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지만 금융권에는 “고바야시가 돌아온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런 관측은 롯데그룹이 롯데지주와 롯데건설이 갖고 있던 롯데캐피탈 지분 25.64%를 일본 롯데파이낸셜코퍼레이션에 팔기로 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롯데파이낸셜은 일본 롯데홀딩스 계열사로, 일본 롯데가 보유한 유일한 금융회사다. 이 회사의 사업내용이 무엇인지, 고바야시 전 사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본 롯데그룹 내 하나뿐인 금융계열사라는 점, 고바야시 사장이 일본 롯데의 자금흐름을 총괄하는 CFO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실상 롯데캐피탈을 다시 고바야시 사장의 손에 넘겼다는 것이다. 더구나 롯데캐피탈은 일본롯데 계열사가 되면 국내 금융당국 등의 관리감독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입장이 된다. 영업은 한국에서, 경영은 일본에서 하는 시스템이 된다.
이제 금융권의 관심은 롯데캐피탈의 남은 지분이 어디로 향할지에 쏠리고 있다. 현재 호텔롯데는 롯데캐피탈 지분을 39.37% 보유하고 있는데, 롯데그룹은 호텔롯데를 상장한 뒤 지주사 체제로 편입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호텔롯데가 보유한 롯데캐피탈 지분은 결국 매각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외부매각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금융권은 오히려 앞서 롯데지주와 롯데건설이 했던 것처럼 결국 일본으로 모든 지분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불투명 지배구조가 문제가 되면서 반강제로 기업공개에 나섰지만 일본 롯데를 잘 활용하면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상태로 남을 수 있다”면서 “사실상 롯데그룹의 금고지기이자 신동빈의 금고지기인 고바야시 전 사장과 롯데캐피탈을 통해 한국 금융당국의 눈을 피해 여러 활동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