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장에 섰던 전명규 전 한체대 교수. 사진=일요신문DB
안용규 한체대 총장은 지난 8월 28일 전명규 전 교수를 파면했다. 6일 전인 8월 22일 학교 징계위원회가 의결한 파면안을 그대로 승인했다. 사실상 ‘전명규 시대’의 종말 선언이었다. 전 전 교수가 2018년 4월 평창동계올림픽 사태 직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직을 사퇴했을 때만 해도 “한체대 교수직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빙상연맹 부회장직을 물러나는 거라면 별다른 의미 없다”던 빙상계의 우려도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실제 전명규 전 교수는 빙상연맹 부회장직에서 내려왔을 때도 한체대 교수가 가진 권력으로 배후에서 계속 빙상계를 움직인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관리단체가 된 빙상연맹에도 여전히 친전명규파가 중심에서 버티고 섰던 까닭이었다. 2018년 5월 23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빙상연맹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관리단체 지정을 권고했고 넉 달 뒤인 9월 27일 대한체육회는 빙상연맹을 관리단체로 지정했다. 빙상연맹과 같은 체육 종목단체는 관리단체로 지정되면 집행부 전원이 사퇴하고 대한체육회 인사와 외부인사로 구성된 관리위원회가 대리 운영한다.
지난해 10월 11일 빙상연맹 관리위원회 9명이 구성되고 2명이 친전명규계로 분류됐다. 학사부터 박사까지 학위를 모두 한체대에서 받은 김관규 용인대 교수와 성백유 씨였다. 2명이라 다소 적은 숫자처럼 보였지만 관리위원회는 법조인 2명과 대한체육회 인사 5명을 포함해 구성됐다. 실제 빙상연맹 문제는 김 교수와 성 씨 2명이 모두 담당하는 셈이었다.
김관규 교수는 빙상연맹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이사 출신으로 전명규 교수가 부회장이던 시절 국가대표 감독을 지냈다. 아들이 2016년 한체대에 입학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다.
성백유 씨는 미주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알려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대변인이었다. 그는 2013년 전 전 교수를 예찬한 책 ‘대한민국 승부사들’의 공저자기도 하다. 성 씨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뒤 전 전 교수가 사퇴하자 그를 이순신에 비교하기까지 했다. 2014년 3월 17일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오늘 빙상연맹은 전명규를 칼로 베었다. 평창올림픽이 4년 남았는데.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옥에 가둔 꼴이라고 해야 할까”라며 “실력 있는 제자를 키우기 위해 열정을 불태운 인물이다. 그런데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됐다”는 글을 올렸다.
구성 자체가 이렇다 보니 빙상연맹 관리위원회는 1년에 걸친 활동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운영을 하지 못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건넨 징계안을 일부만 소화하고 묵혔으며 선수 관리에 구멍이 생겨 계속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8월 전명규 전 교수의 한체대 교수직 파면이 확정되며 빙상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빙상연맹 관리위원장과 성백유 씨가 전 전 교수 파면 확정 하루 전 사퇴한 까닭이다. 친전명규계가 아니라고 거듭 부인했던 성 씨였지만 전 전 교수 파면에 맞춰 관리위원 자리에서 내려오자 빙상계에는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빙상 개혁의 시작이란 목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체육회는 빙상연맹 관리위원회 구성에 골몰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쪽에서는 빙상계 개혁을 주도한 젊은빙상인연대 소속 여준형 회장과 권순천 부회장을 관리위원으로 밀고 있다고 알려졌다. 다만 정치권에 따르면 한 체육계 고위급 인사가 친전명규파를 또 다시 관리위원으로 들이려 한다는 얘기도 있다. 빙상계는 “또 다시 친전명규계가 관리위원으로 온다면 빙상연맹이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재계의 눈치 때문이다. 빙상연맹은 회장사가 나타나야 관리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 옛 회장사인 삼성이 나간 빈자리를 채우려는 대기업이 몇 있지만 전명규 전 교수 관련 위험 부담 때문에 최근 빙상연맹 후원을 꺼린다고 전해졌다.
실제 빙상연맹 후원에 적극적이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빙상연맹 회장사가 되는 건 매우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전명규 전 교수라는 사람의 입김이 닿으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우리 외에도 몇몇 대기업에서 빙상연맹 회장사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다만 전 전 교수의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미친다면 또 다시 구설에 오를까 싶어 관망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했다. 이번 관리위원회의 탈전명규 구성이 빙상연맹 정상화에 핵심으로 부각된 셈이다.
재계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둔 내년쯤 빙상 관련 예산을 풀어 낼 전망이다. 스포츠 후원을 담당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아직 베이징동계올림픽이 가시권으로 들어오지 않아 재계에서 큰 관심을 쏟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빙상은 효자 종목이고 특히 중국에서 사업을 펼치는 기업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대상이다. 다사다난했던 올해가 지나면 내년부터 재계에서 빙상연맹 후원에 적극 뛰어들 것”이라고 했다.
빙상계의 구도도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국 빙상 메카로 불리는 목동실내빙상장이 새 주인을 찾으며 가장 먼저 개혁의 신호를 보냈다. 반전명규계로 분류되는 ‘와이키키목동아이스링크’가 관리위탁 운영기관으로 선정되며 빙상계는 한숨 돌렸다. 전 전 교수의 눈 밖에 났던 선수도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까닭이다.
한편 전명규 전 교수는 교육부에 징계 불복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징계에 대한 소청심사와 행정소송 등이 남아있다. 하지만 결과가 뒤집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고 노진규 선수 사망 관련 발표가 예정돼 있고 2018년 초부터 계속된 경찰 및 검찰 조사 결과 역시 아직 나오지 않은 까닭에서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