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응씨배 결승에서 녜웨이핑 9단과 마주한 조훈현 9단.
한국기원 관계자는 “대국은 11월에 열린다. 2일 오후 2시로 준비하면서 중국 측에 내용을 전한 상태다. 녜웨이핑 9단의 대국 의사는 이미 확인했다. 대국 일정 등 세부사항에 대한 확답을 기다리는 중이라 공식발표가 늦어지고 있다. 곧 일정이 확정되면 차후 보도자료 등을 통해 공지하겠다”고 말했다.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실무진은 “원래 기념대국이 11월 3일 ‘KB국민은행 서울 수담’ 행사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중국 측에서 야외 대국을 부담스러워해 날짜를 2일(잠정)로 바꾸고 장소도 바둑TV스튜디오로 옮겨서 준비 중이다. 대국은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응씨룰을 적용할 계획”이라며 “원래 응씨배 기본시간 각자 3시간인데 이번 기념대국은 1시간으로 줄여 총 3시간 안에 대국이 끝나도록 조정했다. 시간 초과 시 20분당 2집을 공제(총 2회 가능)하는 건 같다. 대국이 열리는 동안 바둑팬들이 직접 현장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한국기원 2층에서 실시간 공개해설도 준비하고 있다. 이미 해설자로 이창호 9단과 배윤진 3단을 섭외했다”고 설명했다.
응씨룰을 만든 잉창치 선생.
선친이 만든 응씨룰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잉밍하오 이사장.
잉창치는 응씨룰을 홍보하기 위해 100만 달러를 후원해 1988년 세계대회 응창기배를 만들었다. 대회관리를 위해 응창기바둑교육기금회도 설립했다. 당시 주최 측이 보낸 공문엔 ‘바둑이 세계체육경기 항목 중 하나로 채택되고, 세계바둑규칙을 응씨바둑규칙으로 이른 시일 내에 채택되기 위해 이 대회를 개최한다’고 적혀있다. 우승상금만 40만 달러였다. 그해 US오픈 골프대회 상금이 18만 달러였던 시절이다. 1997년 잉창치 회장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엔 아들 잉밍하오가 응창기바둑교육기금회 이사장 자격으로 대회를 이어갔다.
잉밍하오 이사장도 응씨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2012년 9월에 열린 제7회 응씨배 준결승 개막사에서 잉밍하오 회장은 “삼성화재배(2012)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 대결에서 ‘4패 빅’이 나왔다. 만약 이 대국을 응씨룰에 두었다면 절대 무승부가 나올 수 없다. 이세돌이 이기고, 구리가 지는 결과다. 응씨룰이 우월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나는 진심으로 이런 상황이 응씨배에서 나오길 기원했다”면서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관련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선친의 뜻을 이어 응씨룰을 지켰던 잉밍하오 회장도 올해 4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1989년 9월 6일 조훈현 9단의 응씨배 우승카퍼레이드.
두 부자가 들인 30년 노력에도 불구하고, 응씨룰은 아직도 4년에 한 번 응씨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바둑규칙일 뿐이다. 대세는 일본룰(한국룰)에서 중국룰로 넘어가는 중이다. 중국에서 주최하는 세계대회가 많아지면서 프로기사들은 중국룰로 치르는 대국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또한 알파고부터 최신 AI까지 모든 바둑프로그램이 덤7.5집 중국룰을 기반으로 설계했기에 이미 컴퓨터 바둑세계는 중국룰이 제패했다.
응씨배는 4년마다 열린다. 지난 8회 대회가 2016년에 치러졌다. 응씨룰의 계승자 잉밍하오 회장이 없어도 대회가 계속 열릴까. 중국과 대만에 관계자들과 프로기사 등 여러 루트로 확인해 본 결과 제9회 응씨배도 큰 변화 없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예년과 같은 초청방식이라면 2020년 열리는 응씨배에 한국기사는 박정환 9단(전기 준우승자 시드)을 포함 일곱 명이 출전한다. 역대 응씨배 우승자는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창하오-최철한-판팅위-탕웨이싱 9단이다. 국적별로 한국기사 다섯 명, 중국기사 세 명이다.
박주성 객원기자
[AI로 다시보는 관전기] ‘기성’ 오청원의 지적, 그리고 AI의 평가 제1회 응씨배 결승 1국 ● 녜웨이핑 9단 ○조훈현 9단 1989.04.25 중국 항저우 샹그릴라 호텔 #장면도1 녜웨이핑 9단이 돌을 쥐었다. 수많은 플래시가 터지고 조 9단은 예의 장미담배를 빼어문 채 ‘홀수’라고 말한다(월간바둑 박치문 관전기). 홀짝을 맞힌 조훈현은 심판 화이강 9단에게 백을 잡겠다고 말했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응씨룰 덤 8점에 빅 흑승(7.5집)이다. 당시 국내기전 덤이 5.5집이었다. 백12까지 평범한 정석진행이다. 인공지능은 당연해 보이는 흑13 대신 A로 두 칸 벌리는 걸 추천한다. 흑13을 두자 6% 하락, 흑27에 8%가 떨어졌다. 흑34수까지 진행하자 AI 흑승률이 25%까지 추락했다. 당시 검토실에는 ‘살아있는 기성’이라 추앙받던 오청원 9단도 있었다. 오청원은 장면도1에서 “흑33은 시급히 B자리로 갔어야 했다. 이 대국 패착은 바로 33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AI는 흑33을 그렇게 혹평하진 않았다. 형세는 이전 흑의 완착으로 이미 7 대 3 정도로 백으로 기운 상황이었다. 물론 흑33보다 B가 좋은 수지만, AI 승률 차이는 약 3%에 불과했다. #장면도2 이 대국 결과는 백 3점승. 당시 관전기에서 결승 1국을 ‘조훈현의 완승’이라고 표현한다. AI로 분석해도 단 한 번도 흑에게 우세를 내준 적 없는 완승국이 맞다. 이 대국은 239수까지 진행했지만, 이미 50수가 지나면서 AI 백승률이 90%를 넘었고,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국후 복기에서 조훈현은 단 한 수만 실착이라고 후회했다. “얼핏 백3이 깨끗해 보였다. 이기는 게 확실해서 뒷맛 개운한 쪽을 두어버렸다. 그러나 백3은 A로 두었어야 했으며 이랬으면 백3점 승이 부동이었다”고 말했다. 관전기에선 이후에 백이 유리하지만 형세가 매우 좁혀졌고, 마지막 끝내기에서 흑에서 실수가 나와 다시 3점 차이로 결론 났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AI는 백3을 둔 시점에 백승률이 97%이라고 말한다. 백3과 A자리는 승률차이가 거의 없었다. 그냥 이겨있는 판이었다. 응씨배 결승1국부터 3국까진 중국에서 열린 원정경기였다. 핸디캡이 있었지만, 1국에선 조훈현이 완승을 거뒀다. 2국에서 녜웨이핑이 백불계로 이겼고, 3국에선 다시 백을 잡은 조훈현이 3점 패를 당한다. 내용은 뼈아픈 역전패였다. 1보 전진, 2보 후퇴. 벼랑 끝에 몰린 결승 4국과 5국은 싱가포르에서 열렸고, 여기서 조훈현은 집념어린 기적을 일궈냈다. 4국에서 흑1점승, 최종 5국에서 흑불계승을 거두며 조훈현이 초대 우승자가 되었다. 박주성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