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수은 중독이 염려되는 화장품은 피부를 맑고 하얗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백 크림들이다. 수은 함량이 지나치게 높은 제품을 일정 기간 사용할 경우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요, 심한 경우 혼수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미 보건당국은 이번 사건이 과도한 양의 수은 성분을 함유한 피부크림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첫 번째 사례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관련 제품을 사용할 시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폰즈(POND‘S)사의 ‘리주브너스’ 크림을 바른 미국의 중년 여성이 메틸수은 중독 증상을 보이며 몇 개월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지난 7월, 익명의 47세 여성이 새크라멘토의 한 병원 응급실을 급히 찾아왔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증상을 설명하던 여성은 제대로 걸음을 걸을 수가 없고, 손과 얼굴에 감각이 없다면서 통증을 호소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후에는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의 아들은 어머니가 사용하던 미백 크림이 의심스럽다며 의료진에 성분 검사를 의뢰했다. 지난 12년 동안 친구의 친구를 통해 미백 크림을 구매해서 사용해오고 있었는데, 특히 이번에 구입한 제품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입원 당시 여성이 사용하고 있던 제품은 멕시코 할리스코주의 한 약국에서 구매한 코스메틱 브랜드 폰즈(POND‘S)사의 ‘리주브너스’ 크림으로, 이 제품은 미백 및 주름 방지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기능성 화장품이었다.
문제는 이 제품이 멕시코에서 생산 및 판매되고 있던 것으로, 무엇보다 구입 당시 밀봉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었다. 요컨대 누군가 크림에 미백 성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메틸수은을 다량 첨가했고, 이로 인해 여성이 수은 중독 증상을 나타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런 의심은 적중했다. 전문 의료진들이 권고하는 혈중 메틸수은 농도는 리터당 5마이크로그램(㎍) 미만이다. 그런데 검사 결과, 여성의 혈액 속에서는 무려 2630마이크로그램의 어마어마한 양의 메틸수은이 검출됐다. 메틸수은에 중독될 경우 신경계 교란이 일어날 수 있으며, 특히 임산부와 모유수유를 하는 여성, 그리고 어린이에게는 더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미국 보건당국 관계자는 메틸수은은 멜라닌색소의 생산을 중단시키기 때문에 기미나 잡티를 없애는 데 효과적이긴 하지만, 문제는 메틸수은이 독성물질로 분류된다는 점에 있다고 말했다.
새크라멘토 카운티 공중보건담당관인 올리비아 카시례 박사는 “이런 제품을 피부에 바를 경우 메틸수은의 혈중 농도가 높아질 수 있으며, 만일 메틸수은이 뇌에 침투할 경우에는 병원에 가더라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하며 “새크라멘토 카운티 공중보건국은 메틸수은에 오염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멕시코에서 수입되는 유사한 크림 제품 사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지역사회에 촉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건이 발생하자 세계적인 생활용품 다국적 기업인 ‘유니레버’가 소유하고 있는 ‘폰즈’사는 자사 제품에는 메틸수은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해명에 나섰다. 다만 제품을 공인된 소매점에서 구입하지 않을 경우에는 제품이 변조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밀봉 상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현재 관계 당국과 함께 새크라멘토 여성의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폰즈사는 “우리는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모든 공인된 소매점과 긴밀히 협력하여 제품들이 선적부터 소매점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고 온전한 상태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틸수은은 온도계, 배터리, 거울 등에 사용되는 중금속으로, 장기간 노출될 경우 신장이 손상되거나 주변시력 및 신체동작의 조정력이 손상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또한 메틸수은보다는 덜 강력하지만 역시 독성이 있는 염화수은과 함께 미백 제품의 주성분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한다.
이런 제품들이 현재 미국 시장에서 많이 팔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데일리비스트’는 고국에서 그런 제품들을 많이 사용해왔던 일부 소수민족들의 구매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령 라틴계나 아시아계 여성들이 많이 찾고 있는 까닭에서라는 것이다.
실제 새크라멘토 카운티 당국에 따르면, 지난 9년 동안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메틸수은 중독 사건이 60건 이상 발생했다. 대부분은 수은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하다가 발생한 중독 사건이었으며, 특히 ‘해외 브랜드이거나, 라벨이 부착되어 있지 않거나, 또는 집에서 만든 홈메이드 크림’으로 인한 중독 사건이 많았다.
현재 미국에서는 메틸수은 함량이 1ppm이 넘는 화장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단, 최대 65ppm까지 허용되는 눈화장 관련 제품은 제외). 하지만 미식품의약국(FDA)은 선박으로 밀수입되거나 여행가방에 몰래 넣어 오거나 혹은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제품들과 같은 수입품 전체를 모두 단속할 수는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미백 화장품을 연구하고 있는 LA 옥시덴탈대학의 부교수인 바브나 샤먀선더는 “FDA는 미용 제품에 대한 관리감독이 극히 미흡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피부 미백 제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태국 방콕의 미백 제품 매장에서 화장품을 고르는 사람들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EPA/연합뉴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세계적인 미백 제품 시장의 성장세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GIA)에 따르면, 피부 미백 제품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관련 시장은 2024년까지 312억 달러(약 37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주된 시장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특히 피부가 하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부와 사회적 지위가 부여되는 문화권이 그렇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에서 설문조사에 응답한 여성의 40%가 미백제품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더 나아가 나이지리아 여성의 77%가, 그리고 말리 여성의 25%가 미백제품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까닭에 미국의 경우에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피부 미백 제품의 경우 일부 소수민족이 운영하는 화장품 가게나, 슈퍼마켓 또는 벼룩시장(중고장터)에서 주로 판매되고 있으며, 간혹 이런 제품들은 아마존이나 이베이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이는 수은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는 인종들의 분포만 봐도 알 수 있다.
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대학의 생식학 교수인 트레이시 우드러프는 “중금속 검사는 일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화장품으로 수은에 중독되고 있는지 추정하기란 어렵다”면서도 이 문제는 특정한 인종 집단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령 미네소타에서 2015년~2017년 396명의 임산부 소변에서 수은을 측정한 결과 이 가운데 아홉 명이 특히 높은 수치를 나타냈는데 이들은 모두 몽족(중국, 라오스 등의 소수민족) 및 라틴계 여성이었다. 또한 모두 피부 미백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구매 경로 역시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우드러프 교수는 “수은 중독 피해자들은 공식 판매점 대신 주변의 아는 사람들로부터 관련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혈중 수은 농도가 유난히 높았던 샌프란시스코의 한 임산부에 대한 보고서를 공동 집필한 그는 “그 수은의 출처는 멕시코 미초아칸주에서 구입했던 폰즈 미백 크림이 담겨있었던 병이었다”고 말했다. 즉, 가족 일원 가운데 한 명으로부터 선물받았던 이 제품의 병에서 수은이 다량 검출됐었던 것이다. 새크라멘토 여성이 사용하던 미백 크림에서는 무려 1만 2000ppm 이상의 메틸수은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시카고, LA, 뉴욕, 피닉스에서 구입한 367개의 피부 미백 제품의 샘플을 검사한 2013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소 12개의 제품에서 메틸수은 함량이 높게 나온 것으로 나타났었다. 당시 이 제품들의 메틸수은 함량은 1729~3만 8535ppm까지 매우 높은 수치였다.
화장품에 의한 수은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보건당국은 되도록 중고장터나 벼룩시장에서 화장품을 구입하지 않을 것과 구입시에는 제품이 제대로 밀봉되어 있는지, 그리고 라벨이 붙어 있는지 확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밀봉되어 있지 않은 용기에는 불순물이 첨가됐을 가능성이 높고, 특히 수은이 다량 함유되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보건당국은 이런 제품들을 사용할 경우, 심지어 크림을 바르지 않은 어린이나 갓난아기에게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가령 집에서 크림을 사용한 가족들과 접촉할 경우에도 중독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와 임산부들은 특히 수은의 독성 효과에 민감하기 때문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고 보건당국은 덧붙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 수은중독의 일반적 징후 및 증상 □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저하된다. □ 신경과민 증상이 나타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불안초조해진다. □ 우울증이나 불면증이 나타난다. □ 두통을 호소한다. □ 체중이 감소하거나 쉽게 피로해진다. □ 손이나 발, 또는 입술 주위에 경련이 일거나 마비되거나 따끔거린다. 수은에 장기 노출된 어린이들의 경우 □ 손발에 분홍빛이 돈다. □ 피부가 갈라진다. □ 침을 흘리거나 갈증이 심해지거나 잇몸 질환 증상이 나타난다. □ 짜증이 심해지거나 식욕 부진 증상을 보인다. □ 근육긴장도가 저하되거나 다리 경련이 일어난다. □ 고혈압이나 피부발진이 일어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