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2004년 현대차그룹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금융분야에서 합작한다. 당시는 현대·기아차의 해외수출이 급증하고, 자동차 관련 금융의 부가가치도 주목을 받던 때다. 신용카드 사태 이후라 GE가 신규로 자본을 투자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2004년 현대캐피탈 지분 43.3%를 6200억 원에, 이듬해 현대카드 지분 43%를 6783억 원에 각각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현대차그룹이 지분 전부를 소유하던 금융계열사에 첫 외부자본 유입이었다.
2014년 합작계약이 종료되고 2015년 GE 미국본사는 금융사업 철수를 선언한다. 이어 GE는 2017년 현대카드 지분 43%를 매각한다. 현대커머셜이 19%를, 나머지 23.99%를 사모펀드(PE) 어피니티를 비롯한 외부투자자가 매입한다. 당시 현대카드 기업가치는 1조 600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됐다.
이때 현대카드 최대주주인 현대차는 외부투자자와 주주 간 계약을 맺는다. 지배주주가 중대한 계약 위반시 투자자는 지배주주에게 풋옵션을 행사해 보유 지분을 매각할 수 있으며, 반대로 투자자가 중대한 계약 위반시 지배주주는 투자자에게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매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중대한 계약은 상장이다. 옵션의 행사가격은 상장 이전에는 공정가치이고, 상장 이후에는 30일 거래량 가중평균주가다.
지난해 11월에는 현대커머셜이 어피니티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 신주(지분율 25%)가 발행된다. 이때도 같은 조건의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커머셜은 현대캐피탈이 2007년 상용차와 건설장비 할부금융 부문을 떼어내 설립한 회사다. 이듬해 정명이·정태영 부부는 기아차와 위아로부터 현대커머셜 지분 20%와 10%를 매입한다. 이어 2009년 현대모비스 보유지분도 매입해 정명이 현대커머셜 부문장 33.33%, 정태영 부회장 16.67%가 된다.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전경. 사진=박은숙 기자
반면 상대적으로 밀접도가 덜한 현대카드는 정몽구 회장이 딸 몫으로 넘길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았다. 2014년 정 부회장이 자신이 최대주주인 종로학원 지분까지 매각하면서 이 같은 관측은 더욱 힘을 얻었다. 2017년엔 GE가 매각하는 현대카드 지분 일부를 현대커머셜이 인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그룹의 주도권이 정의선 부회장 쪽으로 옮겨가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정태영 부회장이 추진했던 생명보험업이 실패하고 현대라이프를 매각한 게 결정적이었다.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대만 푸본생명에 경영권을 넘겨야 했다. 이후 현대차그룹 본사가 있는 양재동 일대에서는 “정 부회장에겐 현대커머셜 정도면 충분하다”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물론 정태영 부회장에게도 명분은 있다. 주주 간 계약에 따라 만약 상장을 하지 않으면 현대차그룹에 상당한 자금부담을 안게 된다. 어피니티 등이 투자한 금액은 현대카드 약 3800억 원, 현대커머셜 1400억 원 등 5200억 원 규모다.
앞서 어피니티는 2012년 교보생명과도 비슷한 옵션계약을 맺었다.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상장 약속이 이행되지 않자 시가대비 2배에 달하는 값으로 신창재 회장이 되살 것을 주장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사례로 보면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 상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최소 7000억 원에서 최대 1조 원을 요구할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으로서도 부담이 될 만한 액수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현대카드 지분율은 48.44%로 과반이 안 된다. 외부투자자의 투자차익실현을 위한 상장이 이뤄지고 일부 신주도 발행되면 지분율은 더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상장이 되면 정태영 부회장 부부가 지분율을 높일 방법이 더욱 다양해진다. 현대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정몽구 회장의 둘째 딸인 정명이 대표까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정태영 부회장 부부가 이사회를 장악한다면 우호주주와 연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결국 현대카드 운명의 최종결정권자는 정의선 부회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자동차 부문의 도움 없이 과연 현대커머셜이나 현대카드가 존속할 수 있겠느냐”며 “정 부회장 부부가 주요 주주로 경영성과 배분에 참여하는 것은 몰라도 최대주주의 경영권까지 노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열희 언론인
현대카드 상장하면 기업가치 얼마나 인정받을까 현대카드가 상장을 추진하면서 과연 어느 정도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현재 증시에 상장된 삼성카드 자본총계는 상반기말 기준 6조 8000억 원. 시가총액 3조 9000억 원을 대입하면 주가순자산비율(PBR) 0.6배 미만이다. 자본총계 3조 3000억 원인 현대카드에 이를 적용하면 2조 원 미만이란 계산이 나온다. 올 상반기 삼성카드 순이익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삼성카드의 지난해 순이익(4800억 원)으로 현재 시가총액을 계산하면 주가수익비율(PER) 기준 8배가량이다. 현대카드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대비 57% 늘어난 1218억 원. 연간으로도 비슷한 증가율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2300억 원 정도다. PER 8배를 곱하면 1조 9000억 원 정도가 된다. 이에 따라 현대카드 상장시 기업가치는 총 2조 원을 넘기 어려워 보인다. 이 기준으로 어피니티 등의 지분가치를 따지면 약 4800억 원가량이다. 투자원금(3800억원) 대비 약 26% 많다. 현대커머셜도 현대카드와 같은 주주 간 계약을 맺은 만큼 적당한 시기에 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현재 증시에 상장된 할부금융사는 아주캐피탈이 대표적이다. 자기자본 7700억 원에 연간 1200억 원 정도의 순이익을 내는데, 시가총액은 6400억 원 정도다. 현대커머셜은 자기자본 1조 2000억 원에 연간 300억 원가량의 이익을 낸다. 아주캐피탈 가치를 적용하면 PBR 기준 약 1조 원, PER 기준 1600억 원이다. 중간값은 약 5800억 원이다. 어피니티 등이 투자(지분 25%, 1400억 원)할 때 현대커머셜의 기업가치가 약 5700억 원이었다. 현재 정도의 기업가치로는 상장을 해도 재무적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