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최준필 기자
SK(주)는 전체 발행주식수의 5% 규모인, 352만 주 자사주를 취득한다고 지난 1일 공시했다. 금액으로는 7180억 8000만 원 수준이다. 취득 예상기간은 내년 1월 1일까지로, 장내매수를 통해 매입할 예정이다.
이번 자사주 매입 결정에 대해 SK 측은 주가 안정을 위한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들어 SK의 주가는 21.5%나 하락했다. SK는 주주가치를 위해 주주환원 정책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지난해 연간 배당의 20% 수준인 주당 1000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결정하기도 했다. 563억 원 지급액 규모다. 연간 배당금 역시 꾸준히 늘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SK 자사주 매입을 두고 재계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SK의 현재 재무구조 등을 감안하면 매입 규모가 과하기 때문. 이번 SK 자사주 매입은 올해 국내 상장사들 중 최대 규모다. 지주사 SK 출범 이후로 봐도 역대 최대다. SK의 기존 자사주 보유분은 20.7%로, 이번 매입이 완료되면 25.7%까지 늘어난다. 반면 현재 SK의 순차입금은 6조 7000억 원에 달한다.
재계나 증권가에서도 이번 결정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또한 자사주 매입 이후 소각 등 뚜렷한 추가 계획을 내놓지 않은 점도 의문으로 제기된다. 실제 SK의 자사주 매입 발표로 주가는 직전 거래일보다 9.8% 상승해 효과를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다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에 이번 자사주 매입이 지배구조 추가적인 개편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배구조 개편 전 유리한 합병비율 산정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 지분율 감소 최소화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것이다. 자사주는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지배력과 의결권 강화에 도움이 된다. 자사주가 많을수록 신주 발행 억제도 가능하기 때문. 또한 자사주 매입으로 SK 주가가 오르면 합병비율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
현재의 SK는 지난 2015년 그룹 내 IT 계열사인 SK C&C에 흡수·합병되면서 생긴 회사다. 합병 전 SK C&C는 세 차례에 걸쳐 6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당시에도 주가 안정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로써 주식시장에서 유통되는 SK C&C의 주식수가 감소됐고, 합병 시 신주발행을 최소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 감소를 최소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한번 재미를 본 만큼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다시 같은 방법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 중심에 SK텔레콤이 거론되고 있다. SK텔레콤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SK하이닉스를 투자회사에, ICT법인을 사업회사에 존속시킨다. 이후 SK가 SK텔레콤 투자회사를 흡수함으로써 SK하이닉스를 지배하는 구조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현재 그룹 내 최대실적을 내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20.07%를 보유한 SK텔레콤이다. 그런데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이 통과되면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지분 10%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는 약 6조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재원 마련을 위해 SK텔레콤 11번가, ADT캡스, MNO 사업 등 상장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그럼에도 무리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에 SK와 SK텔레콤 투자회사의 합병 시나리오가 나온 것이다. SK는 SK텔레콤 최대주주(지분율 26.78%)로 올라 있다. 또한 SK는 100% 지분을 보유한 SK바이오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SK바이오팜 가치는 6조 원 정도로 점쳐지고 있다. 합병을 하게 되면 SK하이닉스 지분 확보를 위한 자금동원력이 커지게 된다. 또한 SK가 SK하이닉스를 직접 지배하게 되면 국내 업체를 인수·합병하거나, 사업을 진행하는데도 제약이 많이 줄어든다.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하지만 SK 관계자는 이러한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에 대해 “올해 상반기에 비해 SK 주가가 30% 가까이 급락했다. 이번 자사주 매입 결정은 주주가치 제고의 일환일 뿐”이라며 “지배구조 개편은 아직 먼 이야기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지주사 주가가 떨어진 것은 SK뿐이 아니다. 업황으로 모든 주식이 떨어졌다. 시장이 좋아지면 주가는 다시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며 “SK 입장에서는 선제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의외의 결정인 것도 사실이다. 지배구조 개편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