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의원들이 9월 21일 열린 ‘문재인 정권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한국당은 2018년 혁신위를 띄워 21명의 인적쇄신 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이 작업을 주도한 김용태 의원은 스스로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찬사를 받았지만 현재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김 의원은 현 지역구를 떠나 새로운 지역에 출마할 예정이다. 김 의원 외에도 당시 인적쇄신 대상자로 꼽혔던 인물들은 대부분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점쳐진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 이후 총선 불출마를 시사했던 정종섭(대구 동구갑) 김정훈(부산 남갑) 윤상직(부산 기장) 의원은 최근 총선 출마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진 않았지만 이들은 지역구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사실상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정종섭 윤상직 의원은 초선이지만 김정훈 의원은 한국당 텃밭인 부산에서 4선을 했다. 김 의원은 (불출마를 시사한) 발언을 번복할 명분이 없다. 당 내에서도 (김 의원 행보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김용태 의원은 지난해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보수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하고 그러려면 기존 사람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면서 “내 거취도 곧 밝히겠다”고 했었다.
역시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무성 의원도 최근 출마설이 들리고 있다. 김 의원은 현재 지역구인 부산을 떠나 서울 용산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당내에선 김 의원 용산 출마설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앞서의 한국당 관계자는 “김 의원이 이대로 정계 은퇴를 하는 것보단 험지에 출마해 당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출마지로 용산이 거론되고 있다고 해서 말이 많았다. 용산이 험지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김무성 의원 측 관계자는 “(용산 출마설을) 저희도 기사를 보고 알았다.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지역구가 용산은 아니더라도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것은 맞느냐는 질문에는 “드릴 말이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당 원외 중진들 일부도 텃밭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과 홍준표 전 대표는 대구 출마설, 서병수 전 부산시장과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각각 부산과 경남 출마설이 나온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과거 민주당에선 김부겸 정세균 등이 지역구를 버리고 험지에 출마해 바람을 일으켰는데 우리 당 중진들은 텃밭 출마설이 나온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비판했다.
과거 민주당은 전북에서 4선을 했던 정세균 의원을 서울 종로에 출마시켰다. 김부겸 의원도 경기 군포에서 3선을 한 후 험지인 대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정동영 의원은 민주당 시절 전북 지역구를 떠나 서울 동작과 강남에 출마한 바 있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당 관계자 모두가 동의한다. 신상진 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장은 현역 의원을 50% 이상 물갈이하겠다고 공언했다. 신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 신인을 대폭 영입해 총선에 내보내야 한다”면서 “신인 가산점을 민주당보다 몇 배 높게 주고 청년, 여성, 장애인, 국가유공자에게 주는 가산점을 대폭 상향할 것”이라고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9월 16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에 대해 한국당 당직자는 “그게 (계획대로) 되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이 당직자는 “(스스로 인적쇄신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김용태 의원조차 내년 총선에 나온다고 하는데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하면 반발이 엄청 날 것이다. 당 외곽에 바른미래당, 우리공화당이 있어 자칫하면 보수진영이 분열될 수 있다. 당 지도부가 보수 분열에 민감해 이대로 덮고 가자는 분위기도 있다”며 “보통 총선 때 현역 의원을 30~40% 물갈이했는데 이번에는 개혁 공천은커녕 물갈이 폭이 예년 수준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가 보수결집에 전념하면서 한국당 내 정치 신인이 설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게다가 연동형비례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부 선거구가 사라지거나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치 신인들은 선거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당 지도부는 현역 의원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인적쇄신을 할 다양한 방법을 검토 중이다. 전직 한국당 고위 당직자는 “당 중진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대신 험지 출마를 유도해야 한다”며 “당 중진들을 무조건 정계 은퇴하라고 하면 당도 손해고, 그 분들도 손해다. 그 분들 입장에서도 험지에서 살아 돌아오면 정치적 무게감이 더 커지니 좋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당 인적쇄신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현역 의원들은 배제한 중립적인 공천심사위원회를 띄우고 전권을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황교안 대표는 정치 이력이 짧아 잡음 없이 개혁 공천을 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현역 의원들이 공천에 개입하면 계파니 뭐니 시끄러워진다. 당내 모든 의원들이 공천 심사에 절대적으로 따르겠다는 선언을 하고 공천심사위가 마음껏 칼을 휘두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당 지도부도 공천 결과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과거 민주당이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고 개혁 공천을 했던 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보수 분열로 이어질 우려에 대해서는 “역대 선거에서 공천 이후 탈당이나 신당 창당은 흔한 일”이라며 “그런 것이 무서워 개혁 공천 의지가 흔들리면 공멸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