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는 이번 시즌 하위권으로 평가받는 뉴캐슬에게도 패하며 리그 순위 12위로 떨어졌다. 사진=연합뉴스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구단 6위, 리그 순위는 ‘12위’
미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인 경제잡지 포브스는 매년 ‘가장 가치 있는 스포츠 구단 TOP 50’을 발표한다. 미국의 야구, 농구, 미식축구팀이 순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비(非)미국 구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유럽 축구 구단이 순위표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7월 발표된 올해의 순위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유는 6위를 차지했다. 약 38억 1000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초반 일정을 보내고 있는 맨유의 리그 순위다. 아직 리그 30경기가 남아있는 시점이지만 12위에 처져있다. 구단 가치를 매긴 세계 순위보다 6계단이 낮다.
리그 선두이자 오랜 라이벌인 리버풀과는 15점 차로 벌어졌다. 셰필드 유나이티드, 브라이튼 앤 호프 알비온과 승점 9점으로 동률을 이루고 있다. 셰필드는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 합류한 승격팀이다.
#드라마틱한 몰락의 원인은?
맨유의 극적인 하락은 퍼거슨 시대가 끝난 이후 시작됐다. 그가 은퇴를 선언한 이후 맨유는 과도기를 겪는 듯했지만 좀처럼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퍼거슨 이후 맨유가 기록한 리그 최종 순위는 7위, 4위, 5위, 6위, 2위, 6위다.
이번 시즌 들어 부진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 7일에는 리그 하위권으로 처진 뉴캐슬에게 0-1로 패했다. 프리미어리그에 첫 출전하는 19세(2000년생) 소년(매튜 롱스태프)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았다.
이 같은 맨유의 몰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지적을 받고 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 유망주의 성장 부진, 감독 능력 부족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수년간 지속된 부진의 근원으로 에드 우드워드 단장도 지목을 받고 있다. 이에 많은 맨유팬들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맨유 부진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에드 우드워드 단장의 운영 방식에 대한 지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우드워드 단장(왼쪽). 사진=연합뉴스
#우드워드 단장은 누구
우드워드가 맡은 맨유의 단장직(CEO)은 마케팅과 같은 대외적인 임무는 물론 감독 및 선수 영입과 판매 등 축구적 업무까지 총괄하는 자리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다. 우드워드가 축구와는 다소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영국 명문 브리스톨대학 졸업 이후 미국 최대 금융기업 JP모건 체이스의 투자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러던 중 맨유 구단주 말콤 글레이저와 인연을 맺고 팀의 마케팅, 홍보 부문을 맡아 천문학적 이익 창출에 기여했다. 맨유가 나이키에서 아디다스로 유니폼 스폰서를 바꾸고 가슴에 쉐보레 로고를 새기며 수천억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것도 그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돈을 버는 것까지는 좋았다. 퍼거슨 감독이 은퇴를 선언하며 기존 단장이던 데이비드 길마저 팀을 떠난 이후 우드워드가 단장직에 올라 더 많은 권한을 가지며 악몽이 시작됐다. 우드워드가 단순히 돈을 만지는 것뿐만 아니라 팀을 정비하는 축구적 업무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맨유는 퍼거슨의 후임 감독 데이비드 모예스 이후로 루이 판 할, 주제 무리뉴 등 세계적 명장들을 팀으로 모셨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드워드는 자신이 데려온 감독을 온전히 믿지 못했고 때론 독단적으로 선수 영입을 진행하기도 했다. 명장이 거쳐 간 흔적은 찾기 힘들고 팀은 황폐해져가고 있다.
팀 스쿼드에 대한 투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세계적 구단인 만큼 이적 시장을 주도하며 막대한 금액을 선수 영입에 투자했다.
우드워드가 단장직을 맡은 이후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금액으로 영입된 마루앙 펠라이니, 앙헬 디마리아, 멤피스 데파이, 로멜루 루카쿠, 알렉시스 산체스 등은 팀을 떠났다. 앙토니 마시알, 에릭 바이, 빅토르 린델뢰프, 폴 포그바 등은 남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들을 데려오는 데만 자그마치 약 6300억 원(현지 언론 추정)이 투입됐다.
#단장(풋볼 디렉터) 중심 운영이 대세
세계 축구를 선도하는 유럽에서는 축구에 전문적 식견을 갖춘 ‘풋볼 디렉터’라고 불리는 단장의 역할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대륙에 위치한 국가에서 선호됐기에 ‘대륙식’으로 불리던 이 같은 팀의 운영 방식은 ‘섬나라’ 영국으로도 옮겨간 지 오래다.
프리미어리그 최강팀으로 우뚝 선 맨체스터 시티는 치키 베히리스타인이 단장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오랜 기간 디렉터로 일해온 인물이다. 사무엘 에투, 호나우디뉴 등의 영입에 나서며 바르셀로나를 강팀으로 만들었고 펩 과르디올라를 전격적으로 A팀 감독으로 발탁해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과거 맨유와 라이벌 관계를 만들었던 아스널 또한 바르셀로나 출신 라울 산레히가 단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바르셀로나 재직 시절 네이마르, 이반 라키티치, 테어 슈테켄 등 굵직한 영입 작업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2019-2020시즌을 앞두고 재정이 탄탄하지 못한 아스널이 알짜 전력보강을 한 배경에는 라울 산레히의 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자연스레 맨유와 맨시티, 아스널의 차이는 단장의 경험에 있다. 맨유의 우드워드는 금융 전문가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아왔다. 축구단의 운영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단장은 단순히 선수 영입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팀의 운영 방향과 축구 스타일 등의 청사진을 그리고 그에 맞는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의 영입까지 인물이다.
#팀 운명 쥐락펴락하는 단장의 역할은?
이강인의 존재 덕에 한국 팬들에게 친숙한 발렌시아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쉽다. 2015-2016시즌부터 2년간 명성에 맞지 않게 중하위권에서 허덕이던 이들은 마테우 알레마니 단장의 수완으로 상위권으로 다시 올라섰다. 마르셀리노 감독을 사령탑에 앉히고 호흡을 맞추며 팀을 끌어 올렸다. 이 과정에서 감독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며 구단주의 지나친 간섭은 차단하는 역할을 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팀을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감독을 데려온 것 또한 그의 능력이었다.
단장의 역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례는 주세페 마로타가 유벤투스에서 이룬 업적이다. 1978년 21세 시절부터 고향의 작은 팀에서 축구 디렉터로 일을 시작한 그는 베네치아, 아탈란타, 삼프도리아 등을 거쳐 2010년 유벤투스에 부임했다.
그는 부임 첫해 리그 7위를 기록하며 기대치를 밑돌았지만 2011-2012시즌부터 안토니오 콘테 감독 부임을 시작으로 리그 8연패를 달성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한때 승부조작 스캔들에 휘말리며 2부리그까지 강등됐던 유벤투스였다.
이 기간 팀을 유럽 전체에서 무시 못 할 강팀으로 만들며 안드레아 피를로, 폴 포그바, 사미 케디라, 다니 알베스 등의 선수들을 모두 자유 계약으로 영입했다. 카를로스 테베즈, 아르투로 비달 등의 영입에도 비교적 적은 돈을 쓰는 장사 수완을 발휘했다. 무조건 돈을 아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팀의 재정이 안정을 찾은 이후엔 곤살로 이과인, 파울로 디발라 등의 영입에 큰돈을 투자하기도 했다.
주세페 마로타는 유벤투스를 다시 명문 반열에 끌어올린 인물이다.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컵을 지안루이지 부폰(오른쪽)과 함께 들어올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마로타의 운영에 유벤투스는 유럽에서 가장 꾸준히 성적을 내는 팀이 됐다. 한 구단이 강력한 모습을 자랑하더라도 그 기간이 3년 이상 지속되기가 어렵다. 주축 선수들이 나이를 먹거나 동기부여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로타는 감독 교체, 선수단 리빌딩 등으로 이 같은 문제에서 벗어나며 리그 우승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노리는 팀으로 꾸준히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2018년 10월 유벤투스와 결별한 마로타는 인터밀란에 합류, 단기간에 팀을 리그 우승 경쟁을 펼치는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팀의 수준을 끌어올린 단장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명망 있는 인물이라고 해서 단장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와 AC 밀란의 레전드 수비수 파울루 말디니는 2018년 8월 팀의 운영진에 합류해 2019년부터는 팀의 단장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팀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여전히 무기력한 모습만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번 2019-2020시즌을 앞두고 부임한 지암파올로 감독은 클럽사상 최단기간에 해임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과정의 뒤에는 말디니가 있었다. 밀란 팬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었던 말디니는 최근 강한 지탄을 받고 있다.
이처럼 유럽 축구에서 단장의 역할은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가 단장을 맡은 맨유는 팬들에게 나날이 실망감만을 안기고 있다. 일관성 없는 감독 선임과 선수 영입 작업이 이어지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위기에 빠진 맨유가 타개책으로 어떤 수를 둘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