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000~1000년, 인류는 세계 곳곳에서 거석(거대한 돌)문화를 꽃피웠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낙의 열석 등이 모두 거석문화의 산물이다. 고인돌 역시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거석기념물로,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돌무덤(지석묘)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3만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전세계 고인돌의 약 40%에 해당하는 숫자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 사진=문화재청
대개 고인돌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 중요 인물의 시신 또는 유골 위에 세운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죽은 자를 가족 공동묘지에 묻기 위해 시신을 수습하는 제단으로도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에 시신과 함께 묻힌 장신구와 그릇, 무기와 농기구 등 부장품은 선사시대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현대인을 ‘태고의 시대로 이끄는 돌로 만든 타임머신’이 바로 고인돌인 셈이다.
그런데 지구촌에서 고인돌이 가장 밀집된 곳은 동북아시아 지역이고, 그 중심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3만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고인돌의 약 40%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전북 고창·전남 화순·인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세계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고인돌의 분포 밀도가 높고 보존 상태도 매우 뛰어나다.
이 세 지역에는 ‘선사시대의 박물관’이라 할 만큼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모여 있어 동북아시아 거석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채석장까지 함께 발견되어 고인돌의 축조 과정과 변천사를 규명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유네스코가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것도 이러한 빼어난 가치와 역사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고창 고인돌 유적지. 사진=고창군 홈페이지
일반적으로 고인돌은 거대한 덮개돌과 이를 지탱하는 두세 개 또는 그 이상의 굄돌로 이루어져 있다. 덮개돌은 크기와 형태가 다양한데, 대형 고인돌의 경우 덮개돌의 무게가 수십, 수백 톤에 이르기도 한다. 이처럼 거대한 덮개돌을 보면, 대체 이 거대한 돌을 어떻게 캐내 운반하고 위로 올렸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경외심이 들게 마련이다. 고려의 문신 이규보는 자신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 남행월일기에서 금마군(지금의 전북 익산군)에 가던 길에 고인돌을 구경한 소감을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고인돌이란 것은 민간에 전하기로는 옛날 성인(聖人)이 고인 것이라 하는데, 과연 이상한 기적(奇迹)도 있다.”
동아시아의 고인돌은 그 모양에 따라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되기도 한다. 탁자식은 땅 위에 서너 개의 굄돌을 석곽 또는 석관의 가장자리에 세우고 거대한 덮개돌을 그 위에 올린 형태다. 반면 바둑판식은 석벽으로 된 무덤방을 땅 밑에 만들어 돌무지를 쌓거나 판석을 세우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은 모양이다. 땅 속 무덤방 위에 바로 덮개돌을 올려놓는 바둑판식의 변종(개석식) 고인돌도 있다.
죽림리와 상갑리, 도산리 일대에 걸쳐 있는 고창 고인돌 유적지는 이렇듯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고인돌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장소다. 특히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강물을 따라 약 1.8km에 걸쳐 고인돌 447기가 점점이 박혀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표현할 만하다.
화순 고인돌 유적 중 핑매바위. 사진=화순군 홈페이지
화순 고인돌 유적도 고창의 유적처럼 강을 따라 야트막하게 이어진 언덕의 능선에 위치해 있다. 효산리(158기)와 대신리(129기) 일대에 분포한 이 지역의 고인돌은 긴긴 세월 숲속에 묻혀 있다가 1990년대에 발굴이 시작돼 고창 유적보다 온전한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효산리 유적지에서는 채석장이 함께 발견되어 덮개돌의 채석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화순 유적 중에서 ‘핑매바위’라 불리는 고인돌 덮개돌은 세계 최대 규모로 무게가 무려 280여 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 고인돌 유적지에는 강화도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산기슭을 따라 160여 기의 고인돌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고도보다 높은 해발 100~200m 지대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길이 6.5m, 높이 2.6m, 너비 5.2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탁자식 고인돌과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에는 ‘고인돌 왕국’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고인돌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비록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더라도, 3000년의 세월이 깃든 고인돌의 역사적 가치가 부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글머리에서 소개한 고인돌 민원처럼 개인의 재산권 행사와 문화유적 보존 사이의 ‘충돌’은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개인 또는 지역사회와 문화유산이 ‘상생’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우리 유산을 오래도록 지켜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아닐까 싶다.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