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자산운용은 2012년 소규모 투자자문사로 출발했다. 시장의 주목을 받은 건 회사가 사모펀드와 대체투자펀드를 앞세워 전문 운용업체로 전환한 2015년부터다. 연달아 고수익을 내면서 은행과 증권PB(프라이빗뱅킹점)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 고액 자산가들의 뭉칫돈을 끌어 모았다. 라임자산운용이 운용자산 1조 5000억 원을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년. 현재는 5조 원 수준으로 일반 종합 자산운용사를 넘어섰다.
라임자산운용은 이후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몸집을 불렸다. 전통적인 투자 대상이었던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을 통해 안정적인 전략을 추구하다 점차 공격적인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모채권과 메자닌, 주식과 채권을 결합한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과 같은 대체투자 상품이 대표적이다. 사모채권은 자산운용사가 직접 발행회사와 계약을 맺는 채권으로 공모채권보다 조건이 좋지만 자산 유동화가 어렵다. 메자닌은 해당 기업의 주가가 오르면 CB·BW 등을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얻을 수 있지만 주가가 내려갈 때는 조건이 급격히 나빠진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 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관련 기자 간담회를 열고 사과와 함께 추후 계획을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 펀드돌려막기 의혹으로 촉발된 환매 중단 사태
이번에 문제가 된 라임자산운용의 펀드들도 사모채권과 메자닌, 무역금융, 세 가지다. 사모채권과 메자닌 펀드의 환매 중단은 지난 10일 결정됐다. 사모채권 펀드 37개(3839억 원), 메자닌 펀드 18개(2191억 원) 등 총 55개 펀드 6030억 원 규모다. 무역금융 펀드는 38개 펀드 2436억 원대로, 지난 14일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가 직접 환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상환금 지급이 연기될 수도 있는 펀드 56개(4897억 원)까지 합치면 총 환매 연기 금액은 최대 1조 3363억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10월 2일까지만 해도 환매가 연기된 금액은 274억 원이었다. 불과 열흘 만에 규모가 1조 3000억 원대로 불어난 이유는 라임자산운용 펀드들의 복잡한 구조 탓이다. 대부분 ‘모자(母子) 펀드’로 얽혀 있다. 모펀드 투자 비중을 여러 갈래로 조합해 수십 개의 자펀드가 만들어졌다. 일부 자펀드 중에는 모펀드에서 손실을 선순위로 떠안는 구조도 있다. 결국 한 펀드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환매 중단 사태는 3개의 특정 모펀드에서 출발했다. 코스닥 기업들의 사모채권 등에 주로 투자한 ‘플로토 1호’ 펀드와 코스닥 기업들의 CB와 BW 등을 주로 편입한 메자닌 ‘테티스’, 해외 대체투자 펀드인 ‘무역금융’이다.
일단 표면적인 문제는 최근 이 펀드들에서 발생한 유동성 문제다.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기업들은 코스닥에 상장된 정보통신(IT), 바이오 분야 기업들인데 실적 악화 등으로 주가가 고전 중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시장에 알려지면서 환매 중단 사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보통 자펀드는 모펀드 편입 비율 등에 따라 수익을 확정한다. 모펀드의 위험을 분산하고 언제든지 환매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활용한다”면서도 “그러나 모펀드에서 투자한 메자닌을 현금화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면 환매가 어렵고, 환매가 쉽도록 만든 펀드의 경우엔 유동화 문제가 시장에 알려지면 투자자들의 환매 청구가 한꺼번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상당히 극단적인 경우이긴 한데, 현재로선 라임자산운용이 처한 상황이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순히 투자 기업들의 주가가 고전한 이유만으로 이번과 같이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는 어렵다. 실제 일부 펀드는 만기가 돌아오면 원금과 약속한 이자는 보장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선 이번 사태의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라임자산운용을 둘러싸고 불거진 의혹으로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상장사인 지투하이소닉의 거래 정지 전에 내부정보를 이용해 CB를 장외기업에 넘겼고, 수십 개의 펀드 수익률 돌려막기 등이 골자다.
이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7월. 금융감독원도 이와 관련해 검사에 착수했고, 금감원의 수사 의뢰를 받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 의혹이 제기된 직후 라임자산운용의 고객들은 라임자산운용의 펀드에서 자금을 대량으로 빼갔다. 8월 이후엔 매주 1000억 원의 자금이 회사에서 빠져나갔다. 8~9월 두 달 동안 순유출 금액은 8980억 원에 달한다.
라임자산운용은 그동안 보유 현금으로 환매 요청에 대응하고 자산 매각도 진행했으나 환매 요청 규모가 순식간에 불어나 원금 회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자 환매 중단을 선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도 검사 과정에서 별도로 라임자산운용에 우려와 함께 환매 중단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라임자산운용이 제출한 자료 전반을 토대로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로선 환매 중단을 하고 향후 매각을 통해 상환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전했고, 회사도 내부 검토 끝에 이를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오른쪽)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은행권으로 번지는 ‘라임 사태’
라임자산운용은 자산을 무리하게 매각해 펀드 수익률을 낮추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안정적으로 매각해 투자금을 최대한 회수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환매 재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내년 말까지는 투자금 70%까지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회사의 전망이다.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은 “투자했던 회사들이 어려워진다고 해도 상환 예정인 1~2년 안에 어려워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며 “빠른 회수를 통해 원금을 돌려 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라임자산운용의 계획과는 별개로 이번 환매 중단 사태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과 증권사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아서다. 특히 최근 DLF(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은행들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를 가장 많이 판 곳으로 또 다시 등장했다. DLF와 라임자산운용 펀드의 형태는 전혀 다르지만 리스크 관리와 관련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금감원 등에 따르면, 라임자산운용의 8월 말 기준 펀드 설정잔액은 총 5조 3713억 원이다. 판매사별로 대신증권 판매 펀드설정액이 9800억 원으로 가장 많고 우리은행 8808억 원, 신한은행 4926억 원, 신한금융투자 4295억 원 등이다. 은행은 만기 6개월에 중도환매가 안 되는 ‘폐쇄형’ 펀드를 팔았고, 증권사는 1년 만기에 중도 환매가 가능한 ‘개방형’ 펀드를 주로 팔았다.
특히 DLF를 가장 많이 팔았던 우리은행은 라임자산운용 펀드도 가장 많이 판매했다. 지난해 연간 판매액은 1000억 원대였지만, 올해 1분기엔 6000억 원가량 늘었다. 사모펀드 판매 영업을 적극적으로 해오던 영업점을 중심으로 라임자산운용의 펀드를 판매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주로 판매한 펀드는 사모사채와 자산 유동화를 기초로 한 펀드들이었다.
최근 금감원은 우리은행을 비롯한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를 판매한 30개 판매사에 대한 판매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운용사 중심에서 판매사로 조사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사모펀드는 공시 의무가 없어 투자자 정보나 가입자 수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만큼 금감원은 이번 조사를 통해 정확한 펀드 판매규모와 투자자 숫자, 만기도래일, 판매유형 등을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은행 등을 통해 DLF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에 동시 가입한 투자자가 몇 명인지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증권가에선 라임자산운용이 무리하게 고위험 펀드들을 만드는 데 판매사인 은행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동성 위기는 만기가 짧을수록 쉽게 올 수 있어 그만큼 위험도가 더 높아진다. 그런데 은행들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를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한 지난해 말과 올해 초부터 만기가 짧은 펀드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경우 라임자산운용은 은행들과 거래를 늘릴 수 있고, 은행들은 만기가 짧은 펀드 여러 개를 팔수록 판매 수수료를 더 챙길 수 있다.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 입김이 센 것도 있지만, 운용사 입장에서도 은행의 제안이 수익 측면에서 나쁠 게 없었다. 결국 은행과 운용사가 ‘수요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영업을 시도했고, 무리를 알고도 눈 감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