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이 발생한 강화도 덕하리 마을. 오른쪽 동그라미 안에 집이 피해자 A 씨가 살던 집이다. 왼쪽 동그라미 안에 있는 집이 유력 용의자 B 씨가 살던 집이다. 사진=박현광 기자
혼자 살던 A 씨는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9월 10일 낮 12시 22분께 집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뾰족한 물건으로 머리 뒤쪽을 가격 당한 A 씨는 거실 바닥에 모로 누운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누군가 집 안을 뒤진 흔적은 없었다.
경찰은 초기 수사에 강화경찰서 강력팀 10명, 인천지방경찰청 강력계 30여 명 등 인력을 대거 투입했지만 난항을 겪었다. 7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시골 마을엔 CCTV(폐쇄회로화면)가 없어 용의자 특정이 쉽지 않았다. 경찰은 수사범위를 인근 마을까지 넓혀 용의자를 40명 정도까지 특정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현장이 깨끗하게 치워진 뒤라 단서를 찾기도 어려웠다.
사건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한 아무개 씨였다. A 씨 아들 김 아무개 씨는 어머니가 전날 오후 7시 30분께 전화를 받지 않고 사건 당일 오전 6시 20분쯤 다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자 한 씨에 연락해 확인을 부탁했다. 한 씨는 A 씨와 5m쯤 떨어진 곳에 사는 이웃주민이자 김 씨 동생과 친구였다. 한 씨는 김 씨의 연락을 받고 A 씨 집을 찾았다.
한 씨는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피가 흥건했다. 모로 누워 있는 A 씨를 건드리면서 일어나라고 했는데 딱딱했다”며 “당황해서 김 씨에게 전화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전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고 답했다.
A 씨 사망 추정 시각은 사건 전날인 9월 9일 오후 3시 30분에서 오후 7시 30분 사이다. 마을 부녀회장이 9월 9일 오후 3시 30분께 A 씨 집을 방문해 먹는 김을 건넬 때까지 A 씨는 멀쩡했다.
강화도 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94세 B 씨는 국가유공자였다. 170cm 중반의 키에 체격이 좋았다고 한다. 평소 거동이 불편에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사진=박현광 기자
B 씨와 C 씨는 결국 A 씨 집에 함께 들어간 뒤 죽은 A 씨를 확인했다. 두 사람은 바닥에 있는 피를 닦고 A 씨를 염했다. 경찰이 오기 전이었다. C 씨는 “집안 6촌 형님인 B 씨를 데리고 작은어머니(A 씨) 집에 들어갔다. 형님이 ‘일단 바닥에 피가 많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닦자’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런 뒤에 새끼줄을 구해서 사람이 죽으면 몸이 굳으면서 쪼그라드는데 그걸 막기 막으려고 염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까닭에 이미 깨끗하게 치워진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사건 현장을 가장 처음 본 한 씨와 피를 닦은 B 씨, C 씨 등을 용의 선상에 올리고 수사를 이어갔다. 용의자 집에서 끝이 뾰족한 망치나 지팡이 등을 압수 수색해 국과수에 정밀 검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진척 없는 수사가 이어지던 가운데 B 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됐다. 사건 발생 일주일 뒤인 지난 9월 17일 B 씨가 자신의 집 마당에서 농약을 마시고 쓰러진 채로 발견되면서다.
A 씨 아들 김 씨에 따르면 A 씨와 B 씨 사이에 땅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차로인 큰길에서 B 씨 집으로 나 있는 길은 A 씨 땅이었다. B 씨는 A 씨에게 도로를 포장해달라고 요구했지만 A 씨는 이를 거절했다. 최근 A 씨 땅을 거쳐 자신의 집에 상수도를 연결하려던 B 씨는 A 씨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하기도 했다.
A 씨 아들 김 씨가 지난 9월 16일 경찰 조사에서 땅 문제로 다툼이 있었단 사실을 진술했고, 같은 날 저녁 경찰은 B 씨를 탐문했다. 그 다음 날 오전 6시 30분께 B 씨는 사망한 채로 운동을 나가던 마을 주민에게 발견됐다.
최근 사망한 B 씨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지만 여전히 경찰은 신중한 모습이다. 수사를 담당하는 강화경찰서 관계자는 “B 씨를 용의 선상에 두고 수사를 한 건 맞다. 하지만 아직 단정할 순 없다. 국과수 검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경찰은 국과수 검사 결과 등을 통해 B 씨가 피의자임이 확인될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한 뒤 사건을 종결할 계획이다.
한편 11월 말, 유력 용의자로 특정됐던 B 씨의 유가족이 반론권을 요청해왔다. B 씨 유가족은 “B 씨가 거동이 심하게 불편해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고 A 씨와 교류도 많지 않았다. B 씨를 돌봐주는 요양보호사가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A 씨와 마주친 적이 없다. 땅 문제로 논의가 있긴 했지만 B 씨는 다른 길을 낼 수 있는 방안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수도는 애초에 원치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B 씨가 죽기 이틀 전 경찰 몇몇이 B 씨의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와 물건을 뒤지고, B 씨의 옷을 벗겨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에 B 씨가 충격을 받아 밥도 먹지 않았다. B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여전히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B 씨를 이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