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언론 ‘레퀴프’의 저널리스트 빌레 가지는 성난 리옹팬들의 반응을 전했다. 리옹팬들은 설산사자기 카드섹션으로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사진=프랑스 저널리스트 빌레 가지 트위터 캡처
#때로는 방해꾼, 때로는 구세주 되는 중국
여느 때와 다름없이 리옹의 열성 홈팬들이 골문 뒤에 위치했다. 그런데 이들의 응원방식은 여느 때와 달랐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티베트를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던 것이다. 이들은 킥오프 직전 ‘FREE TIBET(자유 티베트)’이라는 걸개를 내걸었으며 골대 뒤 관중석에서 설산사자기(티베트 망명정부의 기) 모양의 카드섹션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티베트 문제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국에 대한 반발의 표시였다.
이날 리옹의 홈경기는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 30분에 시작됐다. 저녁 경기가 익숙한 프랑스 팬들에게 생소한 시간대였다. 프랑스 리그 측은 ‘세계 최대 스포츠 시장’인 중국에 리그를 홍보하기 위해 킥오프 시간을 조정했다. 이에 리옹팬들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유럽 현지에서 아시아 지역의 팬들을 위해 킥오프 시간을 앞당기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상업적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현지 시각으로 낮 시간(정오)부터 경기를 편성한 지 수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를 두고 ‘Lunchtime kick-off(점심시간 킥오프)’라며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때로는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는다며 불평을 하기도 한다.
‘시에스타’로 불리는 낮잠 문화가 유명한 스페인은 기존 킥오프 시간이 더 늦은 리그를 운영해왔다. 특히 인기가 많은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엘클라시코는 밤 11시에 킥오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리메라리가도 변화를 피할 순 없었다. 중국 축구 영웅 우레이가 리그에서 활약 중인 현재, 정오부터 다양한 시간대에 킥오프를 한다.
이처럼 유럽축구에서 아시아권, 특히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변화는 대세가 됐다. 성난 리옹팬들의 반발이 이례적으로 보일 정도다. 막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의 자본은 유럽 축구계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팬들이나 관계자들 모두 중국 측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세리에 A 명문 구단 인터밀란 팬들에게 중국 자본은 ‘구세주’와 같은 존재다. 인터밀란은 화려했던 2009-2010 시즌을 뒤로 하고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럽을 호령하던 팀에서 국내리그 우승 경쟁에서도 멀어진 팀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2016년 중국 재벌그룹 쑤닝이 구단을 인수하면서 내실을 다지며 성장해나갔고 이번 시즌엔 리그 우승 경쟁에 뛰어드는 자리까지 올라섰다.
스페인의 에스파뇰도 중국의 ‘돈 맛’을 톡톡히 보고 있는 팀이다. 에스파뇰은 2016년 중국 완구재벌 라스타그룹에 인수된 후 중국 스타 우레이 영입으로 절정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레이 영입 발표 직후 48시간 동안 판매된 유니폼만 2000장이 넘었다.
#NBA의 대담한 고집
이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인 스포츠 리그’ 중 하나였던 미국프로농구(NBA)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 NBA의 가장 큰 해외시장인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오고 있다.
발단은 휴스턴 로키츠 대릴 모리 단장의 ‘홍콩 지지 발언’이다. 그는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자유를 위한 싸움, 홍콩을 지지한다”는 글을 남겼다. 중국 팬들의 격한 반발을 사는 발언이었다. 단순히 팬들만의 움직임으로 끝나지 않았다. 휴스턴 스폰서인 리닝, 상하이푸둥개발은행이 후원을 중단했다.
지난 12일 중국 선전에서 LA 레이커스와 브루클린 네츠의 NBA 시범경기는 예정대로 열렸지만 기자회견, 팬미팅 등 관련 부대행사가 모두 취소됐다. 사진=연합뉴스
구단과 NBA 측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중국의 화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에 저자세를 보이는 듯한 태도 때문에 미국 현지의 반발만 샀다. 결국 NBA 측은 “선수와 구단이 특정 사안에 대해 발언하거나 침묵하는 것을 규제할 뜻이 없다”는 성명으로 내수시장 지키기를 선택했다.
NBA와 중국의 기싸움은 장기전으로 돌입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 안타스포츠, 피커, 전자제품 업체 창훙, 메이링, 유제품 업체 멍뉴유업 등 NBA 공식 후원사 25개 중 11개의 중국 기업이 후원을 중단했다.
중국의 영향력은 선수와 감독, NBA 울타리 밖으로도 이어졌다.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들과 감독들도 중국과 갈등 관련 질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답변을 내놓으며 양측의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특히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홍콩 시위에 대해 선수들이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중립적 자세를 취하자 미국 내 각계각층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NBA와 중국의 대립 시발점이 휴스턴이라는 점에서 더욱 불타올랐다. 휴스턴은 농구 인기가 높은 중국 내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팀 중 하나다. 중국 농구 영웅 야오밍이 활약했던 팀이기도 하며 때론 한자가 가슴에 적힌 유니폼을 착용하기도 하는 등 ‘친중국’ 행보를 이어오던 팀이다.
지속되는 대립에 중국 내에서 열릴 G리그(NBA 하부리그) 경기가 취소됐고 NBA 프리시즌 경기는 기자회견, 팬 미팅 등 부대행사가 취소됐다. 중계방송도 이뤄지지 않았다. NBA 전체 중계를 중단했던 중국 온라인 미디어 텐센트가 일부 재개했지만 대립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당분간 NBA와 중국의 불편한 동거는 지속될 전망이다.
#보이콧 운동으로 번진 블리자드의 ‘중국 시장 지키기’
중국의 압력에도 나름 ‘지조’를 지킨 NBA와 달리 e스포츠에서는 홍콩 사태와 관련해 중국 눈치보기에 급급한 사건이 발생했다. 굴지의 게임 기업 블리자드사가 자신들이 주최한 대회에서 홍콩 지지 발언을 한 게이머에게 불이익을 주며 중국 이외의 이용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10월 7일 ‘하스스톤 그랜드마스터즈 시즌2’ 경기에서 승리한 홍콩 출신 게이머 블리즈청은 인터뷰에서 “홍콩을 해방하라(Liberate Hong Kong)”라고 외쳤다. 이에 블리자드 측은 ‘대중을 불쾌하게 하면 해당 플레이어에게 이용 금지, 상금 몰수 징계를 내린다’는 규정을 들이밀었다. 이후 블리즈청이 홍콩 지지 의지를 다시 밝히자 블리자드사 게임 이용자들의 반응이 폭발했다. 중국을 제외한 각국 게이머들이 블리자드사의 대응에 반발했다.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중국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고 있다는 불평이 터져나왔다. 많은 이들이 홍콩 지지 발언을 이어갔고 이에 블리자드는 이용 금지(밴)로 대응했다.
홍콩 사태 관련 발언에 제재를 거는 블리자드사의 행태에 국내에서도 보이콧 운동의 움직임이 나왔다. 사진=트위터 화면 캡처
스포츠의 상업화·세계화가 가속화되며 중국은 거대자본과 막대한 인구를 앞세워 그 영향력을 점점 더 넓혀가고 있다. 이미 곳곳에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의 입김이 앞으로 스포츠 시장에 어떤 변화를 더 가져올지 많은 눈길이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