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공유. 영화 ‘82년생 김지영’ 인터뷰. 사진=매니지먼트숲 제공
무엇보다 그 ‘82년생 김지영’이다. 대척점에 있는 양측 세력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던 이 작품을 “대체 왜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들려온 답은 심플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안 돼? 이런 마음으로 살려고요(웃음).”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공유(40)는 정제되고 절제된 단어를 사용했다. 작품을 두고 불거진 논란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 애를 써야 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왜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일까”라며 역으로 질문을 던지는 게 그의 일이었다.
“영화를 선택할 때 많은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굳이, 지금, 왜?’ 이해는 했지만, 그런 분들이 많다는 것에 저도 ‘아니 이게 뭐 그렇게…. 왜 그렇게 받아들이지’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작품을 선택한) 제 행보가 뭔가 의미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저는 그냥 원래 그랬어요.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그런 부분에서 명료해지는 것 같아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할래’ 이런 마음이 진해지는 느낌.”
배우 공유.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82년생 김지영’ 속 공유는 그간 그가 맡아왔던 작품들과는 달리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선에서 부인인 지영(정유미 분)과 자신을 분리시키는 남편 대현의 역을 맡았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보통의 남편이다.
지영에게 화를 내지 않고, 가부장적인 면모가 없으며, 방법이야 어쨌든 지영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는 좋은 남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소극적인 시도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대사 “내가 도와줄게”로만 표현될 뿐이다. 지난 14일 시사회 이후 관객들 사이에서는 “대현이가 저 ‘도와줄게’라는 말을 할 때마다 한 대씩 때려주고 싶었다”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저도 그 대사를 할 때 그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어요(웃음). 극중에 대현이를 보면, 좋게 말하면 참 애가 천진난만하죠. 디테일한 건 하나도 모르고 신혼 때 앞뒤 생각 하지 않고 ‘아이를 낳자’ 하는 것도 그렇고… 한편으로는 그런 (무심한) 대사가 좀 더 많았으면 했어요. 공감하지 못하는 누군가는 대현이를 보고 ‘저 정도면 좋은 남편이지, 착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감독님께서는 ‘아냐, 이 정도로도 충분히 표현이 돼.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눈치가 없어’ 하시더라고요(웃음). 집에서 아이를 키우시거나 결혼 하신 분들, 여성분들은 확실하게 그 (무심한) 부분이 눈에 보일 것이고, 남성분들은 무디게 받아들이시지 않을까요?”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공유’가 ‘대현’을 연기한다는 것에는 앞서 알려진 논란 외에도 주변인들의 또 다른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 공유라는 배우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이른바 ‘로맨스 판타지적인 아우라’가 이 영화에서만큼은 마이너스 포인트가 되지 않겠냐는 지적이었다. 앞서 tvN 드라마 ‘도깨비’ 등으로 다시 한 번 로맨스 장인으로 우뚝 섰던 그 역시도 이 점에 대해서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중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공유라는 배우의 호감이나 판타지 같은 게 필요 이상으로 가미돼서 대현이라는 역할도 너무 판타지스러운 인물이 되면 어떡하나 그런 우려를 했어요. 영화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고, 단순히 소모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감독님과 그런 지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현이가 지금보다 덜 착했으면 또 어땠을까 여쭤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보다 더 무심하고 차가운 캐릭터였다면,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 극적으로 바뀌는 거니까 오히려 더 심하게 영화적인 인물이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납득했어요. 저도 처음에 출연을 결정할 때 대현이가 지나치게 판타지적인 인물이라고는 생각을 안했거든요. 그래서 대현이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굳어진 이미지를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 뒤부터 배우 공유에게 있어 대현은 조금이나마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됐다. 부산 출신인 그가 처음으로 사투리 대사를 칠 수 있게 된 것도 대현을 통해서라고 하니, 여러모로 그에게는 친밀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사투리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꽁꽁 숨겨왔었거든요(웃음). 그런데 감독님께서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제가 부산 사람인 걸 모르고 되게 조심스럽게 ‘사투리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부담되지 않으시겠어요’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 부산 사람인데요’ 했더니 엄청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저도 부산 사람이지만 서울에서 20년, 부산에서 20년 이렇게 삶의 반을 나눠서 살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말투가 섞일 때가 있어요. 유미 씨도 부산사람이라서 나 사투리 제대로 한 거 맞냐고 물어보고 그랬는데, 영화 나가고 나서 누가 저보고 ‘사투리 잘못 썼다’고 지적하면 되게 자존심 상할 것 같아요(웃음).”
영화 ‘82년생 김지영’ 제작보고회 현장. 사진=박정훈 기자
같은 소속사, 같은 고향 출신의 상대역 정유미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공유는 정유미에 대해 “관객의, 시청자의 입장으로서 정유미라는 배우를 신뢰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앞서 ‘부산행’처럼 같은 작품을 해 봤으니까 정유미라는 배우가 상대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지, 또 어떤 배려를 하는지 확인을 했잖아요. 저는 유미 씨에 대한 신뢰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나서 유미 씨에게 참 고마웠어요. 내가 믿은 배우가 내게 선물 같은 보답을 주는 것 같아서. 저희 팬 분들은 유미 씨와 제가 달달하고 로맨틱한 걸 찍기를 기대하시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저도 적지 않은 나이에, 달달하고 로맨틱한 사이가 아닌 상황에서 만난 게 더 편했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더 많았다고 생각해요. ‘로코물’은 물론 좋아하죠, 기회가 되면 또 할 거예요. 그런데 점점 캐스팅이 들어오는 비중이 줄겠죠….”
불혹의 나이에 선택한 ‘82년생 김지영’은 정유미에게도 그렇겠지만, 공유에게 있어서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그들을 향해 날선 비난이 날아들고 있지만 그는 “그분들을 비난하거나 틀린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감히 말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있으니 이를 존중하겠다는 마음에서다.
“저는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세상을 바꾸겠어’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선택하지도 않아요. 제 역할은 그냥 제가 하고 싶고, 동참하고 싶은 이야기 속에서 배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아주 작게나마 바라는 게 있다면 ‘인식의 개선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거예요. 저도 영화를 찍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생각났고, 엄마가 생각났고, 생전 전화 안 하던 무심한 아들내미가 전화도 했어요. 한번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한 여자의 이야기만을 다룬 게 아니라 가족이 있고, 사회가 있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