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와 키움이 2년 연속 플레이오프 맞대결을 펼쳤다. 15일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2차전에서 승부를 결정지은 키움 송성문의 적시타 장면. 사진=연합뉴스
두 팀의 재대결이 더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양 팀 사령탑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SK 사령탑은 트레이 힐만 감독이었지만, 올해는 2013년부터 4년간 키움(전 넥센) 감독을 역임했던 염경엽 감독이 SK를 지휘했다. 현재 키움 사령탑인 장정석 감독은 염 감독 시절 구단 매니저와 운영팀장을 맡다 후임으로 깜짝 발탁된 인물. 두 팀의 1년 전 인연에 두 감독의 사연까지 얽혔으니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게 당연하다.
#리버스 스윕을 낳은 두산-롯데의 2009-2010 준PO
이전까지 포스트시즌 역사에서 같은 팀끼리 같은 시리즈에서 2년 연속 격돌한 사례는 모두 7차례 나왔다. 한국시리즈 4회, PO 2회, 준PO 1회다. 공교롭게도 7번 가운데 6번은 전년도 승리 팀이 또 이겼고, 같은 감독이 같은 감독에게 다시 한 번 당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준PO에서의 유일한 리턴 매치는 2009년과 2010년 두산과 롯데의 맞대결이었다. 두 시즌 모두 두산 감독은 김경문, 롯데 감독은 제리 로이스터였다. 결과는 2년 연속 두산의 승리. 롯데는 두 시리즈 모두 1차전을 먼저 이기고도 PO행 티켓을 두산에 내주는 아픈 기억을 남겨야 했다.
사연도 남달랐다. 2009년 가을 롯데는 꼭 다음 단계인 PO에 올라가겠다는 각오에 불탔다. 2008년 로이스터 감독과 함께 8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지만, 준PO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탈락했던 탓이다. 실제로 잠실에서 열린 원정 1차전을 먼저 잡으면서 기세도 올렸다. 하지만 이후 조짐은 좋지 않았다. 2차전을 두산에 내줬고, 사직구장으로 자리를 옮겨 치러진 3차전도 다시 패했다. 때마침 추석 연휴와 준PO가 맞물리면서 로이스터 감독이 “4차전 직후 한복을 입고 인터뷰를 하겠다”는 공약까지 했지만, 결국 3회 대거 7점을 내주면서 5-9로 역전패했다. 2년 연속 다음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고 가을 야구를 마감했다.
롯데는 2010년 다시 준PO에서 두산을 만났다. 설욕을 다짐했고, 초반 기세는 무서웠다. 잠실 원정에서 2승을 먼저 해냈다. 1차전에선 9회 전준우의 결승 솔로포가 터졌고, 2차전에선 그해 타격 7관왕 이대호가 연장 10회초 3점포를 쏘아 올렸다. PO 진출 문턱까지 갔다.
그러나 ‘미러클 두산’의 진짜 기적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직 원정에서 열린 3차전이 전환점이었다. 두산이 6-5로 앞선 6회말 전준우가 친 홈런성 타구가 바람을 타고 그라운드 상공으로 들어온 애드벌룬에 맞고 떨어졌다. 6심이 모여 합의한 끝에 아웃 판정이 나왔고, 결국 그 점수 그대로 두산이 이겼다. 분위기를 탄 두산은 사직 4차전을 11-4로 승리한 뒤, 다시 돌아온 잠실 5차전에서도 똑같이 11-4의 스코어로 대승을 거뒀다. 준PO 사상 첫 리버스 스윕. 롯데를 3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던 로이스터 감독은 결국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LG-삼성, SK-롯데가 2년 연속 격돌한 PO
PO에서의 첫 리턴 매치는 1997년과 1998년의 LG와 삼성이다. 천보성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LG는 1997년 조창수 감독이 이끌던 삼성과 PO에서 만났다. 잠실에서 열린 1차전과 2차전은 LG의 승리. 1차전 승리 투수는 현재 LG 단장을 맡고 있는 차명석이었다. 훗날 삼성 감독이 되는 김한수와 류중일이 이 경기에서 모두 홈런을 쳤지만, LG도 유지현의 그랜드슬램을 앞세워 11-5로 대승했다. 하지만 삼성도 대구에서 홈 두 경기를 내리 6-4 스코어로 이겼다. 두 경기 모두 최익성의 홈런 덕을 톡톡히 봤다. 결국 승부는 다시 잠실로 돌아와 펼쳐진 5차전에서 갈렸다. 최익성의 3경기 연속 홈런에도 불구하고 LG가 결국 이겼다. 이상훈은 5차전에서도 승리 투수가 돼 구원승으로만 2승을 따냈다.
이듬해 두 팀은 다시 PO에서 격돌했다. 이번에도 LG 감독은 천보성이었지만, 삼성은 서정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LG 입장에선 1년 전보다는 오히려 더 수월한 승부였다. 대구 원정에서 열린 1·2차전을 모두 잡은 덕에 3승 1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4할 맹타를 휘두른 유지현이 시리즈 MVP로 뽑혔다.
SK와 롯데가 2년 연속 맞붙은 2011년과 2012년 PO도 무척 치열했다. 이만수 SK 감독과 양승호 롯데 감독이 격돌해 두 번 모두 5차전까지 이어졌고, 두 번 모두 SK가 3승 2패로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냈다.
SK는 2011년엔 원정, 2012년엔 홈에서 각각 1차전을 먼저 잡고 기선제압을 했다. 2011년 1차전에서는 연장 10회 정상호의 결승 솔로포가 터져 7-6으로 이겼고, 2012년 1차전에선 에이스 김광현의 호투를 앞세워 2-1로 승리했다. 반대로 롯데는 두 번 모두 2차전을 잡아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2011년 2차전은 전준우와 강민호의 홈런 두 방을 앞세워 4-1로 따냈고, 2012년 2차전은 연장 10회 승부 끝에 5-4 한 점 차 승리를 올렸다.
하지만 이후 양상은 달랐다. 2011년에는 양 팀이 일진일퇴 공방전을 펼치다 5차전에서 승부가 갈렸다. 롯데는 SK의 ‘가을 남자’ 박정권에게 4회와 6회 연속으로 2점 홈런 두 방을 맞아 안방에서 상대에게 승리를 내줬다. 2012년엔 롯데가 3차전까지 이겨 먼저 승기를 잡았지만, 4차전과 5차전을 연승한 SK가 안방에서 승리를 확정했다. 당시 SK 소속이던 소방수 정우람은 팀이 이긴 3경기에서 모두 세이브를 기록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삼성-빙그레를 꺾은 해태
한국시리즈에서의 2년 연속 대결은 모든 시리즈 중에 가장 많다. 특히 해태는 ‘왕조’를 이뤘던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삼성과 빙그레를 2년씩 차례로 만나 4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해태 사령탑은 4시즌 모두 김응용 감독이었다.
많은 경기를 치르지도 않았다. 1986년 삼성과 승부에선 2차전에서만 김일융의 완투에 눌려 1-2로 패했을 뿐 대구 원정 2경기까지 모두 잡고 4승 1패로 우승을 확정했다. 4승 가운데 3승(선발 1승, 구원 2승)을 올린 ‘까치’ 김정수가 한국시리즈 MVP로 뽑혔다. 반대로 정규시즌 내내 호투했던 삼성 김시진은 3패를 안아 눈물을 삼켰다.
삼성과 다시 만난 1987년엔 아예 한 번도 지지 않고 4승 무패로 시리즈를 끝냈다. 1차전에서는 한대화와 김성한이 홈런을 쳤고, 3차전과 4차전에서는 한국시리즈 MVP 김준환이 홈런을 날렸다. 그해 삼성 사령탑은 김응용 감독과 실업 야구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인 박영길 감독.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할 따름이다.
해태는 1988년과 1989년 빙그레로 상대를 바꿔 다시 왕좌에 올랐다. 1986년에는 1~3차전을 먼저 이겨 가볍게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는 듯했지만, 이후 빙그레의 거센 반격에 부딪혔다. 4차전에서 빙그레가 장종훈, 이강돈, 유승안의 홈런 세 방을 앞세워 14-3으로 크게 이겼고, 5차전에서도 선발 이상군의 역투에 힘입어 5-1로 승리했다. 하지만 결국 6차전에서 해태가 승기를 가져왔다. 3차전에서 완봉승을 올리고 6차전에서도 1실점으로 완투한 문희수가 한국시리즈 MVP로 뽑혔다.
1989년에도 다시 해태가 3승을 먼저 올린 뒤 4차전을 내줬지만, 5차전에서 선동열을 앞세워 5-1로 이겨 4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86년 삼성 지휘봉을 잡고 해태에 패한 김영덕 감독은 1988년과 1989년 빙그레를 이끌면서 2년 연속 다시 한국시리즈까지 올랐지만 결국 해태의 벽을 넘지 못했다. 감독으로서 4년간 무려 세 차례나 한국시리즈에서 김응용 감독에게 당한 셈이다.
김성근 감독(왼쪽, 당시 SK)과 김경문 감독(당시 두산)은 2000년대 후반 포스트시즌에서 수차례 맞대결을 펼치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사진=연합뉴스
#2007·2008년 SK와 두산, 김성근과 김경문
2000년대 후반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SK와 두산.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모두 격돌했던 당대 최강팀들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늘 SK의 손을 들어줬다. 많은 감독에게 아픔을 안겼던 김경문 두산 감독은 결정적인 순간 김성근 SK 감독에게 번번이 패해 한동안 ‘2인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2007년 한국시리즈는 특히 두산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인천 원정에서 열린 1차전과 2차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면서 의기양양하게 홈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1차전에서는 당시 최고 외국인 투수였던 다니엘 리오스가 공 99개로 역대 한국시리즈 최소 투구수 완봉승을 거뒀고, 2차전에서는 또다른 외국인 투수 맷 랜들이 호투해 솔로홈런 세 방을 친 SK를 꺾었다. 그러나 정작 잠실 홈으로 돌아온 뒤 경기가 꼬이기 시작했다. 3차전에서 간판타자 김동주가 얽힌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지면서 1-9로 대패한 게 신호탄이었다. 4차전에서는 에이스 리오스를 3일 휴식 후 등판시키는 강수를 뒀지만, SK가 깜짝 카드로 내민 김광현에게 꼼짝없이 당했다. SK 신인 김광현은 6회 1사까지 노히트 행진을 이어가면서 두산 강타선을 틀어 막았고, 결국 7⅓이닝 9탈삼진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새로운 에이스의 완벽한 쇼케이스였다. 기세를 빼앗긴 두산은 이후 5차전과 6차전도 허무하게 내줬다. 6차전에서 홈런을 터트린 SK의 ‘더 스타’ 김재현이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2008년 두산과 다시 만난 SK는 더 강한 팀이 돼 있었다. 역시 홈에서 열린 1차전을 먼저 내줬지만 이후 2~5차전을 내리 승리로 이끌면서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했다. 1년 새 SK 에이스로 자리를 굳힌 김광현이 마지막 5차전에서 무실점 투구로 우승을 확정했고, 3차전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터트린 최정이 한국시리즈 MVP로 뽑혀 새로운 간판타자의 탄생을 알렸다.
#3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한 삼성과 SK
SK는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KIA에 패해 준우승한 뒤 2010년 또 다시 한국시리즈 무대에 선착했다. 이번엔 PO에서 두산과 5차전 혈투를 펼치고 올라온 삼성이 상대였다. 당시 삼성과 두산의 PO는 역대 최초로 5경기가 모두 1점 차로 끝났을 정도로 치열했다. 그 결과가 삼성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에 관심이 쏠렸다.
결과는 독. 앞선 5경기에 체력과 열정을 모두 쏟아 부은 삼성은 3주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기다린 SK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인천에서 열린 1차전과 2차전은 물론이고, 대구에서 열린 3·4차전 역시 이틀 연속 2-4라는 스코어로 무기력하게 패했다. ‘가을 남자’ 박정권을 앞세운 SK 타선 앞에 삼성의 강한 마운드가 힘을 못 썼다. 김성근 SK 감독은 또 한 번 우승 사령탑이 됐고, 전의를 잃은 채 4패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선동열 삼성 감독은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고도 그해 말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듬해 한국시리즈 상대도 SK와 삼성. 하지만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역대 리턴 매치 가운데 유일하게 양 팀 사령탑이 모두 교체된 채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삼성에 처음 부임한 류중일 감독과 시즌 도중 SK 지휘봉을 넘겨 받은 이만수 감독의 대결이었다.
결과 역시 반대가 됐다. 삼성은 오승환이라는 역대 최고 마무리 투수를 앞세워 1차전과 2차전 모두 2점씩만 뽑고도 승리를 가져갔다. SK는 3차전에서 박재상과 최동수의 솔로 홈런 두 방 덕에 2-1로 승리해 만회를 노렸지만, 4차전에서 다시 패해 고개를 숙였다. 삼성은 5차전에서 선발 차우찬과 마무리 오승환의 무실점 역투로 ‘지키는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면서 1-0으로 이겨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했다. 리턴 매치에서 전년도 패전 팀이 승리한 최초의 사례였다.
두 팀은 2012년에도 한국시리즈에서 만나 또 한 번 역대 최초로 3년 연속 맞붙는 새 역사를 썼다. 다만 이번에는 결과가 1년 전 그대로였다. 대구 1·2차전을 삼성이 잡고 인천 3·4차전을 SK가 가져가면서 2승 2패로 팽팽히 맞선 상황. 그러나 중립구장 잠실에서 열린 5차전과 6차전은 모두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5차전에서는 선발 윤성환과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2-1 승리를 합작했고, 6차전에서는 박석민이 결승 홈런을 때려내 수월하게 우승을 확정했다. 류중일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고, 이만수 감독은 삼성 시절 후배였던 류 감독에게 2년 연속 왕좌를 내줘야 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