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출간돼 100만 부가 팔린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세상에 나온 지 햇수로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슈의 중심에 있다. 1982년에 태어나 평범하게 성장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은 여성 김지영의 이야기가 동시대 여성의 지지를 얻었지만 한편으론 ‘남성을 역차별한다’는 지적을 받은 탓이다. 최근 사회의 화두인 페미니즘과 관련해 단연 상징적인 작품으로도 꼽히고 있다.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가 결정된 순간부터 논쟁은 가열됐고, 정유미와 공유라는 톱스타가 주연을 맡자 대중의 이목까지 집중됐다. 2018년 9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를 반대한다’는 청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정유미 “용기 생겼다” 공유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
개봉을 앞두고 10월 14일 열린 언론시사회 자리. 공유는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고 위로받길 바란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시나리오를 받아 읽으면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공유는 원작 소설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과 부정적인 논란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영화 출연을 결정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타이틀롤 김지영을 연기한 정유미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만들고 싶은 이야기였고, 그렇다면 잘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정유미. 사진=매니지먼트숲 제공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에 태어난 30대 초반의 여성 김지영이 주인공이다.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엄마로 살아가는 김지영의 삶을 통해 같은 세대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가 보낸 시간을 돌아본다. 당대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은 차별을 짚어보면서 고민을 나누는 영화다. 동시에 김지영을 둘러싼 남편(공유)과 형제, 친정과 시댁, 직장 동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고 살아가는 세상을 세밀하게 풀어낸다. 시사회 직후 ‘원작 그 이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 가운데 정유미와 공유의 섬세한 열정, 제작진의 세심한 호흡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도 뒤따랐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 별개로 정유미와 공유는 이번 영화를 통해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상황에도 직면해 있다. 일상에 뿌리박힌 성차별을 ‘김지영’이라는 평범한 인물로 그린 원작 소설은 일찌감치 ‘남성을 역차별한다’는 일부의 주장에 휘말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유미는 2018년 9월 출연을 확정하고 악성댓글 피해도 입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관객 평가를 앞둔 지금 정유미는 “과거와 다른 용기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그 분들의 의견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힌 정유미는 누구나 자라온 상황과 환경이 다르고, 그 경험에 빗대 김지영을 바라볼 수밖에 없기에 다양한 반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했다.
공유는 육아와 경력단절 등 스트레스로 어느 날부터 시어머니, 외할머니 등에 ‘빙의’하는 증상을 보이는 김지영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남편을 연기했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가족부터 떠올라 곧장 어머니께 전화해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물었다”는 그는 “어머니께서 어이없는 듯 어머니가 웃으시더니 ‘네 생각은 어떤지’ 되물어왔다”고 했다. 그 질문에 공유는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잘 자란 것 같다”고 답했고, 그제야 그의 어머니는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것 아니겠느냐”는 말을 내놨다고 한다.
공유. 사진=매니지먼트숲 제공
사실 공유가 ‘82년생 김지영’을 택한 건 의외를 넘어 ‘반전’에 가까운 결정이다. 어디까지나 이 영화는 주인공 김지영을 중심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인 만큼 남편 역의 공유는 상대적으로 보여줄 게 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앞서 1000만 흥행영화인 ‘부산행’과 ‘밀정’으로 연이어 성공을 거두고 드라마 ‘도깨비’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그가 숱한 제안을 거절하면서 2년의 공백을 보내고 택한 작품이 왜 ‘82년생 김지영’인지를 두고도 의구심도 컸다.
이에 대해 공유는 “김지영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건드렸다”고 돌이켰다. ‘스타’로 살아가고 있지만 “일상에서 나는 평범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게 그의 설명. 화려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직업을 떼어낸 일상에서는 남과 다르지 않은 평범하면서도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공유는 “‘82년생 김지영’도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며 “사람들과의 관계에 놓여 받는 상처, 그런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주변의 우려와 걱정을 접했지만 개의치 않고 곧바로 출연 제안에 응한 이유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영화 개봉을 계기로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논쟁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출연 배우를 향한 공격은 물론 원작 책이나 영화를 언급한 여성 연예인을 향한 혐오 섞인 공격 또한 활발하다. 공격 수위가 위험치를 넘나들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배우 서지혜가 자신의 SNS에 ‘82년생 김지영’ 책 표지와 함께 “책 펼치기 성공”이라고 글을 쓴 직후 일부 누리꾼이 몰려와 ‘페미니스트 흉내’ ‘페미 짓’이라며 공격을 퍼부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보다 못한 동료 연기자 김옥빈은 ‘자유롭게 읽을 자유, 누가 검열하는가’라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이런 공격이 꼭 여성 연예인에만 향한다는 사실이다. 서지혜에 앞서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은 2018년 팬미팅 도중 “요즘 읽은 책”으로 ‘82년 김지영’을 언급했다가 남성 팬들의 ‘탈덕’(팬 탈퇴) 선언에 직면했다. 소녀시대의 수영도 방송에서 책 이야기를 꺼낸 뒤 공격을 받았다. 반면 2017년 “시사하는 바가 남달라 인상 깊었다”고 언급한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김남준)을 향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여성에게만 집중된 ‘이중적 공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페미니즘에 대한 일부 남성의 반발심이 커진 가운데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다”며 “지금처럼 악의적인 혐오 공격이 반복되면 여성 연예인들이 페미니즘 키워드를 피해가거나 목소리를 주저하게 될 수도 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사회를 건전하지 않은 쪽으로 몰고 가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