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이 단독 입수, 공개하는 ‘위화도 국제 자유구 개발 계획’ 문건. 사진=이동섭 기자
위화도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익숙한 지명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조를 세우는 데 분수령이 됐던 ‘위화도 회군’ 주무대인 까닭이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압록강에 위치한 위화도는 면적 11.9㎢의 섬이다. 여의도 면적(2.9㎢) 대략 4배다. 북한 신의주 시내에서 5.3km, 중국 단둥 고속철도역에서 3.7km 거리다.
북한이 경제자유구역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압록강 유역의 두 섬, 황금평과 위화도. 사진=이동섭 기자
그로부터 다시 5년 후인 지난 2월 북한은 위화도 국제 자유구 개발 계획이란 문건을 통해 위화도 개발 사업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위화도에 관공서, 경마장-카지노-워터파크 등 엔터테인먼트 시설, 금융시설, 쇼핑몰-5성호텔-공원 등의 라이프 패키지 시설, 무역 물류 제조업 시설 등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 라스베이거스를 떠올리게 하는 마스터플랜이다. 문건에선 위화도를 가리켜 “동방의 두바이가 될 것”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문건은 중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첫 항목 ‘사업 추진 배경: 북·중 관계’를 통해서다. 내용은 이렇다. “2018년 3월 28일 베이징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로운 시대의 북·중 관계 발전을 합의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 과학기술 개발 및 혁신 관련 업적에 감탄했다.”
위화도 국제 자유구 구획도(위)와 전체 조감도(아래). 사진=이동섭 기자
‘사업 추진 배경: 한반도 정세’에선 남북관계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2032년 하계 올림픽을 공동 유치하기로 합의했다. 2월 14일 한국방송(KBS) 보도에 따르면 한국과 북한은 ‘2032 서울-평양 올림픽’ 유치전의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실무자가 3자 회담에 참석하면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지는 ‘사업 추진 배경: 북한 개혁개방’의 내용이다.
“국내외에서 들려오는 북한의 좋은 소식을 통해 북한의 불가역적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제사회의 대북 노선이 온건하게 바뀌면서 명백해진 것이 하나 있다. 북한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로 급선회하지 않을 것이며, ‘거대한 이웃(중국)’과 비슷한 국가 주도 모델을 따를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과 획기적인 회의(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를 마친 뒤 자신의 머릿속엔 다른 모델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바로 중국식 모델이다.”
위화도 국제 자유구 경마장, 워터파크, 공원 시설, 골프장 조감도. 사진=이동섭 기자
북한 경제 발전 구상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내용도 발견됐다. “평양, 그리고 북한은 원래의 ‘전쟁 노선’을 따를 것이며 국내 경제발전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베이징과 평양은 오랜 우정과 더불어 정치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북한 관련) 낙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은 미개척 시장을 탐사하고 있다. 이제 베이징은 (북한에서) 배당금을 수확할 준비가 됐다.”
대북 전문가들은 ‘전쟁 노선’에 주목했다. 한 전문가는 “전쟁 노선은 오래전부터 북한이 대남-대미 관계에 임하는 자세를 나타내는 단어다. 이 내용을 봤을 때 북한은 한국, 미국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적극 협력하겠다는 뉘앙스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듯 보인다”고 했다.
문건엔 북한의 위화도 개발 사업 추진 과정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문건에 따르면 2011년 12월 3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2006호 법령을 통과시켰다. 2006호 법령은 황금평-위화도 두 국경지대 섬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한 법안으로, 문건은 이 법안을 “두 섬을 개발하고, 대외경제 협력을 확대하려는 법적 근거를 확립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006호 법령 통과 이후 위화도 개발 사업 추진 과정은 이렇다. 2015년 2월 11일 북한 대외경제성은 산업권(황금평-위화도) 개발 허가를 받았다. 이 지역 개발을 담당하는 북한 법인 ‘조선진한개발회사’ 역시 이날 창설 승인을 받았다. 조선진한개발회사의 등록자본은 1억 6000만 달러(약 1890억 원)이며, 2016년 11월 1일엔 북한이 중국 기업 ‘한정궈신(汉正国信)’에 위화도 내 6.2㎢ 부지 사용을 허가했다. 2018년 5월 3일 ‘한정궈신’은 위화도 경제자유구역 투자 촉진 및 투자협력 프로젝트 관련 협약에 서명했다.
‘위화도 국제 자유구 개발 계획’ 문건에 포함된 위화도 개발 사업 관련 북한 정부의 공식 서류 스캔본. 사진=이동섭 기자
문건엔 북한 정부가 직접 발급한 것으로 보이는 서류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담보서, 개발사업권승인서, 기업창설승인서(조선진한개발회사), 토지이용증, 영업허가증, 중국 기업 ‘한정궈신’의 서명 문건, 투자 서류 등의 스캔본이다. 북한 당국발 공식 서류가 일반적인 계획 문서에 포함된 것은 이례적이다. 위화도 프로젝트 투자에 대한 신뢰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한 중국 현지 소식통은 “북한이 사업 관련 서류를 문건에 포함시킨 것이 눈에 띈다. 북한은 각종 공식 문서를 제시함으로써 사업이 절차에 맞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투자 관련 리스크를 줄이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건엔 리철석 북한 대외경제상과 강만발 위화도경제자유구 위원장(조선진한개발사업 대표)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도 게재됐다.
문건에 따르면 위화도 개발사업 콘셉트는 “살기 좋은 도시, 첨단기술 도시, 환경 도시, 동방의 두바이”다. 문건은 “위화도는 북한-중국 국경에 접한 독특한 위치적 장점, 교통의 이점, 우수한 정책의 장점, 개발 공간 및 잠재력을 갖췄다”면서 조감도를 선보였다.
위화도 카지노-엔터테인먼트 센터 조감도. 사진=이동섭 기자
조감도엔 위화도에 조성될 다양한 시설이 소개됐다. 미국 월스트리트를 연상케 하는 금융단지와 실리콘밸리를 닮은 듯한 과학기술원, 국제 건자재 교역지구, 골프장, 경마장, 요트장, 워터파크 등이다. 그중 압권은 ‘위화도 카지노-엔터테인먼트 센터’라고 이름 붙여진 건물이었다. 문건은 조감도와 함께 “세계적 수준의 엔터테인먼트 파크를 조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감도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북한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금도 꾸준히 위화도 개발 사업 관련 투자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중국어판으로 배포한 위화도 국제 자유구 개발 계획 문건은 현재 중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중국 투자자들은 한국 측 대북 전문가들을 통해 위화도 개발 사업 투자와 관련한 자문을 얻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북한 전문가인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중국인들로부터 돈을 벌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위화도의 지리적 요건을 살펴보면, 개성공단처럼 사람을 격리할 수 있다. 거기다 공단이나 시설을 만들어서 외부 출입을 막으면서 중국인들을 상대로 돈을 벌 수 있다. 위화도 핵심 시설이 카지노-오락시설일지, 공단일지는 잘 모르겠다. 투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위화도 프로젝트 공력 팍팍” 북한 경제 실세 리철석 진두지휘 위화도 프로젝트 문건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리철석 대외경제성 경제개발총국장이다. 리철석 총국장은 합영투자위원회 부위원장, 조선경제개발협회 부회장 경력이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경제통이다. 문건 26페이지 ‘지도 시찰’ 항목엔 리철석 총국장과 강만발 조선진한개발회사 대표(위화도자유구 위원장)가 함께 찍은 사진이 게재됐다. 두 사람은 2018년 5월 3일 중국 단둥 소재 위화도 투자사업 사무실에서 투자 유치 프로세스를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엔 리 총국장, 강 대표를 비롯해 중국 측 관계자로 보이는 인물 총 3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도 포함됐다. 한 북한 전문가는 “대외경제성 경제개발총국 총국장은 북한 경제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라면서 “북한 당국이 위화도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 공력을 쏟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위화도 개발을 담당하는 북한 법인 조선진한개발회사 강만발 대표가 2018년 5윌 직접 위화도 일대를 둘러보는 사진도 눈길을 끈다. 강 대표가 위화도 모처 언덕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동행한 두 사람이 함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담겼다. 문건은 이 사진을 “위화도자유구위원장 강만발이 2018년 5월 개인적으로 위화도를 방문했다”고 설명하면서 ‘지도 시찰’ 항목에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
위화도 프로젝트 자문가 “중국 투자자들 의심의 눈초리” 야심찬 구상과는 달리 북한의 투자 유치는 지금까지 큰 성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현지 투자자 측으로부터 관련 자문을 부탁받았다는 한국인 A 씨는 “중국 투자자들이 오히려 한국 쪽에 ‘위화도 프로젝트’ 투자 효용성 여부를 문의하고 있다”고 했다. A 씨는 “중국 투자자들이 북한 당국이 추진하는 사업에 자본을 투입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 투자자들 입장에선 과거 남북경협 차원으로 진행됐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여행이 북한 당국의 일방적인 통보로 폐쇄된 사례가 ‘북한 리스크’로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 씨는 “과거 중국 모 기업이 북한에 6억 위안(약 1001억 원)가량 자본을 투자했다가, 그 돈이 증발한 사례도 있다. 중국 투자자 입장에선 북한의 투자 제의에 의심부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A 씨는 “올 들어 북한이 위화도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에 물꼬를 트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위화도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중국 현지 분위기는 그리 녹록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