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오후 5시 즈음 갑자기 설리 사망설이 돌기 시작했다. 사실 확인이 급한 연예부 기자들은 서로 관련 정보를 교류하며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5시 4분에 연합뉴스에서 1보 기사가 나왔지만 ‘경찰, 연예인 설리 사망 신고 접수…확인 중’이라는 제목뿐인 기사였다. 아직 사망이 확인된 것은 아니고 경찰에 사망 신고가 접수됐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설리는 정말 사망한 것일까.
9월 3일 럭셔리 브랜드 포토월 참석 당시의 설리. 사진=박정훈 기자
숨 가쁘게 각 매체 연예부 기자들과 사회부 기자들이 사실 확인 취재에 들어간 가운데 갑자기 SNS를 통해 정체 불명의 보고서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5시 15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공문 보고서 형태로 비교적 구체적인 사안까지 적혀 있어 신빙성이 높아 보였다. 그렇지만 어디서 작성된 어떤 문건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터라 기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할 수는 없었다.
설리 사망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5시 30분 무렵에 쏟아져 나왔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취재진에 사망 사실을 확인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문건이 돌았다. 이번에는 보고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텍스트 형태가 아닌 이미지 파일이었다. 소위 ‘설리 사망보고서’ ‘설리 동향보고서’라 불리는 성남소방서 119구급대에서 작성한 보고서였다.
결국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10월 17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119구급대의 활동 동향 보고서의 외부 유출을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자체 조사 결과 동향 보고를 내부적으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지난 14일 오후 3시 20분쯤 한 직원에 의해 SNS로 유출돼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확산됐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설리 사망 사실이 알려질 즈음 SNS에선 두 개의 문건이 유출됐다. 우선 성남소방서 119구급대에서 작성한 동향 보고서가 아예 이미지 파일 형태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비슷한 내용이지만 텍스트 형태의 또 다른 보고서였다. 텍스트 형태의 보고서는 어디서 작성된 것이며 어떻게 유출된 것인지조차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10월 17일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요안 청문감사담당관이 내부문건 유출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요즘 들어 이처럼 경찰, 검찰이나 소방서, 심지어 국정원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보고서가 유출돼 SNS를 통해 확산되는 사례가 연예계에서 종종 포착되고 있다. 연예인의 사건 사고 관련 사안을 정리해 보고 목적으로 작성한 공문서 형태다. 그렇지만 텍스트 형태로 작성 기관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실제 공문서인 보고서일 수도 있고 누군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용의 신빙성 등을 놓고 볼 때 실제 보고용으로 작성된 공문서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설리 사망보고처럼 아예 정식 공문이 사진으로 촬영돼 이미지 파일로 유출된 사례도 과거에 있었다. 지난 2013년 불거진 손호영 전 여자친구 자살 사건 당시로 경찰 상황보고서가 외부로 유출된 것. 서울 강남경찰서가 서울지방경찰청에 보고하는 양식으로 ‘외부유출금지’라는 문구와 함께 사건의 발생 개요와 조치 사항, 그리고 사망자와 신고자 실명 등 인적사항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상황까지 불거졌다. 경찰 상황보고서가 유출된 뒤 사망한 손호영 전 여자친구라며 한 여성의 사진까지 SNS를 통해 확산된 것. 그렇지만 사진 속 여성은 손호영이나 전 여자친구와 무관한 여대생이었다. 결국 이 여성은 자신의 트위터에 “저 멀쩡히 살아 있어요. 제발 사진 유포 멈춰주세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결국 유출 경로가 밝혀졌다. 한 방송사 취재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경찰 상황보고서를 접했고 메모할 시간이 없어 이를 촬영한 것. 이후 해당 이미지를 같은 방송사 기자들과 주고받다가 실수로 지인에게 전송하면서 외부로 유출된 것이었다.
심지어 연예인의 진료기록이 유출되는 사례도 있었다.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고 여운계의 진료기록이 유출된 것. 진료기록은 유출 자체가 사생활 침해로 불법이다. 더욱 심한 경우도 있다. 과거 한 여자 연예인의 가슴 성형 전후 사진이 유출된 것. 가슴 성형수술의 전후를 비교하는 사진이라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반신 노출 사진이다. 여자 연예인 입장에서는 상반신 노출 사진이 유출된 것 자체도 큰 충격인데 성형수술 전후 사진인 터라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를 악용한 악성 루머가 등장할 수도 있다. 악성루머나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이들 입장에선 자신들이 생성한 허위 사실에 최대한 신빙성을 더하려 노력한다. 이런 까닭에 아예 신문기사 형태로 루머를 만들어 유포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진화해 경찰이나 소방서 등에서 작성한 내부 공문서 형태의 악성 루머가 유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