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검찰개혁안이 국민의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력형 비리는 거악으로, 민생 관련 범죄는 소소한 거리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돌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2018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검경 수사권 조정의 방안으로 마약수사청 설치를 언급했다. 현 윤석열 총장은 10월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저는 수사권을 조정해도 좋고 검찰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도 동의한다”며 “금융수사청, 마약수사청 등 다양한 수사기관을 많이 만들고, 검찰은 경찰 송치사건이나 전문 수사기관 종사자 비리를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올 상반기 마약수사청 설립과 관련, 법무부에 관련 법률안에 대한 건의안을 냈다. 하지만 진행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윤 총장 역시 외청 설립 찬성 의견을 재차 개진할 뿐 별다른 추진 사항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대검찰청과 법무부는 “진행 사항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며 서로 양측에게 문의하라는 답변만 내놨다.
검찰에 따르면 2018년 마약류 사범은 1만 2613명으로 2017년보다 10.7% 감소했지만 밀수사범은 521명으로 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마약류 압수량은 517.2kg으로 2017년 대비 99.8% 증가했다. 국내로 들어오는 마약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검거된 마약사범 수는 도리어 감소한 것. 여기엔 미검거된 마약사범도 많고, 우리나라가 최근 마약 경유국으로 활용되는 탓도 있다. 이렇다보니 마약범죄 수사 강화에 대한 여론의 요구가 거세다.
대검은 범죄수사의 전문성을 고려해 별도의 외청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약청의 모델은 미국의 마약단속국(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이다. 미국은 법무부 산하에 마약단속국을 두고 있다. 대검은 마약청에 수백 명 규모의 검찰 수사관을 두고 이를 주축으로 경찰과 함께 수사하는 청사진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청에는 1차 수사권만 있고 기소권은 두지 않는 방식이다.
경찰은 검찰이 주축이 되어 만든 마약청 등 수사외청 설립계획에 대해 반신반의한다. 검경이 마약을 수사하는 전담청을 설립하는 게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으로는 보인다. 하지만 검찰 수사관이 주축이 되는 걸 두고 검찰이 ‘내부 달래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별도의 수사외청을 두고 결국 직접 수사를 할 뒷문을 열어놓는 셈이라는 것.
또 미국 DEA를 본딴 대검의 마약청이 반쪽짜리라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의 마약 수사는 주 경찰이 수사를 전담하고 마약단속국이나 FBI(연방수사국)는 공조를 하는 방식이라는 것. 미국의 마약단속국은 중앙아시아, 남미 등 테러단체와 결부한 마약생산조직 소탕으로 유명하다. 단속국에는 무기를 사용하며 현장에 투입되는 특수부대원이 있어 말 그대로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는 식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검찰개혁 국면에 검사 몫 챙기기도 바쁘니 검찰 수사관들을 외청을 설립해 달래는 거 아니겠느냐”며 “기업인, 정치인 불러다 조사하던 검찰 수사관들에게 당장 범죄자 신병 확보하러 다니라고 하면 불만이 터져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그간 전국의 조직범죄와 마약범죄는 대검 강력부가 지휘해왔다. 하지만 강력부는 2018년 7월 폐지돼 반부패부에 흡수됐다. 조직·마약 범죄 수사에는 범죄첩보와 인지수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직접 수사와 인지 수사를 폐지하라는 검찰개혁안으로 인해 특수부가 아닌 강력부에 불똥이 튀었다.
강력부는 검찰 내부에서 입김이 세지 않다. 일례로 ‘특수통, 공안통’ 같은 수식어는 있지만 ‘강력통’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검찰 내 핵심 보직도 특수와 공안 출신 검사가 주로 맡아왔다. 그렇다보니 비특수부 검사들의 불만이 크다. 윤석열 총장 취임 이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 등 비특수부 검사의 줄사퇴가 이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검찰의 명분은 ‘거악’이다. 거악에 해당하는 기업총수, 정치인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수사에 검찰이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특수부의 직접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것. 김오수 법무부 차관 역시 올해 국정감사에서 여러 차례 ‘거악’에 대해 언급했다. 정작 민생에 직결된 조직폭력범죄, 마약범죄는 뒷전이다. 정부가 2018년 6월 발표한 ‘검경수사권조정 합의안’에는 특수사건에 대해 검사가 직접수사를 해야 한다며 그 범주로 △기업경제비리 △금융증권범죄 △선거범죄 △군사기밀 등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마약과 조직폭력배 등 민생 관련 강력범죄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 한 관계자는 “(서울소재 검찰청) 중앙무대에서 큰 사건 큰 인물만 맡으려 하고, 수사는 수사관에 맡기고 조서도 제대로 안 들춰보는 검사가 한둘이 아니다”며 “검찰개혁안이 국민의 뜻과 달리 역행하고 있다. 예외를 두지 말고 검찰은 직접 수사를 내려놓고 기소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