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9월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 사회 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는 조국 전 장관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조국 전 장관 사퇴(10월 14일) 직전 여권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다. 위기감을 넘어 공포감마저 감지됐다. 사퇴 발표 일주일 전쯤 실시한 더불어민주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중반으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취임 후 최저치다.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당 지지율 역시 자유한국당에 밀리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결과를 공개할 수 없었다. 소수만 공유했다. 의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고, 조국 장관 사퇴 여론이 빠르게 확산됐다”고 귀띔했다.
특히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 반발이 거셌다. 친문 핵심부의 ‘조국 구하기’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내년 총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이들은 청와대 정무수석실, 민정수석실 등을 통해 이런 우려들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를 보고받고, 조 전 장관 사퇴시기를 둘러싼 장고에 들어갔다고 한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여당에서조차 이런 기류가 퍼졌다면 조 장관을 더 이상 안고갈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셨다”면서 “자칫 청와대가 고립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전 장관 사퇴 발표 후 여권에선 인적 쇄신론이 제기됐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등 몇몇 인사 교체를 통해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친문 의원들은 “그런 식의 인사는 문 대통령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친문 진영에선 조 전 장관을 적극 활용해 정면 돌파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올해 초부터 끊임없이 회자되다가 장관 발탁으로 주춤했던 ‘조국 PK(부산·경남) 출마론’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나선 셈이다. 한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조 전 장관이 차기 주자 선호도 3위권으로 급상승했다. 이는 조 전 장관이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 상황을 종합했을 때 조 전 장관 일가 의혹은 대부분 무혐의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경우 조 전 장관은 더욱 주목받을 수 있다. 이미 혹독한 검증까지 끝내지 않았느냐. 어차피 우리는 집토끼만 보고 간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조 전 장관의 내년 총선 출마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친문 진영의 이러한 기류가 알려지자마자 거센 비판이 나왔다. 비문계 한 중진 의원은 “또 조국이냐. 조국 이름만 나와도 표 떨어진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친문 내에서조차 쓴소리가 나왔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야당 입장에선 우리가 조국 카드를 꺼내기만 기다릴 것이다. 그럼 총선은 조국 선거가 된다. 필패다. 특히 수도권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면서 “몇몇 친문 인사들이 조국 출마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들의 오판이다. 소수에 불과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정치권에선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었던 친문과 비문 간 갈등이 조 전 장관 사퇴를 계기로 분출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오히려 그 전선이 더욱 뚜렷해졌다는 평이다. 여와 야가 겨뤘던 조국 정국 1라운드가 끝나고 2라운드가 여권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권 주류이자 다수파인 친문 진영이 조 전 장관 문제를 두고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친문계가 조국 출마 카드를 고수할 경우 양측의 관계는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조 전 장관 사퇴를 계기로 차기와 관련된 논의도 고개를 들었다. 친문계가 차기 주자로 밀었던 조 전 장관의 낙마, 임기 중반을 넘긴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 친문에 대한 비문 진영 비토 분위기 확산 등과 맞물리면서다. 그 중심엔 이낙연 총리가 있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조 전 장관 거취 문제와 관련해 여러 번 직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총리는 조 전 장관 사퇴 발표 직전에도 문 대통령을 만났는데, 당시 조 전 장관에 대한 세간의 비판 여론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국 전 장관이 9월 17일 취임 인사차 국회를 찾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예방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낙연 총리는 명실상부 여권의 유력 잠룡이다. 올 들어 실시한 차기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여권 후보로는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총리는 친문 직계가 아니다. 조 전 장관을 ‘포스트 문재인’으로 키우려던 친문계 움직임을 두고 이 총리 견제용이란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둘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 총리와 조 전 장관은 시소게임에 올라탄 형국이었다. 이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조 전 장관 사퇴를 요청한 것을 두고 친문계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나왔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이 총리 측과 가까운 한 여권 인사는 “조 전 장관은 이 총리에게 딜레마였다. 이 총리가 다음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선 어찌됐건 현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따라서 조국 사태는 이 총리에겐 마이너스였다. 그런데 반대로 조 전 장관이 무사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서 검찰개혁을 성공했다고 치자. 그럼 차기 구도에서 조 전 장관에게 주도권을 내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 총리는 조국 정국을 거치면서 친문과의 간극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전 장관 사퇴 직후 이 총리 사의설이 불거진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낙연 역할론’과 맞물려 있어서다. 이 총리가 당으로 복귀해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한다는 게 그 골자다. 조국 정국으로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한 소방수로 이 총리가 지목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지만 앞서의 여권 인사는 “이제 정부에서 할 일은 다했다는 게 이 총리 생각인 것 같다”면서 “이젠 정치인 이낙연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총리 이름과 함께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거론된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조국 정국 막판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되자 문 대통령에게 조 전 장관 사퇴를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총리와 비슷한 스탠스를 취했던 것인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여권 지형 변화를 점친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이 대표는 친문과 그리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당 대표 선거 때도 친문은 이 대표가 아닌 김진표 의원을 밀었다. 조 전 장관 사퇴 후 친문 의원들이 “조국을 지키지 못한 이 대표는 사퇴하라”고 한 것 역시 양측의 앙금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낙연-이해찬’ 조합이 주목받는 이유는 친문 진영 독주를 막고, 새로운 차기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 때문이다. 이 대표는 여권 ‘킹메이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 총리는 유력 잠룡이다. 공교롭게도 둘은 친문과 거리감이 있다. 이 대표가 이 총리와 함께 총선을 진두지휘하고, 향후 대선에서 이 총리를 대선 후보로 민다는 시나리오는 이런 배경에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이 총리와 이 대표 측 모두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