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작업이 후반부에 들어선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느긋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 체결식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왼쪽)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이라는 꽃놀이패를 쥐어준 셈이다. 시작부터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를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상황이었다. 본계약 체결 전에는 대우조선이라는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 산업은행이 마음이 급했다. 인수 때부터 산업은행에 떠밀려 좋은 조건으로 대우조선을 가져가게 된 현대중공업이 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 같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보다 인수 주체인 현대중공업이 느긋한 모습을 보이는 까닭을 이같이 설명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M&A(인수·합병)가 불발될 경우 매각 시작 때부터 나온 헐값·밀실 매각 논란과 불발 시 구조조정 실패 책임까지 모두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매각의 첫 단추가 밀실협약 등의 논란으로 시작돼 산업은행이 부담을 갖겠지만, 이제는 번복하거나 되돌릴 수 없다. 본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사실상 산업은행의 손을 떠난 셈”이라며 “현재 인수 과정에서 불거지는 우려나 문제에 대해서는 현대중공업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은 지난 14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업결합심사에 대한 우려와 하도급 업체 갑질 문제 등 대우조선 매각 작업과 관련해 질타를 받았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인수합병을 승인받는 주체는 현대중공업”이라면서도 합병을 반대하는 노조에 대해 직접 작심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 노조 쪽에서 한국의 조선산업 부흥을 위한 이 조치(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합병)에 맹목적 반대를 안 해줬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반면 가삼현 현대중공업 사장은 지난 9월 24일 열린 ‘조선해양의 날’ 행사에서 인수 작업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가 사장은 노조 반발에 따른 우려에 대해 “노조를 설득해 나갈 것”이라며 “M&A 취지나 방향에 공감하는 직원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비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내외 기업결합심사 통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해외 경쟁당국에서 특별히 부정적인 반응은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 사장의 설명과 달리 노조의 반발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노조 반발이 해외 경쟁당국 기업결합 승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렵다. ‘재벌특혜 대우조선 매각저지 전국대책위원회’는 이달 초 EU(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찾아 대우조선 매각의 부당함을 알리는 기업결합심사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경쟁자를 없앰으로써 현대중공업 총수 일가의 이익은 늘어나는 반면, 서로 경쟁하는 두 회사를 합병하게 되면 대규모 구조조정, 역량 축소 등이 불가피해진다는 주장이다. 대우조선 노조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관계자는 “대표단은 대규모 구조조정 문제를 비롯해 합병의 포괄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공정한 심의를 강구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자 이성근 대우조선 사장은 지난 17일 사내 소식지를 통해 노조에 협조를 호소했다. 이 사장은 이날 배포된 사내 소식지 ‘해오름터’ 인터뷰에서 “최근 초대형 LNG선 입찰 프로젝트에서 선주가 ‘향후 노조가 기업결합 이슈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공정이나 납기가 지켜지겠느냐’며 우려를 표시했고, 결국 우리는 수주하지 못했다”며 “우리 고객들은 안정적이며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균열되는 것을 가장 불안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M&A에 대해서 처음으로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기업결합이 완료되면 1조 5000억 원의 신규자금을 확보해 경영이나 재무적 측면에서 안정적인 구조로 가고, 회사 가치를 성장시킬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노조의 반발에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대우조선 노조의 반발에 대해서는 언급할 내용이 없다. 기업결합 승인도 나지 않은 상황이라 다른 회사의 이야기”라며 “현대중공업 노조와는 임단협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기업결합의 경우 심사기관에서 판단하는 일인 만큼 관련해 언급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노조 발발의 산을 넘어서더라도 남은 과제는 또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하청업체 갑질 문제다. 공정위는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대우조선에 10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현대중공업에 대해서는 직권조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 갑질 관련 건은 조사가 마무리되고 안건이 올라가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심의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갑질 피해 하청업체들은 본계약 체결 때부터 “갑질 문제 해결 없이 인수·합병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합병 시 서로 책임 주체가 불명확해져 피해보상이 아예 유야무야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을 인수하며 하청업체 갑질 등에 따른 우발채무를 본인들이 담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지난 7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함께 공정위에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심사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기업결합 허용을 반대하며 이 같은 사실을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의견서를 통해 “기업결합으로 인해 조선 기자재·하청회사 및 그 노동자들의 해당 회사에 대한 종속은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지금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하도급법 위반 불공정거래행위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공정위가 기업결합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그간 한국조선해양 및 그 자회사들의 하도급법 위반 행위에 대한 공정위 제재처분 건에 대해 피해 회사에 충분한 배상을 하고, 하도급거래를 원상회복하는 등의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범석 대우조선 하청업체 갑질피해대책위원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하청업체들의 갑질 피해 문제가 지적됐고, 산업은행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하겠다고 답변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포인트는 찾지 못하고 협의단계에 있지만, 매각에 문제가 생길까 산업은행이 과거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같다”며 “현대중공업은 이와 관련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매각이 마무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주주로 있는 산업은행이 중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