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홍사 반도건설 회장. 중견기업 반도건설이 계열사를 통해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5% 이상 확보하면서 업계 안팎에서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반도건설 계열사인 ㈜대호개발은 지난 1일 기준으로 역시 반도건설 계열사인 ㈜한영개발, ㈜반도개발과 함께 한진칼 주식 지분 5.06%(299만 5000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지난 8일 공시했다. 대호개발과 한영개발, 반도개발의 취득 지분은 각각 2.46%와 1.75%, 0.85%다. 3곳은 기존 한진칼 지분 4.99%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한영개발이 주당 2만 7481원에 4만 주를 장내 매수해 지분율을 5% 이상 높이면서 보유 내역을 공개했다. 이번 지분 매입으로 반도건설이 4대 주주로 등극하면서 한진칼 주요 주주 구성도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특수관계자(28.93%), KCGI(15.98%), 델타항공(10%), 반도건설, 4개 집단으로 재편됐다. 반도건설은 단순투자일 뿐 경영 참여 목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에서는 KCGI와 한진칼 사이에서 반도건설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경영권에 참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반도건설이 KCGI와 손잡을 경우 합친 지분율은 21.04%로, 최대주주인 고 조양호 회장 지분(17.84%)보다 많아진다. 물론 이 경우에도 고 조 회장을 포함한 한진그룹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여전히 더 많지만, 조 전 회장의 지분을 상속하려면 내야 하는 세금이 26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만큼 부담이 크다. 뿐만 아니라 반도건설이 지분을 추가 매입하거나 KCGI가 반도건설처럼 다양한 기업들을 백기사로 동원할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이 쏟아졌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반도건설이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을 10%까지 늘리면서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끝났다는 것. 델타항공 지분을 합하면 조 회장 일가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확보한 지분은 38.93%로, 반도건설과 KCGI 지분을 합해도 그 격차가 크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델타가 우호지분인 것을 감안하면 KCGI와 반도그룹이 손을 잡는다고 해도 경영권에 큰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며 ”감사선임의 경우도 ‘3% 룰’로 묶이기에 반도건설의 매입이 지분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감사 및 감사위원 선임은 3%룰이 적용돼 모든 주주는 지분 보유량과 상관없이 의결권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투자목적일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델타 등장 이후 경영권 분쟁 이슈가 꺼지면서 한진칼 주가가 낮아진 지금 지분을 늘린 뒤 주가가 반등하는 시기를 노려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는 “주가가 저점일 때 사들였다가 시기를 보면서 차익을 노리려는 이익 실현이 목적이지 않겠느냐”며 “델타가 지분을 넣었을 때 손해를 볼 순 없으니 고배당을 요구했을 것이고, 한진그룹 일가도 갖고 있는 지분으로 배당금을 받아 상속세를 내야 하는 만큼 한진칼 배당금을 크게 책정할 것이란 점도 고려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주택건설시장이 침체기란 점도 ‘투자목적’의 배경이 된다. 이광수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금리 인하로 실물자산인 부동산에 자금이 쏠려 집값은 뛰지만 주택건설시장은 상황이 나쁘다”며 “지역사업 위주 중소형 건설사들은 경기 위축과 공급 과잉으로 신규 아파트 사업이 침체돼 있고, 수도권도 대출규제와 분양가 상한제로 사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도건설은 부산·경남 기반의 중견건설사다. 반도건설을 포함해 주택·건설 계열사들을 보유한 반도그룹 지주사 반도홀딩스는 2015년 연결기준 매출 1조 2038억 원, 2016년 2조 571억 원, 2017년 2조 6992억 원으로 줄곧 올랐지만, 2018년 매출은 전년 대비 23.7% 급감한 2조 585억 원에 그쳤다. 반도건설이 새 투자처를 찾아 한진칼 주가를 사들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델타항공 등장 이후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된 가운데 중견기업 반도건설이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면서 업계 안팎으로 다양한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진칼 주가가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투자목적이라고만 보기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한다. 금융투자업계 다른 관계자는 “정말 투자가 목적이라면 대우건설 등 매각을 앞둔 기업을 사들여 본업에 집중하거나 다른 사업에 진출해야지 이슈가 다 꺼진 한진칼 주식을 매입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KCGI 우호지분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KCGI는 한진칼 주가 하락으로 손실이 가시화된 만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새 투자자들을 모집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다른 기업들에 눈을 돌려 도움을 요청했고, 반도건설이 받아들였다는 분석이다. 앞의 관계자는 “강성부 대표는 중견건설사들의 경영 승계 과정에 개입해 상속세 문제 등을 해결한 경험이 있기에 그쪽 업계 친분을 이용해 도움을 청했을 수 있다”고 했다.
반도그룹에서 경영권 승계가 진행 중이라는 점은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는다. 반도그룹 지주사 반도홀딩스는 주력 계열사 반도건설과 반도종합건설 지분을 100%씩 보유했고, 반도건설과 반도종합건설은 한영개발과 대호개발을 포함한 여러 주택·건설업 법인들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반도홀딩스 지분은 권홍사 회장이 69.61%, 장남 권재현 반도개발 상무가 30.06%를 갖고 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권 상무가 권 회장의 반도홀딩스 지분 69.61%를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KCGI가 승계를 돕는 조건으로 반도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매입해 KCGI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강성부 KCGI 대표는 LK투자파트너스 대표 시절 상속증여세 부담이 너무 커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분을 사들여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는 등 경영권 승계를 돕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 수익을 창출한 바 있다. 2015년 상속세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요진건설산업 2대 주주 지분 45%를 확보해 2대 주주에 오른 뒤, 2017년 지분을 1대 주주에게 되팔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완성하고 1000억 원 이상 차익을 얻은 것이 그 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