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은 당사자들을 끝도 없이 좀먹어 들어간다. 얼마 전 20대 중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연예인 여성은 연예인으로 살아온 시간 내내 칭찬보다는 욕을 더 많이 들어야 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이유에 그가 그만한 비난을 받아야만 할 뚜렷한 이유가 있었는가 하면, 정말 딱히 없다. 놀랍게도 많은 이들에게 그는 여성으로 태어난 일부터 그저 살면서 내보이는 말과 행동 자체가 죄다 그냥 ‘논란’으로 치부되었다.
#웹툰 악플, 연예인 악플만큼이나 지독하게 다가오는 까닭
악플에 연예인만큼이나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웹툰 시대의 만화 창작자들이다.
웹툰은 그 태생부터가 작가를 향한 빠른 피드백(직접적 의견 전달)을 주 특징으로 삼은 만화의 한 형식이다. 책으로 만화를 보던 시기의 피드백이란 출판사로 온 잡지 애독자 엽서 또는 편지를 편집 기자가 추리고 걸러 만화 창작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인터넷의 가정 보급과 함께 웹브라우저를 지면 삼아 등장한 웹툰은 개인 홈페이지나 카페를 통한 직접 연재 방식으로 시작되었던 초창기부터 이미 작가와 독자가 중간 과정 없이 직접 실시간으로 만나는 형태로 노출되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웹툰을 자사 서비스에 이용자를 유입시키기 위한 공짜 미끼로서 채용하면서부터 회차별 덧글(=댓글, Reply)을 적극 채용했다. 독자를 작품 페이지에 묶어둠으로써 전송량 기반 광고 수입을 높이려는 방편이었는데, 그 결과 대규모로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개 창구가 열렸다. 하지만 이 창구는 오래지 않아 악플의 온상으로 전락한다.
근래 들어서야 포털 바깥에서 웹툰의 유료화가 일부 일정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2010년대 이전에 웹툰이란 포털에서 제공하는 무료 웹툰을 뜻하는 표현 그 자체였다. 그리고 회차별 덧글을 열심히 달던 이들은 곧 본인들이 작품을 봐 줌으로써 포털 전송량을 벌어다 주고 곧 작가를 먹여 살려주는 일을 해 주었다는 일종의 주인 인식을 강하게 지니게 된다. 사실 창작물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작가만의 것이 아니지만, 문제는 웹툰의 독자 중 상당수가 작품을 두고 자신을 작가 머리 위에 두기 시작했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웹툰 덧글 태반은 작품의 방향에 관한 추측을 넘어 작가에게 방향을 지시한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전개에 관한 분노와 조롱으로 점철되고 있다. 여기에 정량화할 수 없는 ‘작화력’을 둔 시비나 작가에 관한 유언비어 유포, 갱신 예정일 0시에 정확하게 올라오지 않으면 곧바로 튀어나오는 태업 논란 등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작가의 성별이 여성으로 알려져 있는 경우 외모 폄하, 성희롱은 물론 페미니즘 동의 여부로 괴롭힘의 정도를 더하는 사례도 매우 빈번하다.
비단 웹툰 연재란 아래의 덧글만의 문제도 아니다. 작가의 개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도 악플 폭탄을 수시로 얻어맞기는 매일반이고, 논란을 작정하고 일으키는 이들은 작가들의 반응을 게시판 커뮤니티 등으로 확산시키고 위키 등지에 ‘박제’함으로써 작가를 ‘사적으로 처벌’한다.
웹툰의 악플은 언론 보도라는 과정을 한 차례 거치는 뉴스 덧글과는 달리 불특정 다수 대중이 본인의 악의를 작가 개인의 눈앞에 직접 들이민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연예인들도 개인 SNS 등을 통해 악플을 얻어맞기는 마찬가지니 어느 쪽이 더 힘들다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체 시장 규모를 다 합쳐도 방탄소년단 하나의 부가가치 유발효과 추정치인 1조여 원보다 적은 만화 업계에서 작가들은 살인적인 연재 일정과 분량을 높지 않은 고료로 소화하는 와중에 막상 악플에는 그나마의 방어 장치 하나 제공받지 못한 채로 개인 그 자체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 악플로 말미암은 피해로 보자면 정말 연예인 못지않은 상황에 내몰려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만화가들 사이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이들이 많다는 건 이젠 비밀조차 아니다.
#만화 창작자들에게 덧글 거부권을 허하라
웹툰은 무료와 피드백을 강점으로 내세운 시점부터 첫 단추를 상당히 잘못 끼운 채로 20여 년(상업지면 성립은 16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이 시도됐고 유료 웹툰 정착을 비롯해 상당한 긍정적 결과를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가장 큰 웹툰 매체는 네이버와 다음 양대 포털이며 웹툰의 대표 주자 또한 여전히 포털의 무료 웹툰이다. 무료 웹툰의 수익 창출법에 덧글이 있는 이상 포털들이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은 웹툰 악플 문제를 1차원적으로나마 해결하기 쉽지 않다.
웹툰의 악플은 자기 악의를 작가에게 직접 전달한다는 점에서 작가 개인이 응당 견뎌내야 할 대상의 범주를 까마득하게 넘어간다. 포털 업체에 덧글 자체를 완전히 없애거나 서비스 주체로서 덧글을 전면 관리하고 작가를 향한 음해 등에 선제 대응을 하길 기대하기란 어렵다. 다만 그럼에도 포털 웹툰의 서비스 권리자들에게 이것 하나만은 가능하지 않은가 묻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 만화 창작자에게 본인 작품 하단의 덧글 허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거부권을 주는 일이다.
악의를 품은 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해코지를 안 할까만, 최소한 작가가 본인 눈앞에서 그 악의를 흔드는 일까지 감내하기 싫다면 바로 앞에서 안 볼 권리만은 보장해줘야 하지 않는가. 서비스 업체는 최소한 지금쯤은 창작자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당신에겐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