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김나리가 재학 중인 여강고등학교에서 점심시간을 틈타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이종현 기자
#대학, 실업, 국가대표선수 제치고 우승 차지한 고교생
김나리는 대학, 실업팀 소속 언니들을 줄줄이 꺾고 우승 단상에 올랐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어떻게 경기를 치렀는지도 잘 모르겠다. 대회 시작할 때만 해도 ‘8강에만 가보자’는 마음이었다”면서 “축하 인사를 정말 많이 받았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도 크다”고 말했다.
그에겐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정몽구배 양궁대회는 올해 2회째지만 김나리는 작년까지 중학생 신분이었기에 대회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본선이 열리는 무대(부산 KNN 센텀 광장에 특설경기장이 설치됨)를 보자마자 설렜다. 그렇게 도시 한가운데에 경기장에 설치된 것을 처음 봤다. 모든 게 재미있었다. 노래도 나오고 전광판도 두 개씩이나 있고, 폭죽도 팡팡 터지고… 경기장이 예뻐서 사진도 잘 나오는 것 같았다”며 대회를 떠올렸다.
김나리는 현대자동차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 2019에서 고교생 신분으로 정상에 서며 이목을 끌었다. 사진=대한양궁협회
“중요한 순간 긴장을 하면 심장이 쿵쾅거리지 않나. 그러면 활을 쏘는 데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평소 훈련할 때 운동장을 달린 후에 활을 쏘곤 한다. 운동장을 달리면 긴장했을 때처럼 심장이 뛰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으로 연습을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웃음).”
우승 상금이 1억 원(국내 양궁대회 최고 상금)인 큰 대회였기에 ‘고교생의 반란’은 더욱 주목받았다. 김나리는 “특히 학교 친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우승이라는 말보다 다들 ‘1억’을 외치기에 바빴다”며 웃었다.
상금 1억 원은 2003년생, 만 16세 고등학교 1학년생에겐 실감이 나지 않는 큰 금액이다. 대회 현장에선 상금 사용처에 대해 “부모님과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후 어떻게 했을까. 김나리는 “어떤 기분인지 표현하기 어렵다”면서 나름의 ‘지출 계획’을 밝혔다. “마침 휴대폰이 망가진 상태였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아이폰11 프로를 사고 싶다(웃음). 그리고 덧니가 있어서 교정을 할 계획이었는데 상금을 이용해서 할 생각이다. 나머지 금액은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꽃가게 리모델링에 보탤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우승에 대해 “운이 많이 따랐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 나선 선수들은 변덕스런 날씨에 애를 먹었다. 대회 예선전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며 국가대표급 실력자들이 대거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8강부터 결승이 열린 대회 마지막 날은 맑은 날씨였지만 빌딩 숲 사이 설치된 경기장 위치 탓에 바람이 심했다.
“사실 나는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를 맞으면서 활을 쏘고 타깃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 재미있다. 물론 대회가 끝나면 장비에 묻은 비를 다 닦아내는 것이 귀찮기는 하지만(웃음). 결선이 열렸던 날 바람은 정말 어려운 환경이었다. 감으로 쏠 수밖에 없었다. 운이 많이 따라줬다. 사실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한발을 쏠 때는 작은 실수도 있었다. 활시위를 놓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화살이 가운데로 잘 들어갔다. 감사하면서 살아가야겠다(웃음).”
김나리는 “고모가 이번 대회 끝나고도 연락을 해서 축하 인사와 함께 자만하지 말고 열심히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고 말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김나리는 이번 대회 우승에 더해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2관왕에 올랐던 김경욱 씨의 조카임이 밝혀지며 더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운동을 시작할 때 고모가 김경욱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아서 아는 사람이 많이 없었는데 이번 대회로 이제는 양궁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며 웃었다.
2003년생인 김나리는 1996년 2관왕에 오른 고모의 선수 시절 활약을 직접 지켜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고모의 영향을 받아 양궁선수의 길에 들어선 것은 분명했다. 올림픽 양궁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는 고모를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어른들께 얘기를 들어서 아는 정도였다. 양궁에 관심도 크게 없었다. 그런데 2012 런던 올림픽 때 고모가 TV 해설을 하셔서 진지하게 양궁 경기를 지켜봤다. 선수들이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가 끝나고 돌아온 고모가 운동을 권유하기도 하셔서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서 영상을 찾아봤고 고모가 올림픽에서 타깃 정가운데 렌즈를 깨는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양궁계 영향력 있는 인물 되고 싶어 영어공부에 집중!”
김나리는 인터뷰 내내 생기발랄한 모습을 보이고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선수로서 국내에서 가장 큰 대회에서 우승을 했지만 이야기를 할 때는 영락없는 16세 청소년이었다. 수업 결손을 막으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인터뷰가 이어졌지만 “좀 길게 하셔도 된다”며 수업에 조금이라도 빠지고픈 바람을 드러대는 데서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이 묻어 나왔다.
다만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달라진 점이 많아졌다. 김나리는 “전엔 TV 보는 것도 되게 좋아하고 유튜브도 열심히 봤는데 요즘은 잘 안 보게 된다”며 “고등학생이 되니까 약간 부담이 있다. 졸업 직후 실업팀 입단보다 대학 진학을 계획하고 있어서 진학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중학교 시절에 비해 훈련 분위기도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교실서 얼굴을 보기 힘들던 과거의 ‘학교 운동부’와 달리 매일 교복을 입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그의 성적은 어떨까. 그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성적은 좋지 않다”면서 “오후엔 운동을 하니까 성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영어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영어공부에 열중하는 이유는 진로 때문이다. 그는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양궁선수로서 오랜 기간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올림픽 메달이라는 개인적인 목표를 이루면 선수생활은 그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의 행보로 ‘행정가’를 언급했다.
“우리나라가 양궁 강국이지만 세계무대에서 행정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잘 준비해서 은퇴 이후에는 세계양궁협회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같은 곳에서 위원으로 활동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양궁도 수영처럼 거리나 종목에 따라 올림픽에서 많은 부문을 세분화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안타깝게 느껴진다. 가능하다면 조금 바꿔보고 싶다. 좋은 선수로, 이후엔 행정가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대한민국 양궁은 세계 각지에 국내 지도자들이 진출해 기술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김나리는 솔직한 생각을 이어갔다. “물론 훌륭한 일이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한국 지도자 동창회’ 같은 느낌이라고 하더라”며 “하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다. 지도자분들이 해외에서 너무 잘하셔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선수들의 격차가 줄었다. 나로선 우리나라만 잘했으면 좋겠다(웃음)”고 말했다.
김나리는 “강당에서 열리는 전체 조회에서 교장선생님께 이 트로피를 받으면 집에 가져갈 수 있게 된다”는 말과 함께 쑥스러워하며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사진=이종현 기자
김나리는 헤어나 메이크업 등 미용 관련 일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은 학생이라 단정한 모습으로 지내려고 하지만 그 쪽에 관심이 많다. 선수생활 이후에 그런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서 “부모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 양궁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다.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 좋게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꿈을 꾸고 있는 김나리는 선수생활의 목표도 명확히 말했다. 그는 “과거 목표였던 청소년 국가대표는 이뤘다.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 전에 성인 국가대표가 돼서 진천선수촌에 들어가는 것이 새로운 목표다. 성인 대표로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도 따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포인트를 못 쌓아서 내년 대회(2020 도쿄 올림픽)에는 못나간다(웃음). 5년 뒤를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