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아무개 씨(57)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도 A 명상수련원. 이웃 주민들조차 그곳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았다. 어느 날은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었고, 어느 날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고 한다. 현재 A 명상수련원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김 씨의 시신은 이곳에 한 달 이상 방치되어 있었다. A 명상수련원의 홍 아무개 원장(58)은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사망한 것이 아니라 깊은 명상에 빠진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한 것이 아니었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 도대체 A 명상수련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0월 15일 제주도 제주시의 A 명상수련원에서 57세 김 아무개 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발견 당시 시신은 매우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사진=최희주기자
10월 15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A 명상수련원에서 김 아무개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전라남도에 거주했던 김 씨는 8월 31일 제주시에 위치한 A 명상수련원을 찾았다. 김 씨의 전남 지인에 따르면 그는 “기치료를 하겠다”며 제주도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대로라면 9월 1일 돌아와야 했으나 김 씨는 한 달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김 씨의 아내가 직접 제주도를 찾아가기도 했으나 홍 원장과 관계자들은 아내의 면회를 거절했다.
결국 김 씨의 아내는 10월 15일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수련실 모기장 안에서 이불을 덮은 채 뉘어진 김 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부검 결과 김 씨의 사망 시점은 한 달 보름 전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한 셈이다. 경찰은 홍 원장을 사체은닉 및 유기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경찰조사에서 “김 씨가 수련 도중 쓰러졌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일반 회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 씨는 명상이나 자기 수련을 하다 쓰러진 것이 아니라 타인의 수련을 지도하던 도중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A 명상수련원 전남 진도지부 소속 한 회원은 “김 씨가 1차 수련을 끝내고 초보 수련자를 대상으로 일대일 지도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체제로 운영되는 A 명상수련원은 제주도 본부를 중심으로 진도와 서울에 각각 지부를 갖고 있는데 김 씨는 이 협동조합의 구성원이자 진도 지부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김 씨가 수련자들을 직접 지도하곤 했었다.
김 씨의 사망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복수의 입소자들은 “일부 수련법이 신체에 무리를 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수련 도중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왕왕 있었던 까닭이다. A 명상수련원은 기체조를 비롯해 각종 명상을 수련하는 곳으로 일부 회원들은 이곳에 장기 투숙하며 수련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A 명상수련원에 다녔던 한 입소자는 22일 일요신문과 만나 “나는 저녁 수업에만 참석해 침 시술이나 약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면서도 “저녁에 수련원을 가면 기체조와 호흡명상, 소리명상 등을 하곤 했는데 수련 도중 정신이 혼미한 증세를 보이거나 의식을 잃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그러면 원장이 ‘의식을 잃을 정도로 하면 안 된다’고 말렸다. 그때는 일종의 명현 현상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명현 현상이란 장기간에 걸쳐 나빠진 건강이 호전되면서 보이는 몸의 이상증세를 말한다.
이상증세는 사망한 김 씨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과거 김 씨를 진찰했던 한 의사는 “김 씨가 3년 전부터 매우 열심히 수련을 했는데 한번은 ‘오른쪽 눈이 튀어 나왔다’며 다녀간 적이 있었다. 김 씨에게 수련을 하다 이상 현상이 일어나면 기의 힘만으로는 고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써보라고 권했었는데 이렇게 황망하게 떠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주도에서 무리한 수련으로 과로해 심근경색이 온 것이 아닌가 싶다”는 말을 조심히 덧붙였다. 실제로 김 씨의 시신 부검에서 심장질환이 있다는 소견이 나온 바 있다. 경찰은 심장질환과 사망에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김 씨의 심장조직 검사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낸 상태다.
복수의 기공명상전문가들도 A 명상수련원에서 다소 무리한 수련을 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A 명상수련원이 소개한 명상법 가운데에는 숨을 참을 수 있는 한도까지 참았다가 단번에 내뱉거나, 콧소리를 내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숨을 뱉는 등 건강에 이상을 줄 수 있는 호흡법이 있다는 지적이다.
허병선 치유명상 전문가는 “과도하게 숨을 참는 호흡법은 폐에 무리를 줄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이러한 호흡명상은 높은 수준의 일부 수행자들이 하는 것으로 애써 수련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명상원 원장은 “정통적인 방법의 수련은 아닌 것으로 보여 걱정이 됐다”고도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홍 원장을 비롯한 일부 관계자들은 매일 김 씨의 시신을 에탄올로 닦고 흑설탕물을 먹이는 등 상식 밖의 대처를 했다. 10월 15일 경찰이 김 씨를 찾아왔을 때에는 “김 씨는 명상 중”이라며 출입을 막기도 했다. 홍 원장은 여전히 “김 씨는 깊은 명상에 빠져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홍 원장이 실제로 김 씨가 명상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허병선 전문가는 “장시간 명상에 빠지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짜 명상에 빠진 수행자의 몸은 굳지 않는다. 누워서 명상을 하지도 않으며 영양소를 섭취할 필요도 없다. 시신을 에탄올로 닦고 설탕물을 먹였다면 홍 원장도 김 씨가 명상 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은 “아마도 무리한 형태의 수련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사망하게 됐고 이것을 감추려는 과정에서 에탄올과 설탕이 등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부패 냄새를 막겠다며 에탄올을 사용하는 바람에 시신이 훼손됐다. 설탕은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없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배상훈 전 분석관은 또 “사망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산소가 없는 가사상태에 들었다가 풀려나는 행위를 반복하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이 상태에서 무리한 행위를 하면 심근경색이 올 수 있다. 김 씨의 위치가 지도자였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할지라도 암묵적 강요에 의해 시범을 보이다 사고가 났다면 타살로 볼 수도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제주=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