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2연속 끝내기 경기가 나온 2019 한국시리즈가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는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선착했고, 정규시즌 3위 키움이 준플레이오프(준PO)와 플레이오프(PO)에서 각각 LG와 SK를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두 팀의 사상 첫 대결에 KBO리그의 가을도 뜨겁게 달아 올랐다. 그동안 매년 가을을 장식한 수많은 한국시리즈에서 어느 구단이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을까. 그리고 어떤 시리즈가 남다른 기억과 아쉬움을 안겼을까. 다양한 사례를 돌아봤다.
#정규시즌 2위 후 우승한 팀은?
정규시즌 1위는 그 해 가장 전력이 강한 팀이 차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당연히 한국시리즈에 선착한 팀이 그대로 통합 우승을 차지한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기와 후기 리그 구분 없이 단일 리그제가 도입된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28회의 한국시리즈 가운데 무려 23차례나 정규시즌 1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반지까지 손에 넣었다. 무려 82%의 확률이다.
하지만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듯 남은 18%의 확률을 통과한 팀들이 있다. 1989년의 해태와 2018년의 SK는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친 뒤 한국시리즈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한 팀들이다. 1989년에는 빙그레가 단일 리그 도입 이래 최초로 1위를 차지해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PO를 거치고 올라 온 2위 해태에 1승 4패로 졌다. 해태가 최초로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우승과 5번째 우승을 달성한 해였다.
지난해엔 2위 SK가 PO에서 넥센(현 키움)과 치열한 5차전 연장 승부를 펼친 끝에 한국시리즈에 올라갔고, 폭발하는 홈런포를 앞세워 1위 두산마저 4승 2패로 무너뜨렸다. 이로 인해 SK 선수들은 “포스트시즌에 두산을 만나면 지지 않는다”는 징크스를 공고히 했고, 트레이 힐만 전 SK 감독은 KBO 사상 최초의 외국인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으로 기록됐다. 반면 SK에 무려 14.5경기 차로 앞선 채 압도적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던 두산은 가을 야구의 마지막 날 웃지 못하는 아쉬움을 맛봤다.
#정규시즌 3위 후 우승한 팀은?
정규시즌 3위 팀이 준PO에서 출발해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한 역사는 오히려 2위 팀의 우승 사례보다 한 차례 더 많다. 1992년 롯데, 2001년과 2015년 두산이 그랬다. 1992년엔 우승팀 빙그레와 3위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마주쳤다. 보너스 지급 문제로 구단과 선수단 간 갈등이 생겨 팀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빙그레는 명문 구단 삼성과 해태를 연이어 물리치고 올라온 롯데의 기세를 막지 못했다. 3차전에서만 빙그레가 간신히 1점 차로 신승했을 뿐, 4승 1패로 롯데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둬 창단 두 번째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두산은 두 차례나 준PO부터 포스트시즌을 시작한 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001년엔 삼성과 만나 1차전을 먼저 내줬지만, 2차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다시 기운을 끌어 올렸다. 이어진 3차전과 4차전에서는 각각 11-9와 18-11의 스코어로 끝난 ‘역대급’ 타격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승기를 쥐었다. 5차전에서 다시 뭇매를 맞고 4-14로 대패해 한 발 물러나는 듯했지만, 6차전에서 6-5로 이겨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삼성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응용 감독의 역대 첫 한국시리즈 패배였다.
두산은 2015년에도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만나 4승 1패로 완승했다. 당시 삼성은 2011년부터 4년 연속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한 뒤 2015년 정규시즌까지 우승해 사상 첫 5년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금자탑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팀 내 주축 투수들이 해외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면서 17승 에이스와 홀드왕, 세이브왕이 모두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하는 악재를 맞았다. 결국 두산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흔들리던 삼성을 무너뜨렸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부임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고, 류중일 삼성 감독은 부임 5년 만에 처음으로 통합 우승에 실패했다. 이 외에 정규시즌 4위 팀과 5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1984년 롯데 최동원의 4승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3승을 거둔 투수는 2003년 현대 정민태가 마지막이다. 사진=연합뉴스
#에이스가 선발 3승을 거둔 마지막 해는?
1984년 롯데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4승은 KBO리그 역사에 영원히 남을 대기록이다. 그 4승 가운데 구원승은 단 1승뿐. 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7차전 완투승을 차례로 해내면서 선발 3경기 완투승이라는 괴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최동원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구원승이 아닌 선발승으로 3승을 올린 투수는 역대 단 한 명뿐이다. 2003년 현대 정민태다. 구 인천 연고팀인 현대와 새로운 인천 연고팀 SK의 첫 맞대결로 주목을 받았던 그해 한국시리즈는 정규시즌 17승을 올린 에이스 정민태가 열고 닫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망의 1차전에 첫 선발 투수로 출격한 정민태는 SK 왼손 선발 이승호와 맞대결해 6⅓이닝을 2실점(1자책점)으로 판정승을 거두고 승리 투수가 됐다. 현대가 3-2로 1점 차 승리를 거둔 경기였다. 또 팀이 2차전과 3차전을 모두 내주고 1승 2패로 뒤진 상황에서 4차전을 맞이하자 사흘만 쉬고 다시 선발 투수로 나서 6이닝 3실점을 기록했다. 다행히 주장 이숭용을 필두로 한 타선이 폭발하면서 9-3으로 다시 현대의 승리. 정민태의 시리즈 두 번째 승리였다.
현대는 여세를 몰아 5차전까지 승리로 이끌고 승기를 잡는 듯했지만, 6차전에서 SK 이진영에게 2점 홈런을 맞고 패하면서 결국 7차전 마지막 승부를 치러야 했다. 이때 현대가 꺼낸 선발 카드는 다시 정민태. 또 한 번의 3일 휴식 후 등판이었다. 한 시즌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경기를 맞닥뜨린 정민태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7차전에서는 아예 9이닝 동안 한 점도 주지 않고 홀로 SK 타선을 틀어막았다. 시리즈 세 번째 승리를 완봉승으로 장식한 정민태는 3경기 3승 무패, 평균자책점 1.69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에이스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1·4·7차전이었다.
#역대 유일한 리버스스윕 위기는?
3승을 올리면 끝나는 준PO나 PO와 달리, 한국시리즈는 7경기 안에 4승을 올려야 하는 장기 레이스다. 연패를 막으려는 선수들의 집중력도 다른 시리즈와 비교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준PO와 PO에서는 2패 후 3연승으로 다음 시리즈에 진출하는 리버스스윕이 드물게 나왔지만, 한국시리즈에서 3연패 후 4연승으로 우승한 팀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유일한 위기는 단 한 차례 있었다. 김재박 감독의 현대와 김인식 감독의 두산이 맞붙은 2000년 한국시리즈다. 정규시즌 1위 현대는 홈 수원에서 열린 1, 2차전과 잠실 원정에서 치른 3차전을 내리 이겼다. 1차전에서는 선발 김수경의 역투에 힘입어 3-0으로 승리했고, 2차전에서는 역시 선발 임선동의 호투와 외국인 타자 톰 퀸란의 3점 홈런 등을 앞세워 8-2로 이겼다. 3차전 역시 에이스 정민태가 호투하면서 3-1 승리. 완벽한 현대의 압승으로 손쉽게 시리즈가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4차전부터 두산의 반격이 시작됐다. 1차전 패전 투수였던 두산 조계현과 1차전 승리 투수 김수경이 4차전에서 다시 맞붙었고, 이번엔 결과가 정반대로 나왔다. 조계현이 승리 투수, 김수경이 패전 투수가 됐다. 두산의 6-0 승리. 5차전에서는 타격전 끝에 타이론 우즈의 홈런에 힘입어 두산이 9-5로 또 이겼고, 다시 수원으로 장소를 옮겨 열린 6차전 역시 두산이 5-4로 한 점 차 승리를 거뒀다. 3연패 후 3연승. 그쯤 되자 완전히 기세가 오른 두산의 역대 첫 리버스스윕을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7차전은 그야말로 드라마였다. 1차전과 4차전에서 한 번씩 희비가 엇갈렸던 두산 조계현과 현대 김수경이 다시 선발 맞대결을 했다. 나란히 해당 시리즈에서 홈런을 쳤던 두산 우즈와 현대 퀸란의 외국인 타자 대결도 흥미진진했다. 최종 결과는 현대의 승. 김수경은 2승째, 조계현은 2패째를 각각 안았다. 퀸란은 4회 3점포와 8회 솔로포를 각각 날려 4회 솔로홈런 하나를 때리는 데 그친 우즈를 눌렀다. 현대는 선발 임선동을 마지막 투수로 내세워 6-2 승리를 확정하고 천신만고 끝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경기는?
요즘 야구팬들은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프로야구 경기를 본다. 예전처럼 야구 중계를 보기 위해 무조건 TV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TV보다 인터넷이나 태블릿 PC, 스마트폰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며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하지만 과거 야구팬들에게는 TV로 야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무척 값지고 소중했다. 매일같이 전 경기가 TV로 방송되고 하이라이트로 주요 장면을 볼 수 있던 시대가 아니다 보니, 라디오 중계에 의존하거나 다음 날 스포츠 신문을 통해 자세한 경기 내용을 확인해야 했다. 어쩌다 한 번 지상파에서 TV 중계를 하는 날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시청률이 나오곤 했다.
역대 최고 시청률을 찍은 한국시리즈 경기 역시 요즘은 웬만한 인기 드라마도 세울 수 없는 수치를 남겼다. 호남의 해태와 영남의 삼성이 맞붙은 1993년 한국시리즈 6차전이 무려 32.1%라는 시청률을 기록해 역대 한국시리즈 중계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 해 데뷔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공격, 수비, 주루에서 모두 ‘미친’ 활약을 펼쳤던 시리즈다. 이종범은 양 팀 선수를 통틀어 최고 타율인 0.310을 기록한 데다 도루 7개를 시도해 7개를 모두 성공시키는 활약으로 삼성 배터리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특히 최고 시청률이 나왔던 6차전에서도 1회 첫 타석부터 2루타를 때려낸 뒤 특유의 현란한 주루 플레이로 3루와 홈을 차례로 밟아 1점을 그냥 가져오다시피 했다.
해태는 이 경기에서 2회 역전을 허용해 5회까지 다시 끌려갔지만, 6회 동점을 만든 데 이어 8회 1사 1루서 김성한이 한국시리즈 최고령 홈런을 결승 2점포로 장식하면서 기분 좋은 역전승을 거뒀다. 전국 각지에서 이 경기를 지켜 보던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전율을 안긴 장면이었다.
그 후 26년이 지난 올해 한국시리즈 역시 인기 구단인 두산이 1차전과 2차전에서 연속 끝내기 안타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면서 “TV 중계 시청률도 대박이 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수치는 1차전 7.6%, 2차전 6.8%로 예년의 21~24%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이 불러온 확연한 변화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